반려견 시골집에 보냈다 직장 잃고 신상 털리고…일가족 고통
  • 박병선 기자
  • 입력: 2025.04.10 18:53 / 수정: 2025.04.10 19:27
일부 동물권단체, 왜곡·과장한 '구조 활동' 방식 큰 문제
동물보호 빙자 온라인 폭력…"가족 피해 누가 보상해주나"
부인 전 씨가 시바견 박대송을 시골집에 데려다 주고 쓴 SNS 사진과 글. / 전 씨 제공
부인 전 씨가 시바견 '박대송'을 시골집에 데려다 주고 쓴 SNS 사진과 글. / 전 씨 제공

[더팩트┃대구=박병선 기자] '4년 간 키우던 반려견이 꽤 사나워 남편이 팔뚝을 물려 병원 치료를 받았다. 부인까지 물려고 덤벼드니 부부는 3살 된 딸아이가 걱정스러웠다. 당분간 반려견을 시골 외할머니 집에 보냈는데….'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동물권단체가 개입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부부가 뜬금없이 '동물 학대범'으로 몰려 큰 곤욕을 치른 것이다.

남편은 실직했고, 부인과 딸은 신상이 털려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으며 반려견은 동물권단체에 빼앗겼다.

대구 수성구 파동에 사는 박모(36) 씨 가족에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SNS에 올린 글이 발단

지난 1월 10일 부인 전모(32) 씨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4살 된 시바견 '박대송'을 경북 고령에 있는 할머니집에 데려다 주면서 그 감상을 사진들과 함께 올렸다.

'ㅋㅋㅋㅋ 개독아···잘 있거라, 자주 올게' '개독이 파양 엔딩ㅠ' '내가 동물 정말 사랑하는건 다들 잘 알테고, 털 알레르기가 있어도 꾹꾹 참고 키우면서 산책도 매일 매일 시키고···며칠 전에 오빠(남편)야 물고 나한테도 입질하고 매일 똥오줌 지리고···시골개처럼 묶여서 잘 지내렴, 그래도 자주 놀러갈게, (아이에게까지 입질해서 된장 바르기 전에 시골할머니댁으로 보냄)'.

전 씨는 평소처럼 가까운 이들이 읽으라고 쓴 재미있는 글이라고 여겼지만 이것이 문제가 될 줄 몰랐다. 인터넷 동물카페에서 한 회원이 이를 보고 1월 13일에 '인스타에 유기 전시'라는 과장·왜곡된 글을 올리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실제로는 '박대송'을 시골집에 데려다 줬으니 '파양'이나 '유기'도 아니었고, '된장 바르기 전에'라는 표현은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난일 뿐이었다.

이에 전 씨는 '박대송'을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동물권단체 C 활동가가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박 씨 가족의 아파트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있다. /C 단체 유튜브 방송 캡처
동물권단체 C 활동가가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박 씨 가족의 아파트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있다. /C 단체 유튜브 방송 캡처

◇동물권단체의 과도한 요구와 왜곡

지난 1월 15일 저녁 동물권단체 C 관계자와 회원들이 박 씨 가족이 사는 수성구 파동 아파트로 찾아와 '시바 박대송을 구조하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이들은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아파트 현관까지 들어와 2시간 가까이 초인종을 누르며 반려견 '박대송' 포기를 요구했다.

심지어 한 유튜브 시청자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부인에게 딸의 사진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 위협하기도 했다.

C 단체 활동가들은 퇴근한 수성구청 담당 공무원까지 불러내 "동물학대 가해자를 격리하고 '박대송' 소유권을 포기 받으라"고 요구했다. 공무원들과 수의사가 '박대송'의 상태를 확인했으나 학대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C 단체 대표는 구경나온 주민들로부터 '개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몽둥이로 패는 듯한 비명을 들었다'는 증언을 받았다면서 명백한 동물학대 행위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공무원과 경찰은 이날 현장에서 수의사의 검진 결과를 C 단체 활동가들에게 전달했으나 이들은 막무가내로 '박대송 구조'만을 주장하며 유튜브 방송을 계속했다.

이 단체는 생방송을 30시간 동안 진행했고 2만 명 넘게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성구청은 현장에 대동한 수의사를 통해 '박대송'의 상태를 확인한데 이어 다음 날 수성구의 한 동물병원에서 건강검진을 진행했다.

건강검진 결과, 개의 선천적 질병인 슬개골탈구 1기, 미세한 방광염, 양쪽 송곳니의 작은 치아 파절이 발견됐지만 전부 사소한 문제였고, 몸무게, 영양상태는 양호했고 외상도 없었다.

'박대송'은 불안감을 보이는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C 단체는 수의사의 소견과는 달리, 이런 질병조차 '학대의 증거'라고 주장했고, 수성구청에 계속 가해자 격리조치, 소유권 포기 등을 요구했다.

◇민원 폭주와 수성구청의 소극적인 대응

수청구청에 민원이 폭주하면서 담당 과는 두 달 가까이 업무가 마미될 지경이었다.

'박대송 구조'를 요구하며 전화가 쉴새 없이 걸려오고, 국민신문고에 1200건, 정보공개 청구 130건이 접수됐다.

이는 C 단체가 유튜브 방송에 수성구청 전화번호와 담당 공무원 이름을 올려놓고 시청자들에게 민원을 넣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한 공무원은 불안 증세를 보여 상담을 받기도 했고, 공무원들은 전화 응대와 민원 해결에 다른 업무를 포기해야 했다.

이들의 등쌀에 시달리다 못한 수성구청은 견주 박 씨에 대해 경찰에 수사의뢰를 했다.

수성구청은 지난 3월 12일 박 씨가 무혐의 판정을 받은 직후 다시 '박대송'의 소유권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소유권 포기각서를 작성토록 하고, 격리장소도 C 단체 활동가의 집에 격리하도록 했다.

하지만 C 단체는 수성구청에 통보 없이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C 단체 쉼터로 '박대송'을 데려가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

수성구청은 두 차례 공문을 보내고 견주 박 씨와 함께 화성 쉼터까지 찾아가 반환을 요구했으나 C 단체는 "학대범에게 돌려줄 수 없다"며 요지부동이다.

C 단체 대표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집 안에 살던 '박대송'이 시골 마당으로 옮긴 것이나, 방광염조차 방치한 것은 분명한 학대 증거"라면서 "'박대송'은 이제 '차은우'로 이름을 바꿔 잘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C 단체의 활동방식이나 목적에 대해 의혹을 표명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 동물권단체 관계자는 "C 단체는 행정기관, 구청에 민원을 폭주하게 하는 수법으로 공무원들이 어쩔 수 없이 동물을 넘겨줄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면서 "2년 전 다른 지역에서도 경찰, 공무원들에게 더 과격한 수법을 쓰다가 전직 대표가 현장에서 체포돼 구속됐을 정도로 말썽이 끊이지 않는 단체"라고 말했다.

수성구청이 경험 부족으로 C 단체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바람에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결국 '박대송'만 뺏긴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왜곡되고 과장한 사실을 앞세워 목적이 동물보호인지, 후원금 확보인지 알 수 없는 단체에게 견주와 행정기관이 피해를 입은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이 동물권단체 관계자의 얘기다.

견주 박 싸가 두 달전 박대송에게 물린 팔뚝. 아직까지 송곳니 자국이 남아 있다. / 견주 박 씨 제공
견주 박 싸가 두 달전 '박대송'에게 물린 팔뚝. 아직까지 송곳니 자국이 남아 있다. / 견주 박 씨 제공

◇실직과 신상털기, 2차 피해

이 과정에서 C 단체 활동가들과 방송 시청자들은 박 씨의 직장인 H사 홈페이지에 몰려가 '학대범을 직장에 놔둬선 안 된다'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며 항의했다.

계속되는 항의와 압박에 굴복한 서울 본사에서는 박 씨를 몇 차례 찾아와 권고사직을 권했고, 결국 박 씨는 8년 간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부인과 딸은 SNS에 신상이 공개되면서 부인은 정신상담을 받았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다.

박 씨는 "우리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내가 직장 잃은 것보다 부인과 딸이 고통받는 걸 보고 너무 괴로웠다"고 말했다집

박 씨는 '박대송'을 돌려받는 노력을 계속하는 동시에 C 단체 관계자는 물론 SNS에 입에 못담을 '욕설'과 '원색적 비난'을 한 네티즌 150명을 고소했다.

박 씨는 인터넷 카페에 '인스타에 유기 전시' 글을 올려 사건을 키운 네티즌을 고소했으나 경찰로로부터 그 네티즌이 글을 지우고 회원을 탈퇴해 소재 파악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번 사건에서 동물보호를 핑계로 온라인 폭력, 무분별한 신상공개, 낙인 찍기, 법을 초월하는 듯한 동물권단체 활동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한 동물권단체 관계자는 "상당수 동물권단체나 동물애호가들이 동물을 의인화하면서 동물에게는 관대하고, 사람은 잔인하게 대하는 경향을 갖고 있어 심각한 문제"라면서 "박 씨 가족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행정기관의 대응 방식과 동물보호법 등 보완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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