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개발 편입 자기 땅에서 쫓겨난 70대 노인의 '하소연'
  • 유명식 기자
  • 입력: 2025.04.07 10:18 / 수정: 2025.04.07 13:25
서울 내곡동 땅 부동산등기 '무용지물'
서초구 "환지 예정지 따른 건축허가"
롯데건설이 아파트를 건립 중인 서울시 내곡동 A 씨의 소유의 부지(빨간색 네모)./ 유명식 기자
롯데건설이 아파트를 건립 중인 서울시 내곡동 A 씨의 소유의 부지(빨간색 네모)./ 유명식 기자

[더팩트ㅣ용인=유명식 기자] "남의 땅에 주인 허락도 없이 아파트를 짓다니 이런 횡포가 대명천지에 어디 있나요?"

경기 용인에 사는 김모(78) 씨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 토지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진다.

지난해 6~7월쯤 롯데건설 등이 자신의 소유 땅에다 갑작스레 아파트를 건립한다며 터파기를 시작하면서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 매매나 토지사용승낙 등의 절차도 없었다.

'헌인타운개발'이라는 시행사가 도시개발 사업을 한다며 퇴거를 요구해 2023년 말쯤 떠밀려 나왔으나 땅은 내어준 적이 없다는 게 김 씨 설명이다.

하지만 시공을 맡은 롯데건설 등은 김 씨 땅 546㎡를 포함, 내곡동 6만 1109㎡에 전용면적 119~274㎡ 규모의 연립주택 222세대를 짓는다며 펜스를 치고 터파기 공사에 들어갔다.

단지 이름은 '르엘어퍼하우스'로 분양가만 3.3㎡ 당 평균 1억 2000만~1억 5000만 원에 달한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토지소유권 정리 등은 시행사 측에서 관여하는 부분"라며 "인·허가가 나왔기 때문에 공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허가는 서울 서초구가 내줬다.

7일 <더팩트>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서초구는 헌인타운개발과 신탁회사(소유권을 이전받아 자산을 관리하는 회사)를 사실상 소유주로 판단하고 착공을 허가했다.

환지 예정지 지정 효과를 근거로 건축허가를 내 줬다는 설명이다.

도시개발법(36조)는 환지 예정지가 지정되면 종전의 토지의 소유자와 임차권자 등은 환지 예정지나 해당 부분에 대해 종전과 같은 내용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 종전 토지는 사용하거나 수익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김 씨 등의 항의에 "이 사업 대상지는 도시개발법 따라 환지 예정지가 이미 공고된 상태"라며 "따라서 토지 소유자가 종전 토지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수 없으므로, 환지예정지 소유주인 신탁회사의 건축허가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가 단독소유주로 표기된 서울 서초구 내곡동 땅의 부동산등기부등본./ 김 씨 제공
김 씨가 단독소유주로 표기된 서울 서초구 내곡동 땅의 부동산등기부등본./ 김 씨 제공

하지만 김 씨는 부동산등기부등본 상 소유주는 여전히 자신이라며, 이는 서초구가 건축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건축법(11조)는 건축허가를 받으려는 자는 해당 대지의 소유권을 확보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시행규칙(6조)도 건축할 대지의 소유에 관한 권리를 증명하는 서류 또는 대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원을 확보했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허가권자 역시 건축허가 신청서가 접수되면 토지등기사항증명서를 확인해야 한다.

김 씨는 "도시개발 시행사가 건물을 강제로 철거해 이주비 등만 받고 강제로 쫓겨 나왔으나 땅은 신탁을 맡기거나 판 적이 없다"면서 "토지 사용에 대한 어떤 권리도 내어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사업지구에는 김 씨와 사정이 비슷한 토지주가 10여 명에 이른다.

서초구는 김 씨 등에게 소유권이 없다면서도 같은 해 9월쯤 1000만 원이 넘는 재산세를 부과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김 씨는 "부동산등기도 확인하지 않고 남에게 건축허가를 내주더니, 나중에는 또 내 땅이라며 직전 년도보다 400% 오른 재산세를 내라고 문서를 보냈다"며 황당해 했다.

서초구는 김 씨 등이 그 이유를 따지자 1달여가 지나 부과를 취소했다고 한다.

서초구 재산세과는 '재산세는 물건지의 사실상 소유자에게 납세의무를 지우고 있다'며 '환지 예정지를 과세물건으로 재부과할 예정'이라고 통지했다.

김 씨는 "법도 좋고 개발도 좋지만 멀쩡한 내 땅을 빼앗기고도 도무지 하소연할 곳 없는 현실이 갑갑할 뿐"이라고 말했다.

vv83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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