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인=유명식 기자] "반대 여론을 우려해 건축 규모와 조감도 등을 거짓으로 축소해 홍보한 업체를 어떻게 믿을 수 있어요."
26일 오후 5시쯤 경기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의 한 마을에서 만난 정호성(54) 씨가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 씨는 한 부동산투자·개발전문회사가 자신의 집에서 불과 몇 십 미터 떨어진 야산에 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에 화가 잔뜩 나있었다.
이 마을 곳곳에는 '소음, 진동, 전자파, 전력블랙홀, 주거 환경 파괴하는 데이터센터 반대한다'는 등의 현수막도 붙어 있었다.
그의 집과 연결된 폭 2~3m짜리 뒷길을 따라 50여m를 올라가니 평평한 나대지가 드러났다. 잡풀이 듬성듬성 올라와 있었으나 당장 건물을 올려도 될 만큼 부지는 정리된 상태였다.
정 씨는 이곳이 G사가 추진 중인 '기흥 클라우드 허브 데이터센터' 예정지라고 했다.
G사는 인근 골프장 내 영농회사가 신탁을 맡겨둔 땅 2만 9439㎡를 사들여 건축 연면적 5만 6574㎡, 지하 5층~지상 4층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건립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건축비만 26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인시에는 지난해 7월 30일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정 씨 등 주민들은 전자파 피해 등을 우려하며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특히 G사가 주민설명회를 2차례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을 기만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G사는 지난해 10월 7일과 지난 21일 2차례에 걸쳐 주민설명회를 열었는데, 연면적과 전자파 기준 등을 실제와 다르게 만들어 교묘히 속이려 했다는 것이다.
정 씨가 내민 1차와 2차 설명회 자료에는 연면적이 각각 2만 2018㎡와 5만 6574㎡로 무려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애초 시에 인허가를 신청한 연면적은 2차 자료와 같다.
지상 건축물의 높이도 1차 때는 36.5m로 적혀 있었으나 2차 자료에는 41.46m로 5m 가량 달랐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1·2차 자료에 있는 전자파에 대한 '인체보호기준'도 논란이었다.
G사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전기설비기술기준인 833mG(밀리가우스)를 적시했다.
건립 예정인 데이터센터 전산실 내에서는 이 기준치를 훨씬 밑도는 0.598mG 수준에 불가한 전자파가 발생, 인체 무해하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정 씨는 "데이터센터 전자파가 어떻게 특정 순간만 배출되느냐"면서 "국제적 추세와 비교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지난 2001년 전자파를 발암가능물질로 지정했다. 2∼4mG 이상 세기 전자파에 장기간 노출된 아이들 집단에서 백혈병 발병이 높아졌다는 국제암연구소 결과를 토대로 4mG 이상의 전자파 세기를 발암가능물질이라고 판단했다.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도 어린이집, 학교 등의 전기설비 품질목표를 4mG를 적용하기도 한다.
정 씨는 "정치권이 마치 기흥데이터센터 건립을 모두 찬성하는 것처럼 자료를 만들고, 주거지와의 이격 거리, 건축물 높이 등도 제멋대로 그려놨다"면서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업체"라고 지적했다.
2차 자료에는 국민의힘과 더불민주당 지도부가 인공지능(AI) 산업 지원책을 논의했던 간담회 등의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실려 있기도 했다. 기사에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의 사진도 있었다.
정 씨는 "부동산 투자회사가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데이터센터를 지어 돈벌이를 하려한다"고 비판했다.
용인시는 주민들의 반대에 인허가 여부를 고심 중이다.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상정 여부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앞서 시는 지난해 11월 28일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자문을 통해 '지역주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전자파 피해 방지 등 구체적인 자료 제시를 통한 안전성 확보 방안 등을 제시하라'는 의견을 G사에 전달했다.
시는 같은 해 8월 무분별한 데이터센터 난립을 막기 위해 건축위원회 심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소음이나 화재 등과 관련한 기준도 강화했다.
용인시 관계자는 "해당 데이터센터와 주택과의 이격 거리 등은 정확히 실측해 오류는 없다"면서 "현재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G사는 1·2차 설명회 자료에 차이가 있는데 대해 "주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G사 관계자는 "주민들에게 설명을 편하게 하기 위해 1차 설명회에서는 지상층에 대한 연면적 등만 표기를 했던 것으로, 당시 주민들에게도 그런 내용을 자세히 안내했다"면서 "2차 때는 좀 더 분명한 자료를 드리려고 구체적으로 제시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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