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에 공무원 등 7명 투입…CCTV 4대 가동
"홍준표 시장 치적 위해 인적·물적 낭비" 지적
30일 동대구역 광장에 세워진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앞에 행인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동상 앞뒤에는 'CCTV 쵤영 중, 낙서 훼손할 때는 처벌받을 수 있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 박병선 기자 |
[더팩트┃대구=박병선 기자] 대구시가 동대구역 광장에 세운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의 훼손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과도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지시에 따라 동상을 밤새 지키느라 고생하는 이들이 한 둘 아니다.
박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23일)이 있은 지 7일이 지난 30일 오후 7시. 동상 앞 광장에는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트럭 1대가 서 있었다. 이 트럭은 동상을 경비하는 초소 역할을 한다. 공단 소속 경비원은 운전석에서 동상 쪽을 감시하다가 훼손 우려가 있을 때는 곧바로 주의·제지 등의 조치를 취한다고 했다.
공단 트럭이 주차한 곳에서 20여m 떨어진 모범택시 승강장 한쪽에는 '대구경북 통합' 스티커를 붙인 대구시청 소속 SUV 차량 한 대가 주차해 있었다. 이 차량은 대구시 행정국 소속 공무원 3명, 1개 조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하는 '제2의 초소'다.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경비원이 있는 지 전혀 알 수 없는 근무 방식이다.
30일 밤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사진 왼쪽) 앞에는 '초소' 역할을 하는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트럭 1대가 서 있다. / 박병선 기자 |
저녁 시간에는 모두 4명이 동상 보호를 위해 근무하지만 밤 12시에서 다음 날 오전 9시까지는 무려 7명이 동상을 지키고 있다. 공단 소속 경비원 1명에 공단 직원 2명이 추가로 합류해 밤새 근무하고, 공무원 3명이 차 안에서 대기하며 불침번을 선다.
거기다 사방에 설치된 4대의 CCTV를 감시하는 인력 1명(겸업)이 사무실에서 근무를 한다. 대구시 행정과가 제막식 직전 설치한 CCTV는 동상 왼쪽 가로등에 2개, 동상 오른쪽 주차장 연결통로 상단에 2개가 설치돼 통행인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철통 경비'다.
한 직원은 "한겨울에 동상 하나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생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공단에서 경비원을 새로 뽑은 데다 CCTV 유지비 등을 생각하면 인적·물적 낭비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잉 경비를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지난 22일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이 동상 둘레석 등에 분필로 '독재자' '개XX' 등의 낙서를 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홍 시장이 자신의 치적을 위해 '철저한 관리'를 주문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더해 준다.
홍 시장은 지난 26일 기자 간담회에서 대구시 새공무원노조가 동상 관리를 위해 공무원들이 밤샘 근무를 서고 있다며 반발한 데 대해 "공공물을 지키는 게 시청의 임무"라며 일축했다.
대구시가 동상 보호를 위해 설치한 CCTV 4대 중 주차장 연결통로 상단에 있는 2대의 CCTV.. 사진 왼쪽 상단과 사진 오른쪽 끝에 있다. / 박병선 기자. |
지금까지 동상을 훼손하는 행위는 아니지만 스티커, 종이 등을 몰래 붙이는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경비원의 눈을 피해 일부 행인이 동상 엉덩이 쪽에 '독재자'라는 종이를 붙여 놓았고, 둘레석에 '독재 미화' '세금 낭비'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는 글을 적은 스티커를 붙이고 사라졌다고 한다.
동상 제막식 전후에 반대 시위 등으로 화제가 된 탓인지 광장을 지나는 행인 대다수가 동상을 바라보거나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노년층들은 "박정희, 일 잘 했잖아"라고 칭송했고 젊은 사람들은 "왜 이런 동상을 세워서"라며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한 시민단체 회원은 "동상 설치는 홍 시장이 대선에서 보수세력의 표를 얻기 위한 정치 이벤트"라고 폄하했다.
'과잉 경비' '공무원 불침번' 등 동상을 둘러싼 각종 논란은 홍 시장 특유의 밀어붙이기식 리더십에서 비롯됐다고 하지만 세대 간 정치 성향 간 충돌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슬픈 풍경임이 틀림없다. 이 동상이 동대구역의 '애물단지'가 될 지, '상징물'이 될 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였다.
tk@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