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부천서 만나다
입력: 2024.11.25 06:00 / 수정: 2024.11.25 06:00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으로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공쿠르상 수상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인터넷 갈무리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인터넷 갈무리

[더팩트|부천=김동선 기자] 한강 작가가 아시아 출신 여성 작가 처음으로, 우리나라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쁨의 한 모퉁이에서 세네갈 출신 작가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Mohamed Mbougar Sarr, 36)가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제4회)을 수상했다.

미래 노벨문학상 작가로 촉망받는 그의 수상 작품은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La plus secrète mémoire des hommes)이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표지./엘리(2022)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표지./엘리(2022)

지난 19일 경기 부천시 웹툰융합센터에서 개최된 시상식에서 작가는 "우리는 모두 하나의 거대한 상상 속 고대 국가, 즉 문학이라는 나라의 디아스포라일지도 모른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는 같은 작품으로 2021년 프랑스 공쿠루상을 수상하면서도 "저의 수상은 많은 사람에게 프랑스어가 꼭 프랑스에 있는 사람들만 쓰는 언어가 아니라는 걸 알렸다. 식민 시대 잔재로 프랑스어를 배웠지만 나와 같은 젊은 작가들에게 그 언어로 멋진 작품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이 됐다"고 깊은 통찰을 던졌다.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부천시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부천시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은 ‘경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소재로 쓴 작가에게 수여된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혹은 이주 그 자체를 의미한다.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는 31살 나이에,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작가로서 최초 공쿠르상 수상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프랑스에서 공부한 그는 자하드 민병대가 장악한 사헬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린 ‘둘러싸인 땅’(2015)을 시작으로 작품을 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닮아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사르는 공쿠르상 수상 의미를 개인적·정치적 측면으로 나눠 설명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 마르셀 프루스트 등과 함께 수상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 것이 행복하다고 밝힌 그는 세네갈 출신 작가의 수상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강조했다. 세네갈에서 모두가 자신의 수상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탈식민지가 완벽하게 이뤄지려면 그 잔재인 프랑스어를 쓰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작가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자유롭게 문학으로 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작가는 부천시를 통해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 수상소감 번역본을 <더팩트>에 보내왔다.

다음은 수상소감 번역본 전문.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 시상식에서 인터뷰하는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부천시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 시상식에서 인터뷰하는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부천시

■ 저는 세네갈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의 아들로, 월로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씁니다. 할머니의 구전 이야기를 통해 시적 상상력을 접한 제가 한국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서로 다른 문화의 책들이 보이지 않는 깊은 대화를 나누고, 모든 배경의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세계 도서관의 기적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의 거대한 상상 속 고대 국가, 즉 문학이라는 나라의 디아스포라일지도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문학이 항상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부도덕한 전쟁과 학살, 어린이 학살과 바다 공동묘지, 지구 파괴와 잔인하고 인종차별적인 정치인의 승리를 보면서, 가끔은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올바른 형용사를 찾아 밤을 새워가며 몇 문장으로 허구 인물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기도 합니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악에 맞서 글을 쓰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심포지엄만으로는 이와 관련된 문제를 모두 다루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합의되고 명확한 답변을 제공하기에는 더 적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악에 맞서 문학과 소설은 항상 새로운 형태로 이 오래된 질문, 즉 인간이 자신을 인간이라고 말할 때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상주의적인 관점도 아니고 절망적인 관점도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 사랑의 자리와 증오의 자리, 문화의 자리와 야만의 자리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는 명료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악과 그림자는 인간에게서 나오지만, 사랑과 아름다움은 바로 그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 이 인간이 바로 우리, 우리 모두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문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당장의 전투에서는 항상 패합니다. 그 경기장은 깊은 시간, 측정할 수 없는 고독의 시간으로 확장되며, 그 안에서 우리 각자는 자신이 누구이며 동료 인간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야 하는 책임에 직면하여 자신과 대면하게 됩니다.

이 상을 정의로 정당화하려는 모든 공포의 희생자, 잔인한 이주 정책으로 희생된 모든 사람들, 지구상의 모든 저주받은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이 소감의 진지함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저는 보통 더 재밌고 아이러니하고 장난스럽고 가벼운 편입니다. 제 소설에도 이런 정신의 흔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난 몇 달 동안은 웃을 기분이 아니었어요. 다행히도 독자가 있고 책이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가 있고 무한한 도서관이 있고, 책이 우리를 슬프고 우울하게 만들더라도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상을 그들에게도 바칩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 시상식에서 독자에게 사인해주는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부천시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 시상식에서 독자에게 사인해주는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부천시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La plus secrète mémoire des hommes)’

천재로 추앙되었다가 처참하게 공격받고 사라진 작가 T.C. 엘리만과 그가 남긴 위대한 소설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를 쫓는 또 한 명의 작가 디에간의 여정을 그린다. 작가 엘리만은 작품을 발표한 직후 ‘흑인 랭보’라는 격찬을 받지만 표절 의혹이 제기된 뒤 몰락하고 사라진다. 미스터리 형식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하면서 문학과 삶에 대한 고민을 담은 소설이다.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

부천시가 2017년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네트워크에 가입하며, 문학을 통해 세계 도시와의 연대·환대·협력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정한 국제문학상이다.

역대 수상자(출신 국가)/수상작/번역

△제1회(2021년)

하진(중국·미국)/자유로운 삶/왕은철

△제2회(2022년)

이민진(한국·미국)/파친코/신승미·이미정

△제3회(2023년)

비엣 타인 응우옌(베트남·미국)/동조자/김희용

△제4회(2024년)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세네갈·)/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윤진

vv83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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