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병욱 기자] 2019년 인류와 지구의 건강을 함께 지킬 수 있는 '지구건강식단(PHD)'을 발표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이트-랜싯위원회(The EAT-Lancet Commission on Food, Planet, Health)가 최근 새로운 보고서를 내놨다.
이트-랜싯위원회는 영양학과 농업, 환경 부문의 35개국 70명의 석학과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는 연구조직이다.
16일 이트-랜싯위원회에 따르면 이달 초 '2025 이트-랜싯위원회 보고서(EAT-Lancet 2.0)'를 공식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번 보고서에서 인류의 건강, 지구 환경, 사회 정의를 동시에 고려한 '지구건강식단(PHD)'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앞서 2019년 발표한 '지구건강식단'에서 연구진들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면서도 토지와 물 사용, 온실가스 배출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식품으로 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당시 지구건강식단은 과일, 채소를 중심으로 통곡물, 견과류 등 식물성 식품이 주축이며 생선, 육류, 달걀, 유제품 등 동물성 단백질 식품은 소량으로 구성돼 있다. 지중해식 식단과 매우 비슷한 형태다.
연구진은 2019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구건강식단'에 맞추려면 전 세계적으로 붉은 고기와 설탕 섭취량은 절반 줄이고 견과류나 과일, 채소 소비량은 2배로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위원회는 이번에 새로운 보고서에서 현재 '식품 시스템'의 근본적인 전환 없이는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이번 위원회에는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 석학들이 참여했다. '9가지 지구 한계(Planetary Boundaries)' 개념을 제시한 스웨덴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PIK)의 요한 록스트롬 박사, 전 세계 식단·건강 연구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과학자 중 한 명인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의 월터 윌렛 교수, 2021년 '세계 식량상(World Food Prize)'을 받은 수생 식품 시스템 전문가 샤쿤탈라 틸스테드 박사가 공동 의장을 맡고 있다.
'2025 이트-랜싯위원회 보고서'가 밝힌 현실은 충격적이다.
현재 식품 시스템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0%를 차지하며, 기후 변화, 생물다양성 손실, 토지 황폐화, 담수 고갈, 화학물질 오염 등 9개 지구 한계 중 6개를 이미 넘어서게 만든 주범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불평등의 실상이다. 세계 인구의 1% 미만이 지구 한계 내에서 식품 권리가 보장되는 '안전하고 공정한 공간'에 살고 있으며, 가장 부유한 30%의 사람들이 식품 관련 환경 파괴의 70% 이상을 일으킨다.
반면, 식품을 생산하는 농업 종사자의 32%는 생활임금도 벌지 못하고 있고, 10억 명 이상이 여전히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위원회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할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전 세계 식단의 변화만으로도 연간 최대 1500만 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할 수 있고, 식품 시스템 전반의 혁신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이런 변화는 연간 5조 달러의 경제적 수익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이는 필요한 투자 금액인 2000억~5000억 달러의 10배가 넘는다.
요한 록스트룀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장은 "우리가 접시에 담는 것이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수십억 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생물다양성 손실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화석연료 전환이 완료되더라도 식품 시스템의 변화가 없다면 지구 온도를 1.5°C 이상 상승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결국 '지구건강식단'의 실천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식물 중심의 식단으로 통곡물, 과일, 채소, 견과류, 콩류를 늘리고 육류, 유제품, 가공식품, 설탕 섭취는 줄이는 방식이다.
월터 윌렛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 교수는 "지구건강식단은 문화적, 지역적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모든 곳에서 건강 결과를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식단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제농업연구자문그룹(CGIAR)의 샤쿤탈라 틸스테드 박사는 "변화는 충분한 칼로리 생산을 넘어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든 사람의 식품에 대한 권리, 공정한 노동, 건강한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오는 2050년까지 96억 명을 지구의 한계 내에서 공평하게 먹여 살리려면 시스템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농민들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환경과 건강 비용은 가장 취약한 계층이 떠안고 있다. 이런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
연구진은 이상적인 목표만 제시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실행 가능한 해법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8가지 해법은 △전통 건강식단의 보호와 증진 △건강한 식품에 대한 접근성 개선 △지속가능한 생산 방식 도입 △생태계 보존 △식품 낭비 감소 △농업 종사자의 근로조건 개선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발언권 보장 △소외계층 보호 등이다.
이현주 이트-랜싯위원회 특별고문('한국고기없는월요일' 대표)는 "2025 이트-랜싯위원회 보고서가 제시한 8가지 솔루션은 단순한 식단 변화가 아니라, 건강·환경·노동·정의가 통합된 사회 시스템 전환의 로드맵이다"며 "연간 1500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온실가스를 절반으로 줄이며, 5조 달러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앞에 있다"고 말했다.
이 고문은 이어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의지다. 정부, 기업, 시민사회, 그리고 우리 개인 모두가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식탁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할 때"라며 "한국형 지구건강식단(K-PHD)은 '음식으로부터 시작되는 정의로운 기후행동'이며, 한 끼의 변화가 지구를 살리는 실질적 해법이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