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신간] 인간의 '몸'이 말하는 억압·권력·극복의 서사
  • 이병욱 기자
  • 입력: 2025.04.09 14:22 / 수정: 2025.04.09 14:22
사회학·여성학·문화학 전공 기자의 날카로운 시선
취재 현장에서 마주한 다층적인 사회상 추적·분석
신간 바디올로지-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이유진 지음. 출판사 디플롯. 352쪽. 1만9800원. /디플롯
신간 '바디올로지-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 이유진 지음. 출판사 디플롯. 352쪽. 1만9800원. /디플롯

[더팩트ㅣ이병욱 기자] 첨예한 갈등과 교묘한 협상, 폭력적인 착취는 정치판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이런 얽히고설킨 것들이 다름 아닌 우리 '몸'을 둘러싸고도 발현된다는 '기발한' 시선이 책으로 출간됐다.

우리 몸 구석구석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들을 분석하고, 생을 향한 질문을 던진 이는 한겨레 기자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이유진 기자다.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사회부, 편집부, 한겨레21부를 거치고 책지성팀 팀장, 토요판 부장으로 일한 이 기자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인구, 건강, 젠더, 출판 등의 취재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과 이슈를 다뤄 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단행본 '바디올로지-몸이 말하는, 말하지 못한, 말할 수 없는 것'(출판사 디플롯)으로 펴냈다.

이 책은 인류의 몸이 언제부터 강력한 물적 자본으로 부상했는지 살펴보고, 사회적 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얼굴, 성형, 살집, 머리카락, 섹스와 출산, 피부, 허기와 식인(카니발리즘), 죽음, 부활 등 인간의 몸 이야기에는 인류가 겪은 억압과 권력, 극복의 서사가 모두 담겨 있다.

독자들은 몸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과 교묘한 협상, 폭력적인 착취를 들여다봄으로써 인류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오늘날 다층적인 사회상과 얽히고설킨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된다.

책은 목차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형이하학적 단어마다 부여한 형이상학적 분석은 감탄사와 함께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저자는 한국인의 신체에는 한반도의 근대사가 응축돼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이후 서구를 본받아야 한다고 믿은 1920~1930년대부터, 몸 만들기가 일종의 투자이자 자기 계발의 상징이 된 신자유주의 시대, '섹스돌'을 '로켓배송'으로 받아 질감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고, 딥페이크와 인공지능을 이용해 혼종의 '미인'들을 만들어내는 오늘날 포르노의 일상화까지, '얼평'과 '몸평'의 변화상을 통해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읽어 내려간다.

머리카락으로는 한반도의 억압받은 역사와 저항의 기록을 살펴봤다. 1895년 성인 남성의 상투를 자르라고 명했던 단발령에서는 강제적 근대화로 유교적 전통과 자존심을 훼손당한 민족의 한을, 1920년대 신여성들의 단발머리 유행에서는 여성 해방에 대한 열망과 사회적 저항, 그리고 이를 저지하려는 가부장제 남성성의 대결을 본다.

또 196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여성 노동자의 노동력뿐 아니라 머리카락까지 알뜰하게 착취한 기록을 통해 독재와 빈곤 시대의 여성 머리털을 둘러싼 잔혹한 근대화 과정을 살핀다.

이밖에 제도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상징하던 1970년대 남성 장발 단속, 정치적 기울기에 따라 규제와 자율화 사이를 오가던 1980~2000년대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두발 자유화 논란, 페미니스트와 탈코르셋의 상징이 된 여성의 쇼트커트에 대한 비난, 쇼트커트가 동성애를 주장한다며 두발을 규제한 학교의 이야기 등 머리카락 한 올에 우리가 맞서 싸우고 저항하고, 순종하고 받아들이며 이루어낸 역사가 들어 있다. 저자는 이 역사를 들여다보며 "두발은 과연 어떠해야 '정상'인가?"를 묻고 있다.

"머리카락은 개인의 몸을 통제하고 권력을 내면화시켜 순종적인 신체를 만드는 규율 권력이 작동하는 곳이다. 감옥에 수감된 수용자는 규율에 따라 헤어스타일을 유지해야 한다. 군인은 대체로 짧은 머리를 유지하는데 2021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간부와 병사의 두발 규정이 다른 것은 차별이라며 제도를 개선하라는 결정문을 내놨다. 청년과 학생들의 머리 또한 오랫동안 통제의 대상이었다. 1970년대 남성 장발 단속이 이뤄지던 시절 장발은 저항을 상징했다. 전두환 정권은 1982년 학생 두발 자율화를 시행했지만 2000년대 다시금 고교생들의 두발 규제가 시행되면서 반대 운동이 극에 달한다. 그 뒤에도 정치적 기울기에 따라 고교생들의 두발 단속과 자율화 조치가 번갈아 오갔고 머리카락의 길이와 색깔을 허용하는 기준도 달라졌다."(1부 타오르는 몸의 기억들-머리카락: 한 올에는 자본이, 다른 한 올에는 권력이. 70쪽)

저자는 몸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또 존재를 소멸시킴으로써 하고 싶은 말을 전하기도 한다고 역설한다.

'단식'을 예로 들어, 어떤 이들은 곡기를 끊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정화하고 스스로를 통제하기도 하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여성 종교인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강제 결혼이나 강간 등 억압과 위험에 맞서는 수단으로 선택했다.

또 1900년대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독립운동가들, 독재정권에 대항한 한국 정치인 김영삼과 김대중,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등 사회적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유가족의 단식은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능동적인 몸부림으로 평가했다.

어떤 신체는 파괴되고 사라져도 애도 받지 못한다. 대규모 폭력이나 재난, 재해, 전쟁에서 희생자는 집계 자체가 논란이고 발표조차 '정치적'이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라진 몸들은 살아 있는 몸들에게 '생명'과 '기억', '애도', '인간다움'에 대해 묻는다. 살아 있는 우리가 죽은 그들이 던진 질문들에 대답하려 노력하고 기억하려 애쓴다면 우리의 몸은 좀 더 자유로운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안타깝게도 인류 공동체는 약자의 곁에 서기보다 억압하고 희생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창안하는 데 더 큰 열성을 쏟았다. 여러 활동가들이나 학자들은 장애인과 여성 등 타자화된 존재가 동물처럼 혐오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고기처럼 여러 등급으로 서열화, 위계화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우수한 유전자만 보존하려는 우생학은 인류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창한한 '인위도태설'에 기원을 둔다. 골턴은 가축이 개량되듯 과학적 개입으로 인간 또한 개량될 수 있다고 보았다. 1930년대 우생학이 발달한 미국에선 정신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강제 불임 수술을 하는 단종법을 통과시켰고 나치 독일은 장애인을 단종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대규모 축산, 도살을 '동물 홀로코스트'에 비유하는 논리에 유럽인들 다수가 경악한다. 어떻게 사람을, 희생자를 동물과 고기에 비유하느냐는 말이다."(5부 소멸하는 신체와 그 이후의 세계-살점: 인간의 몸과 정육점 고기는 무엇이 다른가. 279쪽)

이유진 지음. 출판사 디플롯. 352쪽. 1만9800원.

wookle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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