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작가 홍대선 "박정희를 움직인 동력, '유신'"
  • 이철영 기자
  • 입력: 2025.03.29 00:00 / 수정: 2025.03.29 00:00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낭만과 폭력의 한일 유신사' 
"박정희와 김재규는 유신 지사이자 사무라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사망했다. 박정희는 여전히 진영에 따라 신화와 독재자로 이용당한다. 홍대선 작가는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낭만과 폭력의 한일 유신사를 통해 분석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더팩트>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는 홍 작가. /이새롬 기자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사망했다. 박정희는 여전히 진영에 따라 신화와 독재자로 이용당한다. 홍대선 작가는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낭만과 폭력의 한일 유신사'를 통해 분석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더팩트>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는 홍 작가.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박정희는 왜 유신을 했을까? '독재'를 위해서? 그가 유신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부정선거 확인을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 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다층적 인물로 다양하게 평가된다. 정치적 이념에 따라 그는 산업화를 이룬 신화적 인물이면서 유신 독재자다. '박정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유신'. 한 번쯤 들어본 일본 메이지 유신의 그 '유신' 말이다.

작가 홍대선은 2022년 출간된 '유신 그리고 유신: 야수의 연대기'의 몇몇 오류를 수정하고 역사적 근거를 보강해 재출간했다.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낭만과 폭격의 한일 유신사'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보수층이 제목만 봤을 때 이 책은 불 속에 던져버릴지 모를 일이다. 밝히자면 책의 주인공은 박정희가 아니다. '유신'이다. 책의 제목에서도 '유신'이 먼저인 이유다.

지난 25일 홍 작가가 <더팩트> 사옥을 찾았다. 미세먼지와 거친 바람을 뚫고서다. 인상이 좋다. 키가 크다. 과거 그의 인터뷰에서 봤던 '탈모 걱정'은 이제 없는 것 같은 머리칼로 보였다. "흑채 뿌린 거에요."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봐선 모른다.

홍 작가는 박정희라는 산을 넘지 않고서는 우리 현대사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박정희를 따라가면 유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새롬 기자
홍 작가는 "박정희라는 산을 넘지 않고서는 우리 현대사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박정희를 따라가면 '유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새롬 기자

◆"박정희·김재규는 '유신' 안에서 동거했다"

그는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박정희를 이해해야 했다. 박정희라는 산을 넘지 않고서는 우리 현대사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박정희를 따라가면 '유신'이 있다"며 말했다. 그리고 "박정희와 김재규는 하나의 세계관 '유신' 안에서 동거했다"고 덧붙였다.

박정희. 사후 반세기 가까이 지났지만 보수와 진보에서 여전히 활용되어진다. 정치적 선동 인물로 말이다.

홍 작가는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세력은 박정희와 관련해 정반대의 평가를 한다. 한쪽에선 하늘이 내려준 산업화의 단군이라며 신격화하고 반대편은 독재자라 비판한다"며 "신화된 박정희가 아니라 인간 박정희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정희의 가치관이 일제강점기에 생성됐다는 점을 주목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박정희의 유신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10월 유신'(1972년 10월 17일)과 김재규가 주군에게 총을 쏜 배경으로 홍 작가는 일본의 '지사(志士) 문화'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지사 문화'가 빠지면 우리는 김재규가 박정희에게 총을 쏜 배경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홍 작가의 분석이다.

"일본의 지사 문화는 뜻을 달리하더라도 자신의 신념과 대의에 따라 목숨을 거는 행위를 존경하는 문화다. 조선에서는 뜻이 다르면 '불의'라 했던 것과 다르다. 조선에서는 '뜻있는 사대부' 즉 선비다. 일본은 '뜻있는 사무라이'에 가깝다."

일본의 1868년 메이지 유신의 주역은 하급 사무라이였고 그들은 '유신 지사'가 됐다.

◆日의 '지사 문화', 독립군에 존경심 드러내

홍 작가는 일본의 지사 문화의 예로 고종의 밀사였던 최익현과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저격해 뤼순 감옥에 수감됐던 안중근 의사를 언급했다. 그의 설명을 듣자면 당시 일본의 태도라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사'를 대입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익현은 대한제국의 항일애국지사지만 일본 지사 문화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준다. 그는 일본식으로 머리를 깎으라는 요구를 거절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최익현의 단식에 태도를 바꿔 존경을 표한다. 자신의 뜻을 위해 죽기를 겁내지 않는 최익현을 '지사'로 봤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 유신 지사가 생겨났다. 특히 지사 문화는 적이라도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건다면 존경을 표했다는 게 홍 작가의 설명이다. /이새롬 기자
일본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 '유신 지사'가 생겨났다. 특히 '지사 문화'는 적이라도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건다면 존경을 표했다는 게 홍 작가의 설명이다. /이새롬 기자

안중근 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에게 안 의사는 격렬한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안 의사를 지사로 대접했다. 그들이 볼 때 안 의사는 분명 지사로 봤다는 게 홍 작가의 평가다.

"안 의사는 이토에게 3발을 쐈다. 모두 치명적이었다. 일본 칼을 찬 사무라이는 아니지만 안 의사는 '총객'이었다고 본 것이다. 간수 지바 도시치는 무릎을 꿇고 묵을 갈았다. 안 의사를 증오했던 그의 태도가 변한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건 안 의사는 일본이 보기에 지사였고 유신 세계관에서 이해됐다."

막부를 끝낸 메이지 유신의 주역 사무라이(유신 지사)들에겐 목숨보다 '가치'가 중요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독립군을 존경한 이유는 그들과 같이 목숨보다 '가치'를 중요시한 동질감에 비롯한 것이다.

"박정희는 만주군 장교였다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조선인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하던 홍 작가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당국도 지사주의로 "독립군을 인정했다. 박정희 역시 항일 투쟁을 벌인 백범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고 인정했다. 지사로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정희가 싫어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승만'이다. 홍 작가는 "박정희는 이승만을 싫어했다. 이승만의 독립운동 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연설하고 편지를 쓰고 미국에 도와달라고 호소한 것은 지사적 관점에서 볼 때 투쟁이 아니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보수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박정희는 '산업화의 아버지'로 평가한다. 국부로 모신다는 게 맞겠다. 그러나 홍 작가는 책에 '박정희는 이승만을 혐오했다'고 썼다. 보수진영으로써는 딜레마에 빠질 일이다.

홍 작가는 박정희가 만주국으로 떠난 것은 당시 시대상으로 볼 때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봤다. 조선시대부터 배곯으며 소작농(박정희도 소작농의 아들이다)으로 살았던 이들이 일제강점기에도 체제의 착취를 당하자 기회의 땅 만주로 몰렸다는 것이다. 다만 박정희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으므로 갈음하자.

"박정희는 광복 후 독립투사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는 배에 탔다.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도 함께였다. 사실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가 만주군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를 조선인으로 봤다"고 황 작가는 말했다.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가 5·16 군사 쿠데타에 성공했을 때에도 지지 성명을 썼다. 만주군 장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나라 운영의 결격 사유가 안 된다는 이유였다. 황 작가는 이때를 "복잡한 정치적 감각이 많았다. 현재의 이분법 정치와 다르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하며 1868년 '존왕양이'(尊王攘夷, 천황을 받들어 오랑캐를 무찌르겠다) 후 이어진 '유신'은 막을 내렸다. 일본의 유신이 자멸로 몰아넣었다.

홍 작가는 박정희는 이승만을 싫어했다. 이승만의 독립운동 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연설하고 편지를 쓰고 미국에 도와달라고 호소한 것은 지사적 관점에서 볼 때 투쟁이 아니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새롬 기자
홍 작가는 "박정희는 이승만을 싫어했다. 이승만의 독립운동 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연설하고 편지를 쓰고 미국에 도와달라고 호소한 것은 지사적 관점에서 볼 때 투쟁이 아니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새롬 기자

◆일본과 박정희, 변질된 '유신'으로 자멸

그러나 일본에서 명이 다한 '유신'은 바다 건너 대한민국에서 박정희에 의해 부활했다. 일본 유신은 세계열강을 꿈꾸다 제국주의로 변질하며 생명을 다했다. 박정희의 꿈도 메이지 유신이 그랬던 것처럼 '열강'이었다는 게 홍 작가의 분석이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서울 궁정동 안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주군 박정희 대통령에게 권총을 쐈다. 홍 작가는 "김 전 부장이 박 전 대통령을 죽인 것은 사랑해서였다. 사무라이로서의 사랑"이라고 해석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박정희의 유신은 이렇게 끝났다. 일본의 유신이 제국주의로 변질해 생명을 다했듯 박정희의 유신도 '독재'로 변질되며 마감됐다.

'이 책에서 유신은 사건이 아니다. 1868년의 일본의 메이지 유신도 아니고 1972년 남한에서 일어난 10월 유신도 아니다. 이 둘은 사건으로서의 유신이며, 사건의 명칭일 뿐이다. 근본적인 유신은 현실의 사건들을 만들어낸 상상력이다. 상상의 구체적 내용은 관념과 정념이다. 관념은 믿음이다. 유신의 믿음은 자신이 위대해지기 위해 남은 파괴해도 된다는 신앙이다. 정념은 욕망이다. 유신의 욕망은 스스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죽어도 되는 자기 파괴의 충동이다.' -p32~33

홍대선 작가가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더팩트>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자신의 저서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새롬 기자
홍대선 작가가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더팩트>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며 자신의 저서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새롬 기자

-작가님, 정치권에서 윤 대통령 계엄을 비판하며 박정희가 언급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독재도 급이 있다. (박정희는) 윤석열과 클래스가 다르다. 윤 대통령은 영화 '서울의 봄'처럼 성공할 거로 생각했나? 중국의 위대한 시인 이태백(이백)은 술을 좋아했다. 그는 뱃놀이하며 술에 취해 물속의 달을 잡으러 뛰어들었다가 죽었다고 한다. 낭만적이라면 좋겠지만 사실 알코올성 섬망으로 죽은 것이다. 윤 대통령도 알코올성…."

"덧붙여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저는 한국인을 3인칭으로 놓고 왜 외국인과 다르게 됐나를 분석할 뿐이지 '국뽕' 작가는 아니다."

ps. 책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낭만과 폭력의 한일 유신사'는 새롭다. 그리고 재미있다. 책에는 인터뷰에 미쳐 담지 못한 상세한 내용이 있다. 흥미를 원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해본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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