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PD "여드름 브레이크, 공익은 시청자가 찾은 것" (인터뷰)
입력: 2009.06.29 11:33 / 수정: 2009.06.29 11:35

▶ '무도'는 예능일 뿐…"공익도 웃음 안에"

▶ 예능 속 공익이란…'계몽' 아니라 '웃음'

[ 김지혜기자] "예능이 줄 수 있는 공익은 바로 웃음 아닐까요?"

김태호 PD는 예능과 공익의 결합이라는 시청자의 평가에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예능의 임무인 웃음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것. 몇가지 사회적 장치를 넣곤 하지만 결코 계몽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김 PD는 "오히려 웃음을 주기 위해 이런 장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데 시청자들이 그 웃음의 의미를 찾으면서 공익으로 확대되는 것 같다"면서 "난 웃음을 전달하는데 충실하고, 오히려 시청자들이 공익으로 발전시키는 것 같다"고 몸을 낮췄다.

웃음을 통한 의미 찾기. 최근 MBC-TV '무한도전'이 또 하나의 도전을 성공시켰다. 지난 2주간 방송계를 뒤흔든 '여드름 브레이크'가 바로 그것. 외관상 300만원이 든 돈 가방을 찾는 일곱 멤버들의 혈투를 그렸지만 그 속에는 강제철거와 강제 이주비에 대한 반성의 메시지가 녹아 있었다.

이번 '여드름 브레이크'는 물과 기름처럼 융화되지 못했던 예능과 공익이 조화롭게 공존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시청자들은 예능 본연의 과제인 웃음을 충분히 즐겼으며, 한바탕 웃고난 뒤에는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찾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무한도전'의 수장 김태호 PD와 이야기를 나눴다. 주요 화두는 예능과 공익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그가 그리고 있는 '무한도전'의 또 다른 무모한 도전에 대해서도 들었다.

◆ "'여드름 브레이크' 의미 해석은 시청자들의 몫"

▶ '여드름 브레이크'는 확실히 그동안 '무한도전'이 보여줬던 사회적인 시선에서 좀 더 나아간 느낌이었다. 미션 수행의 주요 공간이 철거 지역이었다는 것, 돈 가방 300만원이 철거민의 이주금과 일치한다는 것 등에서 연출자의 어떤 의도가 느껴졌다. 처음부터 계획된 것일까.

그동안 가끔씩 해오던 방식인데 많이들 새롭게 봐주신 것 같다. 재개발과 이주민 등의 메시지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시민 아파트, 연예인 아파트, 오쇠동은 이번 패러디 아이템을 정한 후 현장답사 중에 알게 된 곳이다. 자료조사 끝에 3장소의 공통점을 발견했고 의미까지 알게 됐다.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것들을 도전 중에 자연스럽게 풀어내면 어떨까 하면서 아이템을 확장시켰다.

▶ 하지만 시청자들은 난리가 났다.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근하게 녹여냈다지만 시청자들은 숨은 의미를 정확히 찾아냈다. 때문일까. 여드름 브레이크는 어떤 사회고발프로, 혹은 어떤 시사나 토론프로 이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이것이 예능과 공익의 조화인가.

많은 시청자 분들이 주요 장소와 매개체에 담긴 의미에 집중하고 투영된 메시지에 대해 높게 평가해주셨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사회고발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다. 잘 알다시피 예능과 공익은 공존하기 어렵다. 웃음이 제1의 덕목인 예능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식의 계몽주의는 시청자들에게 반감을 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드름 브레이크'도 대놓고 철거와 이주민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멤버들과 함께 상황을 웃으며 만끽한 뒤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랬다. 해석은 온전히 시청자의 몫이다. 드라마에서 '열린 결말'이 있듯 나 역시 '오픈형 결말'을 추구한다. 방송 후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 것을 보면서 놀라웠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공익은 웃음 속에서 자연스레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그런 것이다.

◆ "예능에서의 공익이란, 결국 웃음에서 나온다"

▶ 웃음에서 공익을 찾는다? 어떻게 보면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처럼 생뚱맞게 들린다. 공익 뒤에는 '교훈'과 '계몽'이 뒤따라 사람을 경직되고 진지하게 만든다. 반면 웃음은 아무런 지식과 사고가 없이도 원초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을까.

지난 5월에 방송된 '박명수의 기습공격'편을 예로 들어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에피소드는 경제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치킨 집과 삼겹살집을 고등학교 운동부,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기습적으로 찾아가 주인의 희망 매출금액을 달성하는 내용이었다. 과거 '러브하우스'나 '신장개업' 등이 추구했던 솔루션 프로그램 형식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 사람들을 안타깝게 묘사하고 맹목적으로 도움을 줌으로 인해 공익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운동하는 학생들은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어 좋고 식당 주인은 매출 올려서 웃을 수 있고 둘 다 윈윈이다. 결국 우리는 그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만 한 것이다. 이처럼 신파적으로 몰고 가지 않고 모두가 즐거운 것으로 공익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웃음에서 자연스럽게 의미가 녹아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공익을 나타내는 방식이라면 방식이다.

◆ " '무한도전'이 추구하는 것은 포맷의 다양화"

▶ 이러한 변화에 대해 대체로 호평 일색이긴 하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최근 '무한도전'의 색깔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예능에서 의미를 찾으면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앞뒤 가리지 않고 무식하게 덤볐던 과거의 '무한도전'이 그립다는 사람도 있다.

'무한도전'의 기획 의도가 "대한민국 평균 이하 멤버들의 기상천외한 도전"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웃음이 우선이지 공익이 우선이 아니다. 신선한 웃음을 위해 늘 고민하는 것은 '포맷의 다양화'다. 기존의 예능과 다른 것, 새로운 것은 없을까를 늘 생각한다. 대부분의 예능에서 기본적으로 하는 집 공개, 몰래 카메라와 같은 것을 탈피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싶다.

그래서 발로 뛰는 도전이라던가 창의력을 요하는 도전, 패러디를 통해 극화하는 형식 등 타 예능에서 하지 않은 것들을 해왔다. '여드름 브레이크'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이는 매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템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구성이나 스토리를 짜기도 쉽지 않다. 아이디어를 확장해 가면서 '여드름 브레이크'와 같은 아이템도 자연스럽게 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 '무한도전'의 클래스? 분명 한 단계 위다. 포맷의 다양화가 '무도'를 예능의 레전드급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어느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포맷은 지양의 대상인 것도 안다. 최근 연이어 터진 '무도' 멤버들의 핑크빛 열애 소식을 다루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인가. 차별화에 대한 압박?

사실 이와 관련해 20분 분량의 촬영을 했었다. 그동안 '무한뉴스'를 통해 멤버들의 성장기나 사적인 소식도 전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뤄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슈에 기대고 소비하는 것은 다른 프로그램과 차별되는 게 없을 뿐 더러 5년간 '무한도전'을 다르게 발전시키기 위해 쏟은 노력이 물거품 되는 것 같아 결국 방송을 하지 않았다.

◆ "기상천외 패러디와 촌철살인 자막의 의미는…"
▶ 포맷 얘기하면 빠질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패러디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올해도 '여드름 브레이크', '궁 밀리어네어', '프로젝트 런어웨이'와 같은 패러디를 이용한 에피소드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유명한 원작을 비틀거나 희화화시키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아이템이 있는데 그것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게끔 할 수 있는 방식이 패러디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시작 역시 "꼭 패러디를 해야 해"가 아니라 "이건 이렇게 그릴 수 있겠구나", "이렇게도 포장하거나 비틀 수 있겠구나"하면서 가다보면 패러디가 되는 것 같다.

'무한도전'이 아무래도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나이가 좀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불친절한 프로그램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패러디 형식을 사용하다 보면 보다 많은 시청자들의 쉽게 방송의 주제를 잘 이해가게 되는 장점도 있다.

▶ '무한도전'의 유머 포인트 중에 자막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엔 자막에 웃음뿐만 아니라 뼈를 숨겨놓는 경우를 종종 발견 할 수 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연스럽게 자막에 넣어 시청자들로부터 통쾌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예전에는 자막 구성이나 작성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일이 분업화 되서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전체적인 회의를 통해 구성을 잡고 내용을 만들면 작업은 담당자들이 한다. 작업이 다된 후에 감수 작업을 직접 하면서 수정과 보완을 한다. 작업한 것을 쭉 보면서 꼬아야겠다 싶은 것은 한 두 문장 정도 꼬기도 한다. 물론 에피소드 안에서 튀지 않으면서 현재의 이슈를 자연스럽게 언급할 수 있는 방식으로 넣는다.

◆ "벼농사 프로젝트, 진짜 농촌의 모습을 보여줄 터"

▶ 앞으로 어떤 도전들을 보여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최근 기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벼농사를 짓는데 한창이라는 사실이 알려져서 화제를 모았다. 이 역시 웃음으로 공익을 실현하는 하나의 방식일까. '벼농사'라는 '무도'의 또 다른 연간 프로젝트가 궁금했다.

그동안 여러 가지 포맷을 사용했지만 때론 아직도 틀에 박혀있다는 생각을 한다. 또 새로운 도전이 뭐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벼농사 특집을 기획하게 됐다. 사실 타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농촌 투어 포맷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단발성에 그치거나 깊숙이 침투하지 않았다. 우리는 연간 프로젝트로 준비를 한 만큼 긴 시간을 투자해 직접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과장까지 보여줄 것이다.

정기적으로 멤버들이 농촌으로 가서 볍씨를 불리고 땅도 갈고 물도 대는 일련의 농사 과정을 직접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보여줌으로 인해 벼농사에 대한 관심 혹은 농촌의 현실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 어린이들에게도 간접 체험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부 프로젝트의 일환인 만큼 농사를 지은 뒤 수확한 것으로 기부 할 예정이다.

<사진 = MBC제공, '무한도전'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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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기자들이 풀어 놓는 취재후기 = http://pres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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