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권은비, '워터밤 여신'을 벗지 않고 넘어서는 법
  • 정병근 기자
  • 입력: 2026.09.06 00:00 / 수정: 2026.09.06 00:00
3일 디지털 싱글 'DEJAVU' 발매
힘을 덜어낸 자리에 채운 섬세함
권은비가 3일 디지털 싱글 DEJAVU를 발매했다. 새로운 출발선에서 내놓은 이 곡은 익숙한 이미지를 지우는 노래가 아니다. 그 이미지가 자신의 전부는 아니라고 비로소 원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노래다. /RBW
권은비가 3일 디지털 싱글 'DEJAVU'를 발매했다. 새로운 출발선에서 내놓은 이 곡은 익숙한 이미지를 지우는 노래가 아니다. 그 이미지가 자신의 전부는 아니라고 비로소 원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노래다. /RBW

[더팩트 | 정병근 기자] 걸그룹 예아의 멤버, 아이즈원의 리더, 솔로 가수 그리고 RBW에서 다시 출발한 아티스트. 권은비는 여러 번 새로운 문을 열고 무대에 섰다. 권은비는 주어진 문이 닫힐 때마다 또 다른 문을 찾았다. 네 번째 출발인 'DEJAVU(데자부)'에서는 마침내 자신이 열고 싶은 문을 직접 골랐다.

권은비는 지난 3일 디지털 싱글 'DEJAVU'를 발매했다. 2025년 4월 발표한 'Hello Stranger(헬로 스트레인저)' 이후 1년 4개월 만의 신곡이자 지난 4월 RBW와 전속계약을 체결한 뒤 처음 선보이는 결과물이다. 울림엔터테인먼트와 오랜 동행을 마무리한 그는 음악적인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며 또 한 번 출발선에 섰다.

권은비의 가수 인생에는 굵직한 변곡점이 여러 차례 있었다. 2014년 예아로 처음 데뷔했으나 이듬해 팀을 떠났고, 2018년 Mnet '프로듀스48'에 도전해 프로젝트 걸그룹 아이즈원으로 재데뷔했다. 아이즈원이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뒤 2021년 8월 첫 미니 앨범 'OPEN(오픈)'을 발표하고 솔로 가수로 홀로 섰다.

이후 5년여가 지난 지금 소속사를 옮기고 솔로 가수 권은비로서도 2막을 열었다. 예아가 꿈을 향한 첫걸음이었다면 아이즈원은 이름을 제대로 알린 도약이었고, 솔로 데뷔는 그룹의 리더가 아닌 한 명의 아티스트로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좀 더 분명하게 선택하기 시작했다.

네 번째 출발점에서 내놓은 'DEJAVU'는 익숙한 이미지를 지우는 노래가 아니다. 그 이미지가 자신의 전부는 아니라고 비로소 원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노래다.

사실 솔로 권은비는 처음부터 음악적으로 꽤 뚜렷했다. 'Door(도어)'에서 브라스와 재즈 요소를 가미한 일렉트로 스윙에 도전했고, 'Glitch(글리치)'에서 불규칙하게 변주하는 전자음에 '정해진 기준에 맞지 않아도 온전한 나'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Underwater(언더워터)'는 펑크와 아프로비트, 딥하우스를 결합해 보다 깊고 관능적인 세계를 펼쳤다.

다만 아이즈원을 떼어낸 뒤 곧바로 성공까지 거둔 건 아니다. 잘 만든 곡과 무대에 비해 화제성은 크지 않았고, 솔로 권은비를 대표할 만한 곡과 결정적인 장면이 없었다.

예아가 꿈을 향한 첫걸음이었다면 아이즈원은 이름을 알린 도약이었고, 솔로 데뷔는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권은비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좀 더 분명하게 선택하기 시작했다. /RBW
예아가 꿈을 향한 첫걸음이었다면 아이즈원은 이름을 알린 도약이었고, 솔로 데뷔는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권은비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좀 더 분명하게 선택하기 시작했다. /RBW

그 장면이 2023년 '워터밤'에서 만들어졌다. 권은비는 과감한 의상과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단숨에 주목받았다. '워터밤 여신'과 '서머퀸'이라는 수식어를 얻었고, 2022년 10월 발표한 'Underwater'도 다시 차트에 진입했다.

이는 단순히 비주얼만으로 만들어진 역주행은 아니었다. 'Underwater'는 워터밤에 앞서 이미 온라인에서 상승세를 보였던 곡이다. 강한 리듬과 유려하게 고조되는 보컬, 물속으로 상대를 끌어당기는 듯한 콘셉트가 야외 페스티벌의 물줄기와 만나 뒤늦게 폭발했다. 좋은 노래에 가장 적절한 무대가 붙으면서 잠재력이 터진 셈이다.

그럼에도 대중의 시선은 음악보다 비주얼에 더 많이 쏠렸다. 무대가 노래를 알렸지만 노래보다 무대 위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았다. 이는 가수로서의 영역을 좁혔다.

'워터밤' 이후의 음악도 이러한 이미지에 상당 부분 기댔다. 소속사에서 '서머퀸'을 전면에 내세운 'The Flash(더 플래시)', 관능적인 'SABOTAGE(사보타지)', 그리고 폭발적인 리듬과 브라스, 파워풀한 후렴으로 치닫는 아프로팝 'Hello Stranger'는 권은비가 뛰어난 퍼포머라는 사실을 재차 증명했지만 강렬과 관능이라는 익숙한 좌표 안에 있었다.

권은비는 '워터밤 여신'이라는 수식어가 자신을 대중에게 알린 소중한 자산임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다른 뭔가가 필요했고 새출발을 알린 지금이 적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워터밤 무대에 서지 않는 것은 상징적이고 자신의 노래에 먼저 시선이 닿기를 바라는 열망으로 읽힌다.

그 답으로 내놓은 'DEJAVU'는 힘을 더하는 대신 덜어낸 곡이다. 리드미컬한 베이스와 경쾌한 기타가 이끄는 디스코 팝이지만 비트를 세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신스와 스트링은 전면에 튀어나오기보다 뒤에서 산뜻한 질감을 만들고, 권은비의 보컬은 그 위를 가볍게 미끄러진다.

이전 곡들이 도입부에서 긴장을 쌓은 뒤 강한 비트와 고음으로 폭발했다면, 'DEJAVU'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온도와 호흡을 유지한다. 클라이맥스를 위해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리듬을 타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권은비가 "솔로 타이틀곡에서 처음으로 두드러지는 고음이 없는 노래"라고 설명한 이유다.

권은비는 성급하게 급격한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방점을 찍는 곳에 변화를 줬다. 퍼포먼스보다 목소리를, 자극적인 한 장면보다 곡 전체의 기분을 좀 더 앞에 놨다. /RBW
권은비는 성급하게 급격한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방점을 찍는 곳에 변화를 줬다. 퍼포먼스보다 목소리를, 자극적인 한 장면보다 곡 전체의 기분을 좀 더 앞에 놨다. /RBW

가창의 중심도 성량에서 음색으로 이동했다. 권은비는 힘 있는 소리를 길게 뻗는 대신 호흡을 섞은 여린 톤과 부드러운 발음, 짧은 리듬감을 활용한다. "Deja-dejavu Woo woo"를 반복하는 훅도 강하게 꽂아 넣기보다 콧노래처럼 맴돈다. 파워풀한 보컬 뒤에 가려졌던 섬세한 목소리를 새로운 무기로 썼다.

노랫말은 이러한 변화에 힘을 싣는다. "여백 따위 없던 네 Timeline", "벌써 몇 잔째 커피만 들이켰던 네 하루를 Stop" 등의 가사로 빽빽한 일상을 멈춘 뒤 바다와 햇빛, 달빛 속으로 청자를 데려간다.

권은비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Underwater'가 상대를 깊은 심해로 끌어당기는 강한 화자였다면 'DEJAVU'의 권은비는 함께 바다로 뛰어들자고 손을 내민다. 전자가 상대를 압도하는 매혹이라면 후자는 같은 눈높이에서 나누는 설렘이다. 똑같이 물과 여름을 품었지만 관계를 표현하는 방식과 목소리가 달라졌다.

뮤직비디오도 '워터밤'의 시선에서 벗어난다. 특히 카메라 오브제가 의미심장하다. 과거 권은비가 타인의 카메라에 포착돼 강렬한 이미지로 소비됐다면, 이번에는 스스로 렌즈를 들고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고른다. 보여지는 대상에서 자신이 보여줄 모습을 결정하는 주체로 이동했다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앨범을 관통하는 클리셰(CLICHÉ), 클래식(CLASSIC), 클로젯(CLOSET)이라는 세 단어도 같은 맥락이다. 대중이 기억하는 '서머퀸'의 이미지를 낡은 클리셰로 버리는 대신 자신의 역사를 구성한 클래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옷장(클로젯)에 쌓인 여러 스타일 가운데 지금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직접 꺼낸다.

권은비는 성급하게 급격한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방점을 찍는 곳에 변화를 줬다. 퍼포먼스보다 목소리를, 자극적인 한 장면보다 곡 전체의 기분을 좀 더 앞에 놨다. 같은 강점을 반복해 '워터밤 여신'으로 남기보다 새출발을 계기로 하고 싶은 것을 해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신곡 발매를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번 'DEJAVU'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든 첫 번째 곡"이라며 "경험도 많이 쌓였고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것을 더 정확히 알게 됐다. 그래서 더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려고 했다", "준비하면서 행복했다. 내가 했을 때 행복한 무대를 만들고 싶다", "새로운 음악에 많이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워터밤 권은비'가 '뮤지션 권은비'로 단번에 바뀌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그 수식어를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더 들려주고 이야기를 쌓아가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권은비는 네 번째 문을 아주 훌륭하게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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