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해야 할 일에 충실한 게 가장 행복한 길"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배우 김지훈이 자칫 비호감으로 남을 수 있던 캐릭터에 인간적인 얼굴을 입혔다. 인물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한 끝에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는 데뷔 25년 차에도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을 채워가는 김지훈의 연기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배우 김지훈이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극본 정은경, 연출 이창희, 이하 '지금 불륜')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경희(김혜수 분)의 남편 재홍 역을 맡은 그는 이날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 불륜'은 행복한 가정을 팔아온 인기 인플루언서 부부와 진흙탕 이혼 소송 중인 이웃집 의사 부부가 불륜조차 하찮아지는 감당 불가한 비밀로 얽히면서 폭주하는 연쇄 충돌 블랙코미디를 그린 드라마다. 총 8부작으로 5회까지 공개됐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1회씩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김지훈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큰 상황들이 벌어지고 매회 궁금증을 남기는 엔딩으로 끝난다"며 "한 회 한 회 공개될수록 인물들이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다. 앞으로 더 뜨거운 반응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지훈이 분한 재홍은 인기 인테리어 인플루언서 경희의 연하 남편이자 배우다. 이웃집 의사 수정(조여정 분)과 불륜 관계를 이어오던 그는 두 집안의 딸들이 연루된 뺑소니 사고를 계기로 불륜보다 더 큰 사건에 휘말린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건을 수습하려고 할수록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이기 시작한다.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설정을 품고 있는 만큼 자칫 재홍은 비호감으로 소비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김지훈이 캐릭터를 바라본 출발점은 의외로 공감이었다. 잘못을 저지른 인물을 두둔하기보다 그 잘못 이후에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하려 발버둥 치는 인간의 모습에 집중해 연기했단다.
그는 "불륜으로 시작하지만 이후 여러 상황이 꼬이고 재홍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정말 죽을힘을 다해 애쓴다"며 "시청자분들도 재홍을 보면서 어느 순간 자기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소개했다.

"재홍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하찮미'예요. 겉으로는 화려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사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아내 덕분에 살아가는 사람이잖아요. 그 안에서 여러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이 부분이 모든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었죠."
실제로 김지훈은 재홍의 '하찮미'를 과장되게 풀어내지 않았다. 초반에는 능청스러운 연하 남편의 면모로 웃음을 만들다가 뺑소니 사고 이후에는 초조함과 공포, 갑작스럽게 치솟는 분노를 빠르게 오가며 캐릭터의 온도를 바꾼다. 가족을 지키겠다고 나서면서도 불륜을 끊지 못하는 등 재훈의 모순적인 모습 역시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김지훈은 역시 이러한 포인트가 재홍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지점이라고 바라봤다. 그는 "사람들은 다 괜찮은 척하고 자신을 더 멋있고 예쁘게 보이게 하려고 겉모습을 유지하지 않나. 하지만 내면에는 돈이 많든 명예가 있든 상관없이 초라하고 하찮음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재홍은 그런 인간의 모습을 대변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작품에서는 불륜으로 시작하지만 개개인의 인생에서도 여러 사건이 반드시 발생하잖아요.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정말 무력해지고 초라해져요. 그렇지만 또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해 자기만 아는 혼신의 노력을 하죠. 시청자분들에게도 각자의 그런 인생 이야기가 있을 텐데 재홍을 통해 그런 부분에서 공감대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김지훈은 재홍을 특별한 세계 속 인물이 아닌 '우리 옆집에 정말 살고 있을 법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그는 "사람이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사고가 생기지 않냐.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 모습이 시청자분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대본에 여러 가지로 꼬이는 상황을 대처하고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살아 있었어요. 그래서 표현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캐릭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도전하게 됐어요."
그 도전은 재홍이 단순히 '불륜남'이라는 한 단어에 갇히지 않도록 만들었다. 김지훈은 능청스러운 남편과 불륜 관계에 빠진 남자, 사건의 실체 앞에서 겁에 질린 인간, 그리고 딸만큼은 지키고 싶은 아버지를 쉼 없이 오간다.

그렇기에 재홍이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크지 않았다. 그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도 잘못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지 않나. 잘못한 뒤 후회하고 반성하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어리숙하게 살아가기도 한다"며 "그런 모습이 무조건 질타받기보다 어느 정도는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고 얘기했다.
이처럼 김지훈이 재홍이라는 인물을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던 배경에는 캐릭터를 선악으로 단순하게 나누기보다 그 내면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어느덧 데뷔 25년 차를 맞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채우려고 하는 배우로서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2002년 KBS 드라마 '러빙유'로 데뷔한 김지훈은 '왔다! 장보리'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귀궁' '친애하는 X' 등 다양한 작품을 거치며 꾸준히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이번 '지금 불륜'에서도 코미디와 서스펜스, 능청스러움과 절박함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또 다른 얼굴을 꺼내 보였다.
그럼에도 김지훈은 요즘 "작품을 더 많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요즘 바쁘기도 해서 작품을 많이 찾아보지 못헀다. 그러다 보니 배우로서 밑천이 고갈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많은 경험을 통해 배우로서 자양분을 쌓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모든 경험을 직접 해볼 수는 없잖아요. 그런 부분을 좋은 책이나 영화 같은 양질의 작품을 통해 쌓아가는 게 배우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바쁘다 보니 그런 시간이 점점 부족해져서 다시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24년 동안 쌓아온 필모그래피에 안주하기보다 여전히 새로운 자양분을 찾는 이유도 결국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김지훈은 지나간 성과에 머무르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려고 한단다.
"과거를 잘 돌아보지 않는 편이에요.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면서 기뻐하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미래를 바라보면서 불안해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현재 제가 해야 할 일에 충실한 게 제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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