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 묵언수행부터 KIA 타이거즈 13번 달고 시구까지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숫자 13은 '13일의 금요일'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윤경호에게 올해의 13은 누구보다 행복했던 시간을 뜻하는 숫자였다. 다만 그는 그 숫자에 머물지 않았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배우. 그래서 윤경호의 진짜 전성기는 아직도 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윤경호는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극본 남대중, 연출 이승영)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달 25일 10부작을 끝으로 종영한 작품에서 그는 과거 전장의 신으로 불렸지만 현재는 '녹색 아버지의 신'으로 살아가는 박진철 역을 맡아 웃음과 감동을 안겼다.
윤경호를 향한 기다림은 꽤 길었다. 작품이 하나 끝날 때마다 "이번에는 꼭 만나고 싶다"고 바랐지만, 인터뷰는 번번이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그럼에도 방송이나 현장에서 잠깐이나 본 그의 모습은 유쾌하고 수다스럽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러블리한 사람이었기에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기대도 커졌다. 문제는 혹시 실제로는 다르다면 커진 기대만큼 실망도 클까 봐 우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인터뷰가 시작되기도 전에 기분 좋게 빗나갔다. 기자들이 대기하는 1층까지 직접 내려와 인터뷰 장소로 안내한 윤경호는 마지막 인터뷰 타임이라는 걸 강조하며 "편안하게 조금 더 길게 해도 괜찮겠죠?"라고 수다를 예고해 웃음을 안겼다. 정해진 시간보다 인터뷰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한 한마디였다.
방송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그보다 더 사랑스러웠다. 라운드 인터뷰 특성상 질문이 겹치거나 배우가 미처 답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음 질문이 나오는 순간들이 종종 생긴다. 그럴 때마다 윤경호는 "잠깐만요. 아까 그 질문 먼저 답해도 될까요?"라며 양해를 구했고, "아까 하려던 질문이 뭐였죠?"라며 먼저 기자를 찾았다. 누구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으려는 태도가 자연스레 몸에 배어 있었다.
긴 인터뷰 내내 그런 순간이 반복됐다. 질문 하나를 더 받기보다, 빠뜨린 답 하나를 더 전하려 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이기 전에 눈앞의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어른이었다. 방송에서 봤던 러블리함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실제 윤경호는 그보다 더 다정했고 더 포근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김부장'은 평범한 아빠가 하나뿐인 딸을 되찾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가 돼 싸우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날 윤경호는 '김부장'을 떠나보내며 "마지막 인터뷰라고 생각하니 괜히 먹먹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종영 이후 일부러 휴대전화를 멀리한 채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축하 전화와 메시지는 잠시 뒤로 미뤘다. 다시 아빠로, 남편으로 돌아가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든 마지막은 슬픈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아서 행복한 순간이 많았는데 막상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결국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사람이고, 배우라는 직업도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계속 이어가야 하는 거잖아요. 어제의 영광이 저를 교만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윤경호에게 올해는 유독 숫자 '13'이 따라붙었다. '김부장' 제작발표회에서 시청률 13% 공약을 내걸었고, 결국 약속대로 13시간 묵언 수행을 해냈다. 최근에는 KIA 타이거즈 시구자로 나서 등번호 13번을 달았다. 흐름세를 타기 시작한 지난해 '중증외상센터'부터 이번 대박의 '김부장'까지 출연한 작품을 하나씩 세어보니 어느덧 13편이었다. 우연처럼 이어진 숫자는 어느새 그를 상징하는 행운의 숫자가 됐다.
사실 '13'은 시작부터 계획된 숫자가 아니었다.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소지섭과 SBS 인연에서 시작해 주상욱이 말을 얹으며 갑작스럽게 "시청률 13%가 넘으면 13시간 묵언 수행을 하겠다"는 공약이 완성됐다. 실제로 작품은 첫 회 시청률 9.5%로 시작해 4회 만에 20%를 돌파하더니 최고 시청률 23.1%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이는 올해 방송된 미니시리즈 최고 기록이자 SBS 역대 금토드라마 가운데 '펜트하우스2'(29.2%)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윤경호는 "첫 방송에서 9%를 돌파하고 다음 날 제작발표회 당시 MC를 봐줬던 박경림 누나에게 "진짜 준비해야 할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날 곧바로 15%를 넘겼다"며 "기쁨도 잠시 그때부터는 어떻게 약속을 지킬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라이브 방송을 할지, 예능처럼 풀지, 진지하게 수행할지 회사 식구들과 머리를 맞댔다"고 돌이켰다.
"시청률이 오를수록 저는 공약 때문에 더 바빴어요.(웃음)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제작진은 일부러 말을 걸고, 김지영 선배님도 전화하시고, 라디오는 그래도 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공간이니 저도 모르게 말을 하게 돼 시간이 늘어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감사한 하루였어요."
그 하루가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팬들이었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배우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팬들이 찾아왔다. 휠체어를 타고 공주에서 온 팬도 있었고, 처음 팬사인회에 와 함께 묵언수행을 하겠다며 편지만 건네고 돌아간 이도 있었다. 윤경호는 집으로 돌아온 뒤 그 편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소리 내 읽었다고 했다.
"1000명 정도가 신청했다고 들었어요. 편지를 읽는데 하나같이 울컥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출근길에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힘을 얻었다고 하셨고, 또 어떤 분은 예능 이미지를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써주셨어요. 제가 연기를 잘하기 때문에 예능에서의 모습도 사랑하는 거라는 말이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편지들은 윤경호에게 단순한 응원이 아니었다. 배우로서 다음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건네준 선물이었다. 이에 인터뷰 내내 윤경호는 '감사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흥미로운 건 그 감사의 방식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진 사랑을 어떻게든 다시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어 했다.
일례로 윤경호는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이웃이 출근에 늦을 것 같으면 차를 태워주고, 식당에서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직원에게 먼저 사인을 권한다.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과시하기보다 누군가에게 반가운 하루를 만들어주는 일이 더 즐겁다고 했다.
"예전에는 외모 때문에 괜히 무섭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누군가에게 반가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요. 저는 그걸 혼자 '산타 할아버지 놀이'라고 불러요. 별것 아닌 행동인데도 누군가가 기뻐하면 저도 덩달아 행복해지거든요."
윤경호를 향한 관심은 작품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튜브 '핑계고'를 시작으로 각종 예능에서 보여준 수다스러운 입담은 어느새 그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이미지가 반갑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예능에서 사랑받는 이미지가 배우로서 독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팬들에게 받은 편지 한 통이 생각을 바꿔놨다. '연기를 잘해왔기 때문에 예능에서의 모습도 사랑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덕분에 윤경호는 이제 예능과 연기를 굳이 분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친근한 자신을 먼저 떠올리더라도 작품 속에서는 얼마든지 그 기대를 뒤집을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이제는 제 디폴트값이 생긴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를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작품에서는 '생각보다 무섭네'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수다스러운데 슬프네' 같은 반전을 보여드리면 되는 거잖아요. 그게 저만의 성장 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지난해 '중증외상센터'를 시작으로 '파인' '달까지 가자', 영화 '좀비딸'과 '굿뉴스', 올해 '취사병 전설이 되다' '김부장' 등 어느새 13편의 작품을 쉼 없이 달렸다. 이에 윤경호는 "작품 수까지 '13'일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13이라는 숫자로 귀결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내게 행운의 숫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13편의 작품 뒤에는 함께 달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가장 먼저 매니저의 이름을 꺼냈다. 새벽부터 밤까지 전국을 함께 오가며 버텨준 시간들을 떠올리며 "나 혼자 만든 결과가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윤경호는 오히려 지금이 가장 조심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작품이 잘될수록 욕심보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부담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부담도 결국 욕심에서 시작되는 거더라고요. 댓글이 많아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광고를 찍어서 행복한 것도 아니었어요. 늘 갖고 있던 걱정이 조금 사라졌기 때문에 행복했던 거였어요. 그래서 이제는 다시 제로베이스로 가려고 합니다."
차기작도 이미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 '타짜4' '고딩형사' '크로스2', 넷플릭스 '꿀알바', 디즈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이 관객과 시청자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김부장' 시즌2 역시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리는 작품이다. 다만 그는 성공 공식을 반복하기보다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부장' 시즌2가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새로운 모습을 계속 보여드리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바탕으로 또 다른 캐릭터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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