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허수아비' 정문성, 알면서도 속게 되는 연기력
  • 김샛별 기자
  • 입력: 2026.06.11 00:00 / 수정: 2026.06.11 00:00
연쇄살인범 이용우(이기환) 役…캐스팅 자체가 스포
'허수아비', 지난달 26일 종영…ENA 역대 시청률 2위 등극
배우 정문성이 <더팩트>와 만나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이언엔터테인먼트
배우 정문성이 <더팩트>와 만나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이언엔터테인먼트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배우 정문성은 늘 선함과 서늘함의 경계를 기막히게 오가는 배우다. 선한 눈망울로 대중을 무장해제 시켰다가도, 어느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서늘한 분위기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번 '허수아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한 얼굴을 강조해 불안함을 자아내더니 결국 강력한 반전을 선사했다. 정체를 알 수밖에 없다고 자부하는 시청자조차도 기어코 속여내고야 마는 정문성의 연기력이다.

정문성은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극본 이지현, 연출 박준우)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연쇄 살인범 이용우(=이기환)을 연기한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달 26일 12부를 끝으로 막을 내린 '허수아비'는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혐오하던 인물과 뜻밖의 공조 관계를 맺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1988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30년의 시간을 오가며 악연으로 얽힌 인물들의 진실을 추적한 작품은 묵직한 서스펜스와 인간 군상의 감정을 동시에 담아내며 웰메이드 장르물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정문성은 "현장 분위기가 워낙 좋아서 '이렇게 좋은 배우들과 찍었으니 잘 나왔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했다"며 "결과적으로 좋은 내용을 담은 웰메이드 드라마가 세상에 나온 것 같아서 행복하다. 이를 만들어준 스태프들과 동료 배우들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문성은 '허수아비'의 대본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야기 자체의 재미도 대단했지만, 드라마가 관통하고자 하는 묵직한 메시지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허수아비'라는 제목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요즘 워낙 알콩달콩하고 따듯하거나 코미디가 강한 이야기가 많지 않나. 반면 '허수아비'는 제목부터 결이 달라 다르게 다가왔다. 그런데 대본을 읽다 보니 심지어 내가 그 '허수아비'더라. 내용을 다 읽기도 전에 이미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캐릭터도 꼭 연기해 보고 싶은 인물이었다. 정문성은 "매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어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한다. 그 안에서 주인공인 태주(박해수 분)과 감정 싸움을 계속한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전했다.

배우 정문성이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속 연쇄살인범을 연기하기 위해 경계하고 신경 쓴 부분을 밝혔다. /KT스튜디오지니
배우 정문성이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속 연쇄살인범을 연기하기 위해 경계하고 신경 쓴 부분을 밝혔다. /KT스튜디오지니

극 중 정문성이 연기한 이기환은 죄책감 없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연쇄살인마다. 대개 악역을 맡을 때 인물의 서사를 찾아내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과 달리, 정문성은 철저하게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역발상으로 접근했다.

"이전의 저는 납득이 돼야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였어요. 하지만 이 작품은 달랐어요. 그래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죠. 결국 내린 결론은 '내가 납득이 되는 과정을 연기하면 안 되겠다'는 거였어요. 많은 이들뿐만 아니라 제 상식에서도 벗어난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에 상식 안에서 이해되는 감정으로 연기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는 '나쁜 사람이니까 나쁘게 연기해야지'라는 전제조차 경계했다. 그 사람 자체가 돼야 했기에 오히려 자신을 설득하려는 '자기방어적'인 변명들을 모두 걷어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환이라는 인물을 구체화하기 위해 '목적과 이유'가 필요한 순간도 있었다.

일례로 정문성은 기환이 태주와 지원(곽선영 분), 기범(송건희 분)을 자신을 지킬 '방패'라고 삼았다고 설정했다. 그 방패 뒤에서 자유롭게 악행을 저지르기 위해 그들 앞에서는 철저히 좋은 사람으로 위장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동생 기범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보다는 방패를 잃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먼저였다.

그는 "사실 내게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철길 앞이었다. 다른 장면은 대본대로 상황을 받아들이며 지나갈 수 있었는데 그것만큼은 쉽지 않았다"며 "그래서 기범이 죽음으로써 계획에 금이 갔을 때 그로 인해 다른 방패들까지 모두 잃게 될까 봐 방패 하나를 과감히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은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배우 정문성이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속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정을 붙이지 못했었다고 밝혔다. /자이언엔터테인먼트
배우 정문성이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속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정을 붙이지 못했었다고 밝혔다. /자이언엔터테인먼트

스스로도 캐릭터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정문성은 "내가 연기하는데도 인물에 애정이 안 가고 동정조차 생기지 않아서 촬영이 끝났을 때 허했다"며 "그렇지만 실화를 모티브로 한 만큼 조금이라도 인물에 서사를 주면 유가족분들께 상처가 될 것 같아 최대한 납득 안 되는 사람으로 연기하려 했다"고 털어놨다.

박 감독은 정문성의 선함 뒤에 숨은 서늘함을 보고 그를 캐스팅했다. 이후 정체를 감추기 위해 초반 분량을 줄이고 목소리 변조까지 감행하는 등 박 감독과 정문성은 철저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과거 장면에서 선보인 바가지 머리 스타일은 정문성의 아이디어였다. 인상이 세 보이는 눈썹을 가려 최대한 무해하고 좋은 사람처럼 위장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의상팀이 챙겨준 멜빵바지까지 더해지자 현장에서는 '동네 바보 형'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단다.

다만 정문성이라는 묵직한 존재감 자체가 진범의 힌트가 됐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이에 머쓱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정문성은 "혹시나 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나름 한 방을 제대로 날린 것 같다"며 7회 정체 공개 장면을 언급했다.

"7회를 배우, 스태프들과 모여서 봤어요. 보통은 첫방이나 종영 때 단체로 관람하는데 감독님이 이상하게 7회를 같이 보자고 하더라고요. 제 얼굴이 나오며 정체가 공개되자 다들 '오!' 하면서 깜짝 놀랐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아주 흐뭇해하셨습니다.(웃음)"

배우 정문성이 <더팩트>와 만나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이언엔터테인먼트
배우 정문성이 <더팩트>와 만나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이언엔터테인먼트

감옥 안에서 박해수와 펼친 1대1 대치 장면은 이틀 만에 몰아서 촬영했다. 방대한 분량 탓에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였지만, 정문성은 은근슬쩍 팔을 벌리는 등 '허수아비'를 형상화하는 섬세한 연기로 소름 돋는 디테일을 완성했다.

완벽한 열연 때문일까. 정문성은 최근 강아지 산책을 하다가 행인에게 "연쇄살인마다"라는 말을 듣고 도망쳐야 했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강아지를 들고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놔 웃음을 자아냈다.

이처럼 좋은 대본과 연출 그리고 이를 살린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허수아비'는 의미 있는 성적을 기록했다. 장르물이라는 진입장벽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체 최고 시청률 8.1%를 기록하며 역대 ENA 월화극 1위이자, ENA 전체 드라마 중 2위에 등극했다.

그러나 정작 정문성은 이러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드라마가 잘됐다는 기준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좋은 대본이 변질되지 않고 진짜 잘 만든 좋은 작품으로 세상에 남겨지게 돼서 다행입니다. 대본이 온전히 살아서 좋은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 배우로서 가장 감사한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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