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저는 한 번도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질 친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남들보다 두세 걸음씩 앞서 뛰어간 적도 없죠. 그저 묵묵하게 한 계단씩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 쌓은 단단함이 저에게는 가장 큰 원동력이에요."
차학연이 '로맨스의 절댓값'을 통해 또 하나의 계단을 올랐다. IQ 156의 멘사 회원이자 수학 천재인 '가우수', 그리고 그와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소설 속 '집착광공' 주시온까지. 1인 2역에 가까운 진폭을 오가며 그는 자신의 스펙트럼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지 증명해 보였다.
차학연은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쿠팡플레이 새 오리지널 시리즈 '로맨스의 절댓값'(감독 이태곤·김준형) 공개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가우수와 주시온 역을 맡은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며 자신 역시 "매주 금요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애청자가 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17일 첫 공개된 '로맨스의 절댓값'은 꽃미남 선생님들을 주인공으로 BL 소설을 쓰던 여고생 여의주(김향기 분)가 현실에서 그들과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마주하며 파란만장한 학교생활의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총 16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은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으며 오는 29일 막을 내린다. 이에 차학연은 "많은 분이 예상보다 더 재밌게 봐주시는 것 같아 기분 좋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공개 소감을 밝혔다.
전체적으로 코미디가 강점인 '로맨스의 절댓값'이지만 차학연은 그 안에 담긴 '청춘'에 집중했다. 그는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그 안에서 넘실거리는 청춘을 느꼈다. 그 청춘의 한 페이지에 제가 있고 싶었고 우수라는 인물을 통해 그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출연 계기를 전했다.
극 중 가우수는 현실적인 성향을 제외하면 차학연과 닮은 점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말투, 행동, 심지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까지 모두 달랐다. 차학연은 본인과 우수의 싱크로율을 고작 '10~20% 정도'라고 평가했다. 소설 속 인물인 주시온은 더 멀었다. 코믹 본능을 100까지 끌어올려야 겨우 닿을 수 있는 '5%의 닮음'이었다.
하지만 그 간극이 오히려 배우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차학연은 우수의 완벽한 판서를 재현하기 위해 집에 작은 방을 칠판과 분필로 가득 채웠다. 실제 학교 현장의 느낌을 알고 싶어 조카들을 앉혀두고 리허설을 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조카들을 앉혀두고 수업을 해봤는데, 실시간으로 기가 빨리는 걸 처음 느껴봤다"며 웃는 그에게선 역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엿보였다.
"해명 아닌 해명을 하자면, '무리한다'는 반응도 결국 시온이를 멋있게 표현하려다 생긴 즐거운 오해 같아요. 의상도 제가 생각한 가장 멋진 걸로 고르고, 아이돌 활동 때 했던 스모키 메이크업 중 가장 강렬한 걸 가져왔거든요. 제가 생각한 '멋짐'의 총집합이 시온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과함의 집합체로 표현된 거죠. 연기가 조금 과했을지 몰라도 시온이는 정말 멋있는 캐릭터예요.(웃음)"

현장에서 감독은 그에게 '리미티드(한계)'를 두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 한 마디에 차학연은 고삐를 풀고 신나게 날뛰었다. 5~6시간 동안 피팅을 하며 온갖 자료를 찾고, 동료 배우의 의상까지 빌려 입으며 비주얼을 구축했다. '이렇게까지 해도 될까?' 싶을 때마다 현장의 웃음소리가 그에게 확신을 줬다.
친누나의 "재수 없다"는 냉혹한 피드백이나, 빅스 멤버 혁이 피타고라스 분장 릴스를 공유하며 무언의 압박(?)을 보내는 상황조차 그에게는 즐거운 자극이었다. 특히 우수가 틀에 갇힌 인물을 벗어나 재해석되는 장면들을 연기하며 그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우수는 말투부터 판서 각도까지 철저하게 준비해서 연기한 인물이에요. 반면 주시온은 비주얼만 완벽히 세팅해두고 연기는 현장의 공기에 맡겼죠. 제스처나 움직임이 어떻게 튀어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이라 현장의 모든 소품을 이용했어요. 우수는 복잡한 사정을 품고 있지만, 시온이는 '상대를 가지겠다'는 목적 하나뿐이라 오히려 더 단순하고 즐겁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김향기는 그에게 거대한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차학연은 김향기를 향해 "연기를 시작하면 한 곳에 든든하게 서 있는 나무 같았다"고 표현했다. 자신은 그 그늘 아래서 쉬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그 단단함에 기대어 새로운 무기를 꺼내 들기도 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두 사람의 호흡은 코믹 신에서 더욱 빛났다. 웃음 장벽이 높은 편이라는 차학연도 김향기의 예상치 못한 표정 연기 앞에서는 무너졌다. 비둘기 똥을 맞는 장면이나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 등에서 NG를 너무 많이 내 무릎을 꿇고 사과했던 에피소드를 전할 때는 소년 같은 미소가 얼굴에 가득했다.
"우수로서는 아직 다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가 수학과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삶이었다면 앞으로는 학생들을 대하며 바운더리가 넓어지는 모습이 나올 거예요.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생기면서 우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성장의 진심이 시청자분들께 뭉클하게 다가갈 것이라 믿습니다."
최근 '조선변호사' '마인' 등에서 보여준 묵직한 이미지와 상반된 이번 변신은 그의 스펙트럼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차학연은 "배우는 늘 나에게 없는 모습을 꺼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이제 로맨스와 코믹을 해봤으니 다시 진한 장르물이나 사극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미 차기작 '골드디거' 촬영에 매진 중인 그는 이번에도 새로운 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영화 제작사 PD라는 역할에 맞춰 자신의 방을 꾸미고, 대선배 김희애와의 만남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코믹 본능을 싹 씻어냈다"는 그의 말에서 끊임없이 변주하려는 배우의 의지가 읽혔다.
"제 원동력은 차근차근 나아가는 거예요. 한 번도 뒷걸음질 친 적 없지만, 그렇다고 두 세 걸음씩 뛰어간 적도 없죠. 단단하게 집을 지어 나가는 이 과정이 저를 행복하게 해요.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며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오롯이 내 힘으로 작품을 끌어가고, 누군가 '저 배우와 연기하고 싶다'고 말해주는 그날까지 계속 한 계단씩 올라가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최근 빅스 멤버들과의 만남을 언급하며 환하게 웃었다. 14주년을 맞아 이벤트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과 함께, 멤버들과 팬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영원히 흐르는 청춘'이라고 정의했다. 배우로서,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그는 지금 가장 뜨겁고 찬란한 계절을 지나고 있었다.
끝으로 차학연은 아직 남은 '로맨스의 절댓값'에 많은 관심을 당부하며 시청자들이 끝까지 함께 달려주길 바랐다.
"촬영 마지막 날, 카메라 뒤에서 감독님과 스태프분들이 우는 모습을 봤어요. 학생 연기자들도 눈물을 흘렸죠. 모두에게 이 작품은 '청춘'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우수는 울면 안 되니까 꾹 참았지만, 저 역시 마음속으로는 함께 울컥했습니다. 우수로서, 또 차학연으로서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이 성장의 기록을 함께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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