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21세기 대군부인'이 역사 왜곡 논란이라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박준화 감독은 "제가 무지했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판타지 설정을 이유로 든 해명은 오히려 제작진의 안일함만 드러냈다. 사과는 있었지만 책임에 대한 답은 부족하다 보니 사과의 진정성마저 의문을 남겼다.
박준화 감독이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극본 유지원, 연출 박준화)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역사 왜곡 논란으로 거센 비판을 받은 그는 거듭 사과하며 "제가 무지했다"고 고개 숙였다.
'21세기 대군부인'은 21세기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모든 걸 가진 재벌이지만 신분은 고작 평민이라 짜증스러운 여자 성희주(아이유 분)와 왕의 아들이지만 아무것도 가질 수 없어 슬픈 남자 이안대군(변우석 분)의 이야기를 그렸다. 총 12부작으로 지난 16일 막을 내렸다.
작품은 최고 시청률 13.8%(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로 역대 MBC 금토드라마 3위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또한 디즈니+ 기준 글로벌 누적 시청 시간은 4300만 시간을 돌파했고 현재까지 디즈니+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한국 시리즈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성과만으로 작품을 설명할 수는 없다. '21세기 대군부인'은 방송 초반부터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 빈약한 스토리, 개연성 부족 등으로 꾸준히 잡음을 빚었다. 여기에 마지막 11회에서 역사 왜곡 의혹까지 불거지며 불명예 퇴장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왕위에 오른 이안대군이 중국의 신하가 착용하던 구류면류관을 사용하고 신하들이 자주국의 군주를 상징하는 표현인 만세 대신 제후국이 사용하는 천세를 외치는 모습이 등장하면서 동북공정 논란으로 번졌다.

이와 관련해 박 감독은 "'21세기 대군부인'의 세계관은 조선의 역사가 21세기까지 이어져 왔다는 설정에서 시작됐다. 조선 왕실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면 어떨까 하는 판타지에서 출발했다"며 "드라마적인 허구의 상황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역사적으로 더 무게감 있게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판타지라는 장르적 설정이 역사적 상징의 왜곡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특히 작품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OTT를 통해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공개된 만큼 왜곡된 이미지가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우려는 더욱 컸다.
박 감독 역시 이 지점을 인정했다. 그는 "판타지가 답은 아니었다. 대한제국과 우리 역사에 대한 표현을 더 신중하게 챙겼어야 했는데 감독으로서 부족했다"고 고개 숙였다.
이어 "21세기에 왕조가 남아 있다는 가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하지 않냐. 고증을 해주시는 분들도 그 지점을 바탕으로 해주셨다"며 "드라마 속의 시대가 판타지이긴 하지만 실제 역사가 있는데 가상이라는 설정에 너무 집중한 것 같았다. 제가 연출하는 입장에서 그 부분을 놓친 게 정말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왕실 묘사가 일본 왕실을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존재했다. 박 감독은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작가님과 얘기했던 건 '브리저튼'이었다"며 "과거 순정만화 속 왕실 공간과 무도회 같은 것을 꿈꾸며 그런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왕을 낳은 대비가 존재함에도 이안대군이 섭정을 하는 설정 역시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 감독은 "이안대군이 섭정을 하는 형태가 드라마 관계의 시작이었다. 그 시작이 없으면 스토리 자체가 표현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논란이 확산하자 주연 배우 아이유와 변우석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제작진 또한 "조선의 예법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제작진이 세심하게 살피지 못해 발생한 사안"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대본을 집필한 유지원 작가의 직접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아 논란은 더 커졌다. 박 감독은 "작가님께서는 긍정적인 스토리를 꿈꿨을 것"이라며 "다만 그 표현이 미숙했다고 생각하며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다. 잘못됐다고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이번 논란을 박 감독 개인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작가 연출자 제작사 방송사 등 수많은 관계자의 손을 거친다. 특히 지상파 방송을 통해 공개된 작품인 만큼 MBC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박 감독은 "판타지라는 설정 자체가 강했다. 저도 그 안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며 "우리의 실질적인 역사에 대한 부분을 더 잘 표현했어야 했다. 지금도 후회된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다 모르고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이후 VOD 자막 일부는 수정됐지만 여전히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팝업스토어는 중단 없이 진행됐고 대본집 역시 초판에 수정 스티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출간되고 있다.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폐지론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다. 박 감독은 "제가 연출하는 입장이다 보니 답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여러 가지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가 좀 더 잘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사과는 있었지만 명확한 후속 조치에 대한 답은 부족했다. 역사 왜곡은 국내 시청자만의 불편함을 넘어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왜곡된 인식이 확산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무지했다"고 사과하는 것만으로는 책임 있는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박 감독은 "불편한 상황을 제가 만들었다. 변명의 여지 없이 죄송하다"며 "감독은 작품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사람이다. 준비부터 촬영 편집 후반 작업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만큼 시청자분들이 느낄 불편함을 사전에 판단하고 정리했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을 놓친 것 같아 정말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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