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최현정 기자] K팝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시작된 '멀티 레이블 체제'가 10여 년을 지나면서 새로운 장르와 분야까지 활동 반경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 음악 시장에 멀티 레이블 체제가 시도된 것은 2013년을 시작으로 보고 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는 계열사인 SM C&C를 통해 울림엔터테인먼트를 합병하고 레이블 사업 추진을 발표했다.
또 그로부터 한 달 후에는 로엔엔터테인먼트(현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조영철 프로듀서를 대표로 로엔트리 레이블과 故신사동호랭이가 대표인 콜라보따리 레이블 등을 신설하고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인수해 멀티 레이블 체제로 전환하기도 했다.
다만 이 시도는 2016년 울림엔터테인먼트가 SM엔터테인먼트부터 다시 분사하고, 로엔엔터테인먼트도 카카오엔터테인먼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스타쉽엔터테인먼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레이블을 정리하면서 실패로 마치게 됐다.
더군다나 초창기 멀티 레이블은 주가나 실적 등을 위한 자회사 개념에 더 가까웠고 정석적인 개념의 멀티 레이블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유니버설뮤직그룹이나 소니 뮤직그룹, 워너뮤직그룹 등 일찌감치 멀티 레이블 체제를 도입한 글로벌 음악 기업의 경우 많게는 100개 이상 적어도 30개 이상의 산하 레이블을 두고 있으며 이들 레이블은 각각 서로 음악 장르와 특색을 지향한다.
그리고 각 레이블이 독립적으로 음악 창작과 아티스트 발굴 등을 수행하면 본사는 글로벌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유통과 마케팅, 법률 지원 등의 인프라와 리소스를 제공하는 것이 '멀티 레이블 체제'의 핵심이다.
이런 글로벌 음악 기업의 사례와 비교할 때 2013년의 국내 음악 시장의 멀티 레이블 전환 시도는 독립적인 제작환경 구축과 업무 구분 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당시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더 발전한 시스템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후반부터다. 지금은 사라졌으나 YG엔터테인먼트는 2015년 산하 레이블 하이그라운드를 설립해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을 영입한 바 있으며 더블랙레이블도 YG엔터테인먼트의 산하 레이블로 시작했다.
이어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하이브, 알비더블유 등 주요 기획사도 계속해서 레이블을 확장하며 멀티 레이블 체제가 완전히 자리 잡았고, CJ ENM이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의 대기업도 지분투자를 통해 여러 기획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그리고 10년 넘게 멀티 레이블 체제로 전환이 이어지면서 음악 시장의 환경 끼치는 영향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음악 제작자 A씨는 "예를 들어 JYP엔터테인먼트의 사내 레이블인 스튜디오J는 데이식스를 필두로 꾸준히 밴드 음악을 이어 오면서 한국 음악계에 밴드붐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자본과 인프라가 뒷받침되는 대형 기획사에서 꾸준히 추진하지 않았다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최근 주목받는 곳은 SM엔터테인먼트다. 하이브의 국내 레이블은 모두 K팝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고 JYP엔터테인먼트는 '본부' 단위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SM엔터테인먼트는 뚜렷한 음악색과 장르를 지닌 레이블을 연달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SM엔터테인먼트는 EDM 레이블 스크림 레코즈, 클래식&재즈 레이블 SM클래식스, 컨템포러리R&B 레이블 크루셜라이즈, 프로듀싱 전문 스마트(SMArt)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각각의 레이블이 추구하는 장르와 지향점이 모두 다르다. 때문에 '레이블 별로 고유한 색을 가진 특화된 음악'이라는 전통적인 멀티 레이블 체제의 특징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이성수 CAO(최고 A&R책임자)는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로즈홀에서 열린 '조수미 세계 무대 데뷔 40주년 기념 간담회'에 참석해 "K팝은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기 어려운 음악이다. 많은 장르가 섞여 있는 콘텐츠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음악의 뿌리를 단단히 잡기 위해 멀티 레이블 전략을 수립했고 SM 클래식스를 만들었다. 조수미와 SM엔터테인먼트, K팝에 모두 의미 있는 동행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조수미와 손잡은 이유를 밝혔다.
다양한 장르의 포용과 여러 분야로의 확장이 K팝의 발전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A씨 역시 "반드시 음악색이 다르고 다른 장르를 해야지만 멀티 레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영하는 방법은 회사마다 다른 게 당연하다"며 "다만 레이블별로 정체성이나 컬러가 명확하다면 멀티 레이블의 장점이나 시너지가 더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각 대형 기획사가 멀티 레이블 체제에 꾸준히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이들이 K팝과 가요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전망이다. 다만 최근 불거지고 있는 콘셉트 중복이나 대형 기획사와 중소 기획사의 부익부 빈익빈 문제 등은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멀티 레이블 체제를 운영 중인 기획사에서 일하는 B씨는 "멀티 레이블 체제가 정착되면서 이제는 각 레이블이 서로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5년 전만 해도 같은 본사 소속 레이블끼리는 같은 콘셉트, 장르 등으로 비슷한 시기에 나오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는데,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각 아티스트의 개성이나 트렌드를 따라 비슷한 콘셉트라도 강행하고 있다. 아티스트가 비슷한 이미지로 소비되고 내부 경쟁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단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B씨는 "사실 자본과 인프라의 차이로 인해 멀티 레이블 체제는 대기업만 진행 및 소화가 가능하다. 분명 업계에 좋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중소 기획사가 점점 소외되고 있다는 문제는 업계에서 꾸준히 나오는 이야기"라며 "시스템 전환 과도기에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라도 논의를 이어가 K팝 업계에 미치는 부작용이나 충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단순히 멀티 레이블 체제라는 형태를 두고 문제 삼거나 왈가왈부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다.
임희윤 대중문화 평론가는 "비슷한 콘셉트라는 것도 역으로 회사가 주도해 어떤 하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간다는 관점으로 보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될 수 있다"며 "만약 누군가가 피해를 입거나 시스템적으로 분명한 문제가 있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겠지만, 단순히 '멀티 레이블'이라는 형태를 두고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 평론가는 "시장이 발전하고 커질수록 기업이 여러 분야로 확장하는 것은 꼭 K팝이나 음악이 아니더라도 어느 산업에서나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더군다나 기획사마다 추구하는 가치나 방침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지금은 섣불리 멀티 레이블이 어떻게 되고 성장할 것인지 말하기 어려운 시점"이라며 "같은 맥락으로 멀티 레이블이어서 무조건 좋고, 굉장히 선진적인 구조고, 건강한 음악 산업과 다양성을 만드는 데 앞장선다는 등의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당분간은 흐름을 지켜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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