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우연인가, 기획인가'…반복되는 인맥 방송의 그림자
  • 강일홍 기자
  • 입력: 2025.09.15 09:16 / 수정: 2025.09.15 14:06
14일 방영된 '런닝맨', 가수 이효리 고모네 순댓국집
공정성 훼손 논란 유명인 인맥방송 '우연 가장한 연출'
SBS 런닝맨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14일 방영된 런닝맨 방송에서 멤버들은 천안의 한 순댓국집을 방문했다. 이효리 고모가 운영하는 곳으로, 특정 연예인의 친인척 가게가 소개되면 홍보 효과는 막대하다. /더팩트 DB
SBS '런닝맨'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14일 방영된 '런닝맨' 방송에서 멤버들은 천안의 한 순댓국집을 방문했다. 이효리 고모가 운영하는 곳으로, 특정 연예인의 친인척 가게가 소개되면 홍보 효과는 막대하다. /더팩트 DB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SBS '런닝맨'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14일 방영된 '런닝맨' 방송에서 멤버들은 천안의 한 순댓국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곳이 다름 아닌 가수 이효리의 고모가 운영하던 가게였고 현재는 이효리의 사촌오빠가 맡아 운영 중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방송은 이를 '우연한 발견'처럼 포장했지만, 방송 직후 온라인은 시끄러웠다. 일부 시청자들은 "너무 우연을 가장한 설정 같다", "사전 섭외된 인맥 방송 아니냐"는 의혹을 잇달아 제기했다.

이 장면이 문제시되는 이유는 단순한 친척 등장 때문만이 아니다. 국내 예능의 오랜 관행, 즉 연예인 인맥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방식이 다시금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마치 무작위 섭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친분 관계를 기반으로 한 기획이라는 의심이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는 방송의 '진정성'을 갉아먹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첫째, '우연'이라는 명분의 취약성이다. 예능 제작에는 수많은 인력과 사전 리허설, 동선 점검이 따른다. 멤버들이 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간 가게가 하필 출연자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과거 MBC '무한도전' 에서 박명수의 친동생 미용실을 등장시킨 '스텔스 마케팅 논란'을 떠올린다.

이는 시청자를 기만하는 방식으로, 결과적으로 프로그램의 신뢰도를 훼손한다. 시청자는 웃음을 원하지만, 웃음이 '꾸며낸 설정'임을 인지하는 순간 몰입은 깨질 수밖에 없다.

둘째, 인맥 방송이 불러오는 공정성 문제다. 방송 노출은 곧 경제적 이익과 직결된다. 특정 연예인의 친인척 가게가 소개되면 홍보 효과는 막대하다. 반면, 같은 지역에서 묵묵히 장사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방송에 등장한 가게는 가수 이효리의 고모가 운영하는 곳이고 현재는 이효리의 사촌오빠가 맡아 운영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제작진은 우연한 발견처럼 포장했지만 방송 직후 온라인은 시끄러웠다. 누리꾼들은 사전 섭외된 인맥 방송 아니냐는 의혹을 잇달아 제기했다. /SBS 런닝맨
방송에 등장한 가게는 가수 이효리의 고모가 운영하는 곳이고 현재는 이효리의 사촌오빠가 맡아 운영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제작진은 '우연한 발견'처럼 포장했지만 방송 직후 온라인은 시끄러웠다. 누리꾼들은 "사전 섭외된 인맥 방송 아니냐"는 의혹을 잇달아 제기했다. /SBS '런닝맨'

이처럼 불공정한 기회의 배분은 공영성·공정성을 강조해야 할 방송사의 역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결국 '방송은 권력을 가진 자의 놀이터'라는 인식을 심화시키게 된다.

셋째, 제작진의 안일한 태도다. 제작진은 "섭외 전화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됐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이 해명은 문제를 덮기보다 오히려 불신을 키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솔직한 설명이지, 뻔히 의심되는 상황을 우연으로 얼버무리는 변명은 아니다. 제작진이 스스로 윤리적 기준을 세우지 않는 한, 비슷한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사안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이는 예능 제작 전반에 깔린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연예인의 사적 네트워크에 의존해 '흥밋거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즉각적인 화제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방송 생태계를 피폐하게 만든다. 결국 프로그램은 점점 '리얼리티'를 잃고, 시청자는 피로감만 느끼게 된다.

방송은 공적 자원이다. 수많은 시청자가 보내는 신뢰와 광고 수익 위에서 운영되는 공적인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특정인의 인맥이 반복적으로 노출된다면, 이는 공적 자원의 사유화에 다름 아니다. 방송사가 '재미'라는 이름으로 이를 정당화한다면, 그 자체가 더 큰 문제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제작진은 우연을 가장한 연출에 기대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하며,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는 제작 원칙을 세워야 한다. 연예인 가족이나 지인 등장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최소한 그 과정이 사전에 명확히 고지되고, 방송 목적이 투명하게 설명돼야 한다. 시청자는 더 이상 '깜짝'이라는 변명에 속지 않는다.

이번 '런닝맨 논란'은 단순히 한 장면의 해프닝이 아니라, 한국 예능의 뿌리 깊은 관행을 다시 묻는 사건이다. 우연을 빌미로 한 인맥 방송이 계속된다면, 결국 무너지는 것은 프로그램의 재미가 아니라 방송 전체의 신뢰도라는 점을 제작진은 잊지 말아야 한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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