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가장 K팝스러운 음악의 '케데헌'과 틀을 깨려는 K팝
  • 최현정 기자
  • 입력: 2025.09.12 10:00 / 수정: 2025.09.12 10:00
'케데헌' 성공에도 현재 K팝 업계는 새로운 트렌드 개척에 적극적
힙합과 같은 범대중적 장르로 자리 잡을 기회 놓치지 말아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가장 K팝스러운 음악을 앞세워 큰 성공을 거뒀다./넷플릭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가장 'K팝스러운' 음악을 앞세워 큰 성공을 거뒀다./넷플릭스

[더팩트ㅣ최현정 기자] 도착하려는 목적지는 같으나 향하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지난 6월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수준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미 넷플릭스 역대 최다 시청 작품에 등극한 것은 물론이고 사상 첫 3억 뷰 돌파도 목전에 두고 있다. 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Golden(골든)' 'Your Idol(유어 아이돌)' 'Soda Pop(소다 팝)' 등은 빌보드를 비롯해 전 세계 주요 음악 차트를 점령하고 있다.

그 높은 인기와 화제성으로 인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OST의 성공 요인에 대한 분석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중 자주 언급되는 이유의 하나가 'K팝스러운 음악'이다.

'K팝스러운 음악'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K팝의 정의에 대해 조금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K팝은 장르적으로 구분하기 굉장히 난해한 음악이다. 일례로 하이브의 방식혁 의장도 "내가 느낄 때 K팝은 최소한 음악적인 장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의 K팝은 그룹 스트레이 키즈가 TVING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네레이션'에서 언급한 개념과 가장 유사하다. 당시 창빈과 아이엔은 "K팝은 종합예술인 것 같다. 좋은 음악도 들려줄 수 있고 춤도 보여줄 수 있고 화려한 패션 같은 것도 보여줄 수 있다. 음악도 될 수 있지만 하나의 큰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금의 K팝은 하나의 음악 장르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특정 문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K팝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스테레오 타입은 존재한다. 예를 들면 현란한 동선과 칼같이 짜인 군무, 화려한 의상과 매력적인 비주얼, 팝 댄스 장르를 기반으로 다양한 소스를 어레인지한 음악 스타일 등이 그렇다.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 K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스테레오 타입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보여준다. 특히 음악적인 부분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당장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는 각각 다른 스타일의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장르적으로는 대부분 '팝 댄스 곡'으로 분류해도 어색함이 없으며 극중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K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공개되고 일부 트랙이 아이브나 아스트로, 엔하이픈 등의 음악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이 나쁘거나 잘못됐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단지 선택과 집중의 이야기다. 애초에 제목부터 K팝이 들어가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가장 보편적이고 널리 알려진 K팝 스타일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게다가 OST의 각 트랙은 K팝이 아닌 하나의 음악으로 놓고 들어도 대다수가 인정할 만큼 좋은 퀄리티로 완성됐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스토리텔링 수단과 넷플릭스라는 거대 플랫폼의 전파력까지 더해져 폭발적인 시너지가 일어난 것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

결과적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기존 K팝 팬에게도 익숙하면서 이전까지 K팝을 듣지 않던 사람에게는 무난하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파이를 키웠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가장 K팝스러운 음악'으로 성공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재미있게도 '가장 K팝스러운 음악'이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와중에 정작 K팝의 본고장인 대한민국의 K팝 신에서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기'에 한창이다.

에스파는 짧은 기간에 매우 다양한 음악적 장르의 변화를 시도하는 대표적인 K팝 그룹이다./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는 짧은 기간에 매우 다양한 음악적 장르의 변화를 시도하는 대표적인 K팝 그룹이다./SM엔터테인먼트

'전형적'이라는 단어는 흔하고 많다는 뜻과도 맞닿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직 K팝 업계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음악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흔하고 무난한 스타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 이후 많은 K팝 제작자가 한 이야기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음악이 잘 만들어진 것과 별개로 비슷한 스타일은 K팝 신에 이미 많이 있다"였다.

이런 경향은 'Soda Pop'과 'Your Idol'의 작곡가로 이름을 올린 프로듀서 빈스(Vince)의 작업 후기에서도 드러난다.

빈스는 최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곡을 완성할 때 조금 달랐던 점은 다른 아티스트와 작업할 때는 내가 (의견을) 안 굽히는 구간이 있다. 그런데 이건 영화에 맞춰서 만들어야 하니까 소니 측의 피드백에 따라 수정해 줘야 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편했던 점도 있다. 예를 들어 'Soda Pop'은 음악도 그렇고 가사도 무조건 밝아야 했다. 처음 원곡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곡이다"라고 말했다.

즉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최근 K팝 트렌드에 개의치 않고 영화에 어울리는 K팝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반면 현재 K팝 신은 새로운 사운드 찾기에 열중이다. 팝 댄스나 일렉트로닉, 록, 힙합 등의 포괄적인 카테고리뿐만 아니라 드릴, 트랩, 이모 록, 하이퍼 팝, 개러지 록, 레이지, 테크노, 디스코 등등 마이너한 장르나 제3세계 음악까지도 결합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K팝의 스타일 변화가 얼마나 빠르고 변화무쌍한지 잘 보여주는 예가 그룹 에스파(aespa)다. 지난해 에스파는 댄스 팝 장르의 'Supernova(슈퍼노바)'로 공전의 히트를 달성했음에도 곧이어 발표한 'Armageddon(아마겟돈)'에서는 힙합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물론 'Supernova'가 첫 정규앨범 'Armageddon'의 선공개곡이었기에 이는 미리 정해진 플랜을 따른 것이었겠지만 'Armageddon' 이후 불과 5개월 후 발매한 'Whiplash(위플래시)'에서 에스파는 테크노라는 전혀 다른 장르를 선택했다. 또 이들은 'Dirty Work(더티 워크)'에서는 칠(Chill) 사운드를 가장 최근에 발매한 'Rich Man(리치 맨)'에서는 밴드 사운드를 결합해 매번 완전히 다른 음악 스타일을 시도하고 있다.

에스파뿐만 아니라 국내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른 다른 그룹들도 새로운 사운드와 장르 시도에 적극적이다. 블랙핑크(BLACKPINK)는 '뛰어!'로 하드테크노에 도전했고 올데이프로젝트(ALLDAY PROJECT)는 'Wicked(위키드)'에서 브라질리언 펑크·트랩·알앤비·드릴의 결합이라는 글자로만 보면 어떤 사운드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은 장르를 시도하기도 했다.

한술 더 떠 완전히 기존 K팝의 음악적 작법에서 벗어난 그룹도 등장했다. 빅히트뮤직의 신인 보이그룹 코르티스(CORTIS)가 그렇다. 코르티스는 최근 발매한 데뷔 앨범 'COLOR OUTSIDE THE LINES(컬러 아웃사이드 더 라인)'을 사이키델릭 록과 개러지 록, 레이지 등 실험적이기까지 한 음악들로 가득 채웠다. 장르적으로만 보면 코르티스는 확실히 '팝'으로 분류할 수 없는 그룹이다.

특히 미국의 유명 래퍼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를 연상케 하는 레이지 장르의 'FaSHioN(패션)'은 래퍼 식케이(Sik-K)가 샤라웃(긍정의 의미를 담아 대외적으로 언급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힙합 용어)을 하는 등 장르 음악 뮤지션에게도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현재 K팝 신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는 반대로 K팝의 틀을 깬 '전형적이지 않은' 사운드 찾기에 열중이다. 더군다나 K팝 시장이 커지면서 해외의 유명 작곡가들이 K팝 신에 진출하는 경우도 흔해졌고 송캠프 등으로 국제적인 음악 교류도 많아지면서 이러한 경향은 점점 가속화 되고 있다.

K팝이 이처럼 틀을 깨는 시도를 이어가는 의도는 비교적 명확하다. 앞서 'K팝의 정의'에서 언급한대로 K팝이 단순히 하나의 음악 장르가 아니라 범대중적이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다. 좋은 예가 힙합이다. 뉴욕 브롱크스에서 DJ쿨허크가 파티 음악으로 시작한 힙합은 이제는 음악 장르를 넘어 하나의 문화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았다.

방시혁 의장이나 스트레이 키즈가 언급한 것처럼 음악과 춤, 패션을 총망라하는 하나의 문화를 가리키는 현상으로 발전해가는 지금의 K팝은 힙합의 그것과 유사한 면이 있다.

빅히트뮤직의 신인 그룹 코르티스는 기존의 K팝 그룹의 음악적 작법에서 완전히 벗어난 음악을 들려준다./빅히트뮤직
빅히트뮤직의 신인 그룹 코르티스는 기존의 K팝 그룹의 음악적 작법에서 완전히 벗어난 음악을 들려준다./빅히트뮤직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시장에의 정착'이라는 목적지는 새로운 길을 찾는 현재 K팝이 아니라 음악 장르로서 과거의 길을 더 넓고 튼튼하게 확장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먼저 도착했다. 다만 이는 결과론일 뿐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나눌 수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다행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현재 K팝과도 길이 이어지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개봉 이전과 비교해 구글 트렌드 기준 한국 관련 키워드 검색량은 최대 900%까지 증가했고 이런 관심은 당연히 K팝에도 해당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비롯된 음악적 성공은 K팝이 노리는 범대중적인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큰 계기가 됐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가장 K팝스러운 음악으로 확장한 길 위에 오른 '틀에서 벗어난 K팝'이 글로벌 대중화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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