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앨범 이야기를 나눌 때 50여 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가수 이브(Yves)와의 50분은 상당히 짧았다. 경우에 따라 실없는 말이나 앨범 외의 대화들도 오가는데 이번엔 앨범 얘기만으로도 시간이 꽉 찼다.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브의 고민과 노력 그리고 그렇게 완성한 음악과 메시지가 그만큼 알차다.
이브는 7일 3번째 미니 앨범 'Soft Error(소프트 에러)'를 발매했다. 이를 앞두고 6일 오후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나 앨범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7년 데뷔한 걸그룹 이달의 소녀 출신으로 지난해 5월 첫 앨범 'LOOP(루프)'로 솔로 가수로 첫발을 뗀 이브는 세 번째 앨범에 이르러 더 주체적으로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 진정성이 느껴졌다.
'Soft Error'는 '일시적인 오류'라는 의미다. 완벽 혹은 자신감과는 조금 다른, 어쩌면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이브는 그 또한 인정하고 대담한 도약을 이뤘다.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을 겪은 후 변화된 자아로 세상에 나가지만 그 과정에서 피어난 섬세한 감정의 오류를 진솔하게 대면하고 여섯 트랙에 풀어냈다.
작사 작곡 어디에도 이브의 이름은 없지만 그렇다고 주어진 걸 해낸 것에 그친 게 아니다. 장황하지 않게 포인트를 정확히 담아 앨범을 소개하고 각 트랙의 특징과 메시지 그리고 왜 그 곡을 수록했는지 말하는 걸 보면 이브가 앨범 기획 단계부터 전반적으로 참여해 아이디어를 내면서 하나씩 정성스럽게 쌓아올렸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LOOP'로 솔로 가수로 첫발을 내디뎠고 미니 2집 'I Did(아이 이드)' 때 내 안에 평온함을 찾기 위해 불안정함을 감췄다면 이번 앨범은 그 감정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아가는 과정이에요.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 거쳐가는 단계일 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고, 곡을 듣는 분들이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일시적인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책임감과 부담감을 짊어지고 간다는 걸 느끼는 시간이었어요. 팀 활동을 할 때는 만들어준 옷을 입는 거였다면 지금은 어떤 옷을 만들지 상의하면서 같이 원단도 고르고 디자인도 하고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앨범도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프로듀서와 얘기를 많이 나누고 합의점을 찾아갔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Soft Error'는 선공개곡이자 더블 타이틀곡인 'White cat(화이트 캣)'과 또 다른 타이틀곡 'Soap(소프)'(feat. 핑크팬서리스)가 1,2번 트랙에 위치한다. 'White cat'은 일렉트로닉 팝 기반의 부유하는 감정을, 'Soap'는 마이애미 베이스 드럼 라인을 중심으로 무뎌진 감정의 잔상을 그려냈다.
여기에 얼터너티브 록 장르의 'Aibo(아이보)'(feat. 브래티), 감각적인 전자 사운드가 돋보이는 'Do you feel it like i touch(두 유 필 잇 라이크 아이 터치)'와 'Study(스터디)', 인디팝 무드의 'mom(맘)'이 앨범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브는 지금까지 거쳐온 단계 속에서 았었던 오류를 인정하고 느끼는 감정을 각 장르로 풀었다.
장르도 장르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때론 가사를 통한 이야기 그 자체가 주가 되지만 때론 감정의 비대칭성 혹은 비정형화된 리듬으로, 때론 미니멀한 가사에 곡 분위기만으로, 그것도 아니면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반전으로 'Soft Error'를 표현했다.
"사랑 받고 보호받던 페르시안 고양이가 탈출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에서 시작"한 'White cat'은 체계화된 회사에서 그룹 활동을 하던 곳에서 벗어나 불안하지만 자유롭게 음악 세계를 펼쳐가는 자신의 모습을 고양이에 투영했고, 'Soap'는 마이애미 베이스 드럼 라인 위 신나고 통통 튀는 음악에 무뎌진 감정과 지워지지 않는 잔상을 표현했다.
'Aibo'는 로봇 강아지 이름이다. 감정을 주고받는 줄 알았던 관계가 실은 나만의 정서 투사였음을 깨다는 고백이다. 이브는 "가사가 쓸쓸한데 노래는 엄청 신난다. 그 대비감이 재미있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Do you feel it like i touch'는 촉각처럼 흐릿하지만 분명한 정서를 전달하는 곡이다. 이브는 "가사의 의미가 행동이나 말이 아니고 그냥 직관적으로 내 사랑이 느껴지는지 다가가는 거라서 뭔가 섬세하게 보컬을 넣지 않고 느끼는대로 표현하려고 했다. 테이크를 많이 가져가지 않고 툭툭 던지듯이 느낌 위주의 부른 곡"이라고 설명했다.
'Study'는 감정을 체계화하려는 시도와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남는 정서적 공허함을 포착한 곡이다. 이브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곡 구성이 있는데 이 곡은 에상을 벗어난다. 비정형화된 리듬이 나오고 그것도 어긋나게 나온다. 문장 하나를 녹음해서 그걸 샘플링 하듯이 갖고 노는 곡이고 이 앨범 자체를 잘 설명해주는 곡"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트랙 'mom'은 또 한번 예상을 깬다. 스릴러 영화 '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곡은 정형화된 감정을 깨부순다. '엄마'는 완전한 사랑을 주는 존재지만 이 곡은 다른 감정을 다룬다. 이브는 "가사가 '이제 잘 시간이야. 약을 먹자'처럼 스산하다. 음악도 속삭이듯 진행된다. 정형화된 감정이 아니라 반전으로 앨범을 끝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Soft Error'를 각각의 방식으로 표현한 곡들은 이브의 다채로운 보컬과 만나 시너지를 냈다. 'White cat'은 고양이처럼 앙칼지게, 'Soap'는 신나는 느낌에 평소의 몽환적인 톤으로, 'Aibo'는 거칠게 날것의 소리로 불렀다. 'Do you feel it like i touch'는 호흡 위주로 느낌만 줬고, 'mom'은 속삭이듯 불러 스산한 느낌을 배가했다.
이렇다 보니 앨범 전체가 지루할 틈이 없고 메시지가 확연하게 와 닿는다. 곡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브의 목소리와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이 곡들을 작업하는 동안의 설렘과 재미가 배어났다. 이러니 인터뷰를 하는 50분이 짧게 느껴졌고, 앨범 발매 후 정주행한 앨범 러닝타임 약 16분은 더 짧게 느껴질 수밖에.
"처음 솔로로 나올 때 제가 어느 정도까지 얘기하는 게 좋은지 몰랐고 어느 범위를 넘어가면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회사에선 더 명확하게 다 얘기해도 된다고 해줬고 망설임이 없어지면서 뭔가가 떠오르면 바로 얘기를 하게 됐어요. 아이디어를 내고 PPT도 같이 만드는데 그 과정들이 정말 재미있어요.(웃음)"
이브는 이 정도에 안주하지 않는다. "아직은 수록하지 못했지만 곡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그는 다음 앨범에 자신이 만든 곡이 꼭 담기길 바랐다. 그게 언제일진 모르지만 분명한 건 이번 앨범을 기점으로 이브의 다음 음악을 기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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