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수빈 기자] 배우 김지연이 장르의 벽을 완벽하게 허물었다. 처음 도전하는 판타지물에서 낯선 주술과 빙의 연기, 로맨스와 코미디까지 버무려진 장르를 흔들림 없이 소화하며 '믿고 보는 배우'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귀궁'은 그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새로운 김지연을 발견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김지연이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킹콩by스타쉽 사옥에서 <더팩트>와 만나 SBS 금토드라마 '귀궁'(극본 윤수정, 연출 윤성식)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여리 역을 맡은 그는 이날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귀궁'은 영매의 운명을 거부하는 무녀 여리와 여리의 첫사랑 윤갑(육성재 분)의 몸에 갇힌 이무기 강철이(육성재 분)가 왕가에 원한을 품은 팔척귀에 맞닥뜨리며 몸과 혼이 단단히 꼬여버리는 판타지 로맨스 코미디다. 총 16부작으로 지난 7일 종영했다.
신선한 소재와 장르적 실험을 갖춘 '귀궁'은 1회 시청률 9.2%(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로 출발해 최종회에서 11.0%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김지연은 "너무 좋은 드라마의 좋은 역할을 맡게 돼서 영광이었다. 너무 많이 사랑해 주셔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처음에는 시청률이 잘못 나온 줄 알았어요. 시청률을 확인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다 보니까 첫 방송 때 심장이 두근거려서 잠을 한숨도 못 잤거든요.(웃음) 다음 날 아침에 1회 시청률 보고 처음에는 잘못 나온 줄 알았죠. 워낙 전 작품이 잘 됐다 보니까 안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잘 나와서 신기했어요."
김지연은 유명한 만신의 하나뿐인 손녀로 뛰어난 신기를 지녔지만 무녀의 운명을 거부하고 안경 장인으로 살아가는 여리 역으로 열연했다. 무녀로서의 숙명을 거부한 인물을 연기하며 스스로도 낯선 감정선과 마주해야 했던 만큼 이번 작품은 배우로서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특히 여리의 원래 직업이 무녀가 아닌 만큼 김지연은 그 부분에 초점을 두고 연기했다. 그는 "감독님께서 완전 판타지적으로 풀 거라고 얘기를 해주셨다. 그래서 무속 선생님들 자문을 받기는 하지만 판타지에 더 초점을 맞춰서 연기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주술이 진짜 너무 어려웠어요. 사자성어 같은 게 엄청 많고 평소에 안 쓰던 말이다 보니까 진짜 안 외워지는 거예요. 그래서 촬영하기 전부터 냉장고, 침대 앞에 대사를 붙여놓고 핸드폰 배경 화면에도 해놨어요. 그냥 외우는 거 말고는 답이 없더라고요."
익숙지 않은 말과 낯선 상황들 속에서도 김지연은 여리라는 캐릭터를 자신만의 결로 채워나갔다. 특히 극 중에서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색깔의 로맨스를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윤갑과는 첫사랑의 설레고도 달달한 로맨스를, 강철이와는 티격태격 '혐관 케미'에서 시작된 로맨스를 풀어내 호평을 이끌었다.
특히 강철이를 향한 여리의 마음이 사랑으로 변해가는 감정선은 김지연의 섬세한 표정 변화와 호흡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 변화의 결이 살아 있는 연기 덕에 시청자들 역시 캐릭터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워낙 두 로맨스의 결이 다르다 보니 이를 오가는 연기도 쉽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김지연은 의외로 "로맨스보다 코미디 부분이 더 어려웠다"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윤갑이랑은 정통 사극의 멜로로, 강철이와는 현대극 '로코'(로맨틱 코미디)처럼 표현하려고 했어요. 윤갑이랑 있을 때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사극 말투를 사용했다면 강철이와 있을 때는 저희 본체 모습이 나왔던 것 같요. 강철이랑은 싸우는 씬이 더 많다 보니까 성재랑 이게 더 편하다고 얘기하기도 했죠.(웃음) 근데 그거보다 코미디 연기를 적당한 선을 지켜가면서 하는 게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더불어 김지연은 실감 나는 빙의 연기를 통해 원한귀들의 사연 해결은 물론 결연한 눈빛을 빛내며 팔척귀에 맞서는 등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귀신들과의 교감을 톻애 훈훈한 '케미'까지 그려내며 판타지 서사의 감정 밀도를 높였다.
하지만 이 모든 장면이 물 흐르듯 흘러갔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김지연이 가장 힘들고도 고민이 깊었던 부분은 바로 '빙의 장면'이었다. 그는 "원래 작품을 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또 많이 부딪히면서 깨는 스타일이기는 하다. '귀궁'에서는 빙의가 가장 큰 숙제였다"고 털어놨다.
"어차피 여리의 몸에 빙의가 된 거기 때문에 목소리를 바꾼다기보다는, 한이 맺힌 귀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여리의 몸을 빌린 거니까 진정성이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목소리 톤이 어떻고 이런 것보다 감정전달이 돼야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아서 그 부분에 더 중점을 뒀죠."
귀신을 다루는 역할을 연기하다 보니 신기한 경험도 있었다. 실제 무속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디테일한 준비 과정을 거친 김지연은 현장에서 느꼈던 에피소드까지 들려줬다. 그는 "여리가 종을 드는 장면이 많다 보니까 어색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실제로 종을 하나 빌려주셨다"고 회상했다.
"무당들이 처음에 신내림을 받으면 종소리가 그 사람에게만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으니까 무서웠는데, 실제로 방에 종이 있으니까 그날 밤에 종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거예요. 그래서 다음날 선생님한테 가서 여쭤봤는데 '귀신을 쫓는 종인데 왜 귀신이 오냐'고 해주셨어요.(웃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좀 심리적인 게 있던 것 같아요."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루는 만큼 작품 전체가 김지연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는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힘들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낯선 세계에 몰입하며 가장 좋아하는 장르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기에 그 고생은 성취로 남을 것이다.
"현실성이 없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제가 이런 걸 해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대본을 읽었을 때 재밌긴 했는데 그만큼 걱정도 많았어요.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과 너무 다르다 보니 어색하고 낯설더라고요. 하지만 워낙 베테랑분들이 많았고 특히 성재가 판타지를 많이 했다 보니까 도움을 청하면서 했던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도 많이 찾아보고 현실적이지 않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죠."
스스로에게도 새로운 방식을 요구하는 작품이었지만 김지연은 흔들림 없이 캐릭터와 서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이 바탕에는 김지연이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필모그래피가 있던 덕분이다. 2017년 드라마 '최고의 한방'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김지연은 '란제리 소녀시대' '오! 삼광빌라!' '스물다섯 스물하나' '피라미드 게임'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대중들에게 각인시켜 왔다.
특히 장르 불문 탄탄한 감정선과 개성 있는 연기로 '믿고 보는 배우'로 도약 중인 그는 '귀궁'을 통해 또 한 번의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이번에 '귀궁'을 하면서 장르에 대한 두려움이 좀 사라진 것 같아요. 로맨스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를 조금씩 경험해 봤다 보니까 어떤 장르가 오더라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조금 생긴 것 같아요. 장르의 한계가 없는, 모든 장르가 어울린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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