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다작은 아니어도 꾸준히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배우가 있다. 가끔 '이 배우는 요새 뭐하지?'라는 궁금증에 찾아보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일지도 모른다. 이는 배우 정가람의 간절한 바람과도 맞닿아 있다. 스무 살 때도 서른이 넘은 지금도 이 바람은 변하지 않았다. '꾸준히 계속해서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 정가람의 길이다.
정가람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시리즈 '탄금'(극본 김진아, 연출 김홍선) 공개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홍랑(이재욱 분) 대신해 민상단 양자가 된 무진을 맡은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16일 11부작 전편 공개된 '탄금'은 실종됐던 조선 최대 상단의 아들 홍랑이 기억을 잃은 채 12년 만에 돌아오고 이복누이 재이만이 그의 실체를 의심하는 가운데 둘 사이 싹트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담은 미스터리 멜로 사극이다.
장다혜 작가의 인기 소설 '탄금: 금을 삼키다'를 원작으로 한 작품은 죽을 때까지 금을 삼켜야 하는 고대 중국의 형벌을 뜻하는 제목처럼 주인공들에게 닥친 아름답고도 잔혹한 운명을 그렸다.
작품은 공개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8개월의 촬영을 끝내고도 후반 작업에만 약 1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에 정가람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나온 작품이라 보람차고 설레면서도 한 번에 공개가 되다 보니 왠지 모를 아쉬움도 있다"며 "한 번에 작품이 정리가 된다고 생각하니 씁쓸함이 남기도 한 상태"라고 공개 소감을 밝혔다.
정가람은 '탄금'을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했다. 그는 "사극이라는 것 자체가 한국적이기도 하고 TV를 틀면 자주 볼 수 있는 장르라는 데서 친근하지 않나. 그런데 막상 하니까 쉬운 게 없더라"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럼에도 그는 "현장감이 중요했다. 한복도 입고 당시의 소품을 착용하기도 때로는 보기도 하면서 리얼하게 준비된 현장 덕분에 사극이라는 장르에 스며들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대본을 처음 받은 날도 떠올렸다. 정가람은 "내가 시놉시스와 대본을 받았을 때는 이미 어느 정도 캐스팅이 진행된 상태였다. 그래서 더 몰입해서 재밌게 읽었다"며 "여러 가지 사건들에서 오는 재미도 있지만 미스터리와 멜로가 가미된 부분이 매력적이었다"고 전했다.
"무진이라는 캐릭터는 처음 보자마자 안쓰러웠어요. 홍랑이 돌아오면서 '무진의 세상'은 무너지고 자신이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래서 무진을 연기한다면 한 작품 안에서 극과 극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무진의 것은 처음부터 없다는 설정이었다. 양자로 들이긴 했지만 곁을 내주지 않는 민상단 안에서 '무언가를 뺏겼다'는 감정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무진의 감정선은 설명이 필요했다. 때문에 정가람이 해석하고 표현한 '무진의 세상'이 더욱 궁금했다.
이에 정가람은 "물론 홍랑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들어갔지만, 여기서 자리 잡고 노력하다 보면 민상단의 한 축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노력했을 터다. 나아가 재이랑도 같이 행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홍랑이 돌아오면서 계획했던 것들이 다 무너지기 시작하지 않았나. 이런 점이 무진의 세상이 무너졌다고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무진에게는 재이가 누구보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존재였다. 결국 마지막에 무진은 사랑하는 재이를 선택하며 희생을 감수한다. 정가람은 "'사랑'이란 건 꼭 상대방이랑 연결돼야만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 무진이 재이를 얼마나 아끼고 소중히 여겼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전했다.
"만약 무진이 무난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면 조금 더 재이에게 이성적인 사랑의 감장을 느끼거나 강요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무진은 어렸을 때부터 재이가 자신처럼 고통받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재이에게라도 더 나은 삶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을까요."
조보아를 중심으로 이재욱과 정가람이 얽히는 만큼 세 사람의 호흡도 궁금했다. 특히 정가람은 나이로는 셋 중 둘째였다. 그러나 짓궂게 놀리고 싶어지는 순수한 반응과 때때로 보이는 어리숙한 모습들이 가장 막내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를 언급하자 정가람은 "재욱 씨가 워낙 액션도 잘하고 사극도 이미 해보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 질문도 종종 하고 합을 맞출 때는 많이 의지했다. 그래서 형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며 웃어보였다. 이어 조보아에 관해서는 "누나의 대중적인 이미지가 러블리하지 않나. 실제 성격은 더 러블리하고 좋다. 누나랑 할 때는 정말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사람 좋아 모드'인 정가람은 조보아의 눈빛에 상처를 받기도 했단다. 그는 "무진이 극단적으로 변하지 않나. 그럴 때마다 재이가 보내는 눈빛이 있는데 굉장히 질려하는 느낌이었다. 그게 무진으로서도 정가람으로서도 상처로 남으며 저절로 '이게 아닌 것 같다'는 무진의 감정이 생겼던 것 같다"고 전했다.
영화 '기묘한 가족'으로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엄지원에게 받은 타격은 더 컸다. 그는 "선배님께 표현은 잘 못하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며 "그래서 '탄금'을 같이 하게 됐을 때 너무 기쁘고 촬영장에 갈 때마다 좋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하지만 촬영만 들어가면 민연의(엄지원 분)의 힘으로 밀어붙이니까 괜히 더 서럽고 마음이 아팠다. 특히 '말뚝 뽑아버려'라는 말에는 정말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놔 웃음을 안겼다.
'탄금' 속 모든 캐릭터는 자신이 좇는 '금'을 향해 나아간다. 비단 작품 속 인물들뿐만이 아닐 터다. 우리들 역시 저마다의 '금'이 존재할 터다. 그렇다면 정가람의 '금'이자 간절히 바라는 건 무엇일까.
정가람은 "배우라는 일을, 연기라는 작업을 꾸준히 계속하고 싶다는 것"이라며 "스무 살 때도 어렸지만 난 지금도 어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철이 안 들겠다는 건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서 도전하고 시도하며 흥미롭게 살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좋아하면 울리는'부터 '사랑의 이해' '탄금'까지 2년에 한 번씩은 시청자를 만나고 있는 정가람이다. 다만 주로 짝사랑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 이에 그는 현재 시점에서 가장 도전하고 싶은 것으로 '멜로 장르'를 꼽았다. 정가람은 "이제는 사랑을 주기도 받기도 하면서 서로 서사를 쌓아가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에 죽지 않고 행복한 결말이 나는 일상적인 작품도 하고 싶다"고 바랐다.
"하다 보니 2년마다 인사를 드리는 것 같아요. 아직 차기작이 정해진 건 없지만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모습 역시 한층 더 발전되고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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