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수빈 기자] 진창규 감독이 '보물섬'을 향한 항해를 마쳤다. 치밀한 설계와 감정의 밀도를 더한 연출, 배우들과의 섬세한 교감을 통해 '보물섬'이라는 복수극에 깊이를 더한 그는 작품 전반에 뜨거운 애정을 쏟아냈다. 그 노력은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고 이는 곧 높은 시청률과 뜨거운 화제성이라는 값진 결실로 이어졌다. 비록 마지막 회에서 호불호가 갈리긴 했으나 그럼에도 진창규 감독은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SBS 금토드라마 '보물섬'(극본 이명희, 연출 진창규) 진창규 감독이 최근 <더팩트>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종영 소감부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까지, '보물섬'을 향한 마지막 인사를 차분히 풀어냈다.
'보물섬'은 2조 원의 정치 비자금을 해킹한 서동주(박형식 분)가 자신을 죽인 절대 악과 그 세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인생 풀베팅 복수전이다. 총 16부작으로 지난 12일 막을 내렸다.
작품은 첫 회 시청률 6.1%(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로 출발해 최종회에서 15.4%로 막을 내렸다. 무려 9.3%P 상승한 기록이다. 이러한 인기에 대해 진창규 감독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꽤 복잡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워낙 어두운 톤이라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기 힘들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명희 작가님의 글이 가진 힘과 박형식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력을 가진 배우들의 연기가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 같아요.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극 중에는 출생의 비밀과 기억 상실까지 자극적인 클리셰가 가득했다. 그러나 진 감독은 이 익숙한 장치를 오히려 매력으로 전환했다. 그는 "어려운 부분을 최대한 직관적이면서 쉽게 대본 안에 숨어 있는 감정들을 끌어내도록, 끌어낸 배우들의 감정을 최대한 따라가도록 다듬었다"고 연출 주안점을 밝혔다.
"배우들과 합이 좋았어요. 현장에서 배우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그들이 저에게 주는 아이디어와 영감들이 작품에 잘 녹아 들었어요. 시청자분들이 이 정도로 좋아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것만 해도 충분히 알아봐 주신 것 같아요."
이러한 전형적인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 건 박형식과 허준호를 비롯한 주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이다. 이들의 열연은 클리셰로만 그칠 수 있는 이야기를 힘 있게 이끌어 간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본과 캐릭터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배우들과의 작업은 연출자를 긴장하게 만드는 동시에 희열을 줘요. 우리 현장이 그랬던 거 같아요. 서로 장면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하고 그중에 제일 맞는 길을 찾아가는 것. 저도 지지 않으려고 더 많이 고민해 갔던 것 같아요. '보물섬'의 세계를 만들어낸 배우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연출자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무엇이었을까. 진 감독은 1회와 3회 장면을 꼽으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허일도가 동주를 바다에서 총으로 죽인 다음 대산의 비자금 금고를 열려고 비밀번호 적힌 쪽지를 가지고 가는 때요. 쪽지 속 비밀번호가 맞지 않는다는 걸 안 후 금고 앞에 쓰러지듯 앉아서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표정을 지으면서 '부활하라고'를 외치는 3부 엔딩이 기억나요. '부활하라'라는 우리가 현실에서 한 번도 입 밖에 내보지 않았던 문장을 어떤 느낌으로 외쳐야 하는지 이해영 선배님과 얘기 나눴던 기억이 나요. 리허설 때는 상상도 못 한 표정을 보게 돼서 너무 즐거웠어요."
"또 하나는 1부 은남(홍화연 분)과 동주의 첫 만남 후 동호대교씬이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얼마나 진심이고 애틋한 사랑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서동주의 첫 동력은 은남에 대한 사랑이었거든요. 촬영할 때는 대사도 없는 씬이라 배우들에게 편하게 얘기해달라는 주문을 했어요. 카메라는 '큐' 사인도 없이 그냥 돌렸어요. 홍화연과 박형식이 자기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들려주며 함께 웃었고 그 부분들이 좀 더 애틋한 느낌의 표정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작품의 결말을 두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에 대해 진 감독은 서동주라는 인물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길에 대해 고민이 깊었다고 고백했다.
"서동주는 어떤 드라마의 주인공보다 16회 내내 온갖 고난을 겪으며 구른 인물이고 자신이 아끼던 사람들, 핏줄인 사람들이 다 죽었어요. 염장선에 대한 복수를 끝냈다고 속 시원한 사이다가 되진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염장선을 죽이지 않고 보내줌으로써 인간으로서 마지막 끈을 놓지 않은 인물이 된 거라고 생각해요. 이 욕망의 아비규환에서 동주만이 모든 걸 버리고 떠날 줄 아는 인물이 됐죠."
"대산에서는 또다시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어요. 인간적인 것을 지킨 동주와 그렇지 않은 염장선, 대산의 인물들을 비교해 보면 어떤 태도가 우리 삶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게 해주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통속적인 대중 드라마에서는 맞지 않는 엔딩일 수 있지만 제 생각엔 지금 우리 시대에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듯 진 감독이 전하고자 한 마지막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는 '보물섬'을 통해 인간적인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제가 이 작품을 찍어가면서 느꼈던 건 '눈앞의 보물을 두고 먼 곳의 보물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만 눈이 팔려 내가 가진 것들을 잃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죠."
"작품 속에서 찾아보자면 16부 성보연과 동주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떠올라요. '엄마가 돈이 없어 그릇된 길로 빠질 뻔했대. 하지만 어린 성현이를 생각하면서 거절했다는 거야. 그런 엄마 생각하면서 힘내서 살아요' 전 이 대사가 우리 작품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인간적인 가치를 지켜가면서 힘내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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