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연기 경력만 무려 33년 차인 배우 설경구는 여전히 연기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곤 한다. 이번 '하이퍼나이프'를 통해서는 '변주하는 설경구의 연기'가 재밌게 다가왔단다.
설경구는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하이퍼나이프'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세계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 최덕희 역을 맡은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9일 8부작 전편 공개된 '하이퍼나이프'는 과거 촉망받는 천재 의사였던 세옥(박은빈 분)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스승 덕희(설경구 분)와 재회하며 펼치는 치열한 대립을 그린 메디컬 스릴러다.
8부작의 여정을 마친 설경구는 "전편 공개되고 나니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며 "일반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편한 감정의 작품은 아니지 않나. 때문에 우리 작품이 받아들여질까라는 걱정이 많았다. 공개 전 우리끼리 시사를 했을 때도 '큰일 났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잘 받아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
'평범한 감정'의 작품이 아니라는 건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부터 설경구가 느낀 감상이었다. 그는 "묘했다. 사람이 감정이 아닌 것 같고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도 갈등도 아니었다"고 돌이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경구가 '하이퍼나이프' 출연을 결정한 건 바로 박은빈 때문이었다. 그는 "솔직히 책만 보고 선뜻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작가님도 거의 신인인 데다 감독님도 잘 몰랐기 때문에 선택의 폭은 좁았다. 즉 함께하는 배우를 봐야 하는데 박은빈이라는 의외의 배우에게 대본이 갔다고 하더라. 생각할수록 의외인 이 지점이 역으로 재밌었다"고 밝혔다.
극 중 최덕희는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자신과 닮은 제자 세옥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드러낸다. 서로 복합적인 감정으로 엮인 '사제 관계'가 '하이퍼나이프'의 관전 포인트였다.
설경구는 두 사람의 관계를 박은빈의 말을 빌려와 "피폐 멜로"라고 표현했다. 그는 "난 남녀의 사랑도 부녀의 사랑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을 한참 넘은 피폐한 사람들의 사랑 같다"고 말했다.
"처음부터는 아니지만 덕희가 아프면서 세옥에 대한 죄책감이 생긴 것 같아요. 죽고 못 사는 수술방에서 내쫓은 거잖아요. 세옥에게 뇌를 맡기자고 생각하면서부터는 모든 걸 다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실 자기를 악화시키면서까지 뇌를 열게 하는 것도 비정상이잖아요. 아마 덕희는 어차피 뇌를 건드린 이상 손을 못 쓰기 때문에 차라리 그렇다면 세옥이를 나보다 한 단계 더 뛰게 하자 싶었던 거죠. 이건 멜로라고 하긴 그렇지만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박은빈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는 "난 은빈이를 후배로 안 보고 동료로 보기 때문에 어떤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며 "다만 함께하면서 재밌었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어떻게 하자는 약속 없이 치고받는데 자연스럽게 반응을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재밌었다"고 설명했다.
"박은빈과는 이렇게 대화를 많이 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화를 많이 했어요. 현장에서 작품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도 물어보고 자기 이야기도 많이 하다 보니 저도 답하고 되묻게 되는 거죠. 그런 시간이 쌓여서 서로에 대해 알아갔던 것 같아요. 사적인 이야기부터 많이 해서 서로 편해졌죠.(웃음)"
설경구는 최덕희를 표현하기 위해 체중 감량부터 목소리 톤까지 세세한 설정에 신경을 많이 썼다.
먼저 뇌종양으로 인해 죽음을 기다리는 암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무려 10kg을 감량했다. 설경구는 "최덕희의 최후는 일단 마른 모습일 것 같았다"며 "문제는 영화를 생각해서 큰 묶음으로 스케줄이 나올 줄 알았는데 드라마 여건상 그게 아니더라. 이해는 됐지만 답답했다. 심지어는 과거와 현재를 같은 날 촬영한 경우도 있어서 미치겠더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일단 빼기 시작하자'고 마음을 먹은 뒤 감량을 시작했다. 그는 "건강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인물을 표현하는 건 납득도 안 될뿐더러 스스로도 부끄러울 것 같았다"며 "엔딩 장면 때는 3일 동안 단식했다. 이럴 때는 쉬면서 단식을 해야 하는데 여건이 안 되니 촬영과 병행하며 단식하니까 좀 힘들고 벅차긴 했다"고 털어놨다.
목소리 톤과 관련해서는 "쇳소리도 있고 장난기 넘치는 모습도 담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다채로운 톤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설경구는 "처음에는 흑백논리로 쏟아붓는다는 것과 안으로 숨긴다를 이분법으로 나눴다. 그런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세옥과 달리 난 주로 세옥과만 만난다. 이걸 에피소드 8개로 표현하려고 하니 매력도 재미도 없더라. 그래서 변주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한 면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덕희도 뇌 외에는 바보 같고 어리숙한 면도 있으며 어느 면에서는 세옥과 비슷한 면도 있겠다 싶었죠. 그렇다면 세옥을 애 다루듯이 하지 말고 같은 눈높이에서 투닥투닥 싸우는 건 어떨까 싶어서 바꿨어요. 그러다 보니 애드리브도 자연스럽게 나왔죠."
그렇게 설경구의 의도된 변주를 통해 완성된 최덕희였다. 그리고 설경구는 이번 작품을 통해 '변주가 재밌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됐단다. 이에 차기작은 설경구의 변주를 계속해서 볼 수 있는 걸까.
그는 "작품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변주에 재미를 느껴 생각의 폭은 넓어질 것 같지만 그렇다고 매 작품 변주에만 초점을 맞추진 않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변주만 하다가는 캐릭터가 망가질 수도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잘 살피면서 해보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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