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웃길 줄 아는 배우였다. 아니 웃기는 걸 더욱더 좋아한다. '어른 섹시'와 슈트보다 '금쪽이' '똥강아지' 수식어가 마음에 든다는 배우 정성일이다.
정성일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나 디즈니+ '트리거'(연출 유선동·극본 김기량)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트리거팀의 PD 한도 역을 맡은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트리거'는 꽃 같은 세상, 악인들의 잘못을 고발하기 위해 일단 카메라부터 들이대고 보는 지독한 탐사보도 프로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검찰, 경찰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을 프로그램 '트리거'의 팀이 추적하며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담았다.
총 12부작으로 구성된 작품은 지난 19일 마지막회가 공개되며 막을 내렸다. 정성일은 "보는 분들이 재밌게 잘 봤다고 해서 나도 재밌게 보고 있었다. 좀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번에 몰아보기가 아닌데도 벌써 끝이 나나 싶다"며 "찍었던 시간에 비해 빨리 끝나는 거 아닌가 싶어 그런 것 같다"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정성일은 극 중 트리거팀에 낙하산으로 들어온 사회성 제로 PD 한도 역을 맡았다. 방송 초반 소탈하고 능청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내면에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이에 개인주의를 지향하지만 범죄자들과 마주하며 점차 분노를 쌓고 팀에 어우러지기 시작하며 정의를 향해 나아간다. 정성일은 한도의 서사와 감정선을 세세하게 그려내며 호평을 받았다.
정성일에게서 한도를 발견한 건 앞서 '배드 앤 크레이지'를 통해 호흡을 맞췄던 유선동 감독이다. 그는 "처음에는 대본을 읽어보라고 했다. 소재는 다소 민감할 수 있지만 풀어가는 방식과 캐릭터 등 대본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무엇보다 기존에 했던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재밌게 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감독님이 저와 예전에 작업을 해봐서 평소 제 사적인 모습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 일부 모습이 한도에게도 조금은 반영되지 않았나 싶어요. 예를 들어 저도 아이와 동물을 좋아하고 옷도 한도처럼 편하게 입고 다니거든요.(웃음)"
무엇보다 눈에 띈 건 극 중 한도가 1990년생 MZ라는 설정이다. 이에 인터뷰에서도 이같은 설정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MZ는 1980년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다. 이에 MZ에는 아슬하게 포함되는 것 같다며 안도감을 내비친 정성일이었지만 1990년이라는 나이에 관해서는 민망한 웃음과 함께 "나 또한 놀랐다"고 해명부터 내놔 웃음을 안겼다.
정성일은 "90년생 이력서는 나 또한 방송 보고 알았다. 처음에는 중고신입이라고 해서 대략 30대 후반~40대 초반 정도라고 생각했다"며 "방송된 후 주위에서 자꾸 네가 왜 90년생이냐고 하더라. 나 역시 적잖게 당황스러웠다"고 토로했다.
"MZ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하게 노력한 지점은 없어요. 다만 작품에서 말하는 MZ는 이런 것 같아요. 내 의견이나 신념 등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남들에게 잘못하지 않는 선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 이 점이 한도의 가장 MZ스러움이 아니지 않았나 싶어요."
정성일의 캐릭터 고민은 넷플릭스 '더 글로리' 이후부터 오랫동안 이어온 부분 중 하나다. 때문에 그는 당시 극 중 하도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넷플릭스 영화 '전,란'에 이어 이번 '트리거'를 선택했다.
정성일은 "대중이 기억하는 난 수트를 입은 하도영이지 않나. 사실 대중이 좋아하는 걸 아는 만큼 또 할 수는 있다. 다만 이 캐릭터성을 길게 끌고 간다면 식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이미지는 소모성이지 않나. 물론 다음에 또 다른 작품에서는 다시 비슷한 모습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연달아서 보여드리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래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에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어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해보려고 한다"고 소신을 전했다.
한도는 정성일의 여러 도전 중 가장 자유로운 캐릭터였다. 이는 촬영하는 정성일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캐릭터가 자유롭다 보니 촬영하는 내내 나도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웠다. 접근할 수 있는 방식도 많아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며 여러 시도를 했다"며 "항상 참아야 하고 감정을 애써 표현하지 않아야 해 눌러 담아야 했던 전과 달리 이번에는 감정도 기분도 분출할 수 있어 덕분에 신나고 재밌게 논 기분"이라고 돌이켰다.
매체로 넘어오기 전 연극을 오래 했고 현재도 공연 등을 병행하고 있는 정성일로서는 이런 가벼운 역할이 익숙하단다. 정성일은 "공연에서는 이미 많이 웃겼다. 재밌는 캐릭터를 많이 하기도 했고 워낙 코미디를 좋아한다. 슈트 입고 무게 잡는 걸 그렇게 안 좋아하다 보니 웃기고 재밌는 작품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역시 경험자는 달라서일까. 정성일은 이질감 없이 한도를 그려내며 '금쪽이' '똥강아지' 등 전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수식어를 얻었다. 이에 그는 "'어른 섹시'보다 훨씬 낫다. 현실감 있고 편하고 친근하지 않냐"며 만족감을 드러내 웃음을 안겼다.
"'금쪽이' '똥강아지'라는 수식어로 불린다는 자체가 너무 좋아요. 어쨌든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여드렸다는 방증이잖아요. 망가지고 안 망가지고의 문제보다는 앞선 캐릭터와 또 다른 캐릭터를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
'트리거'가 인기를 끌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성일과 김혜수 주종혁까지 세 사람의 환상의 호흡이었다. 그래서일까. 정성일에게 '트리거'는 어떤 의미냐고 묻자 "김혜수 주종혁"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정성일은 "사실 뻔한 말일 수는 있는데 난 물질적인 욕심보다 사람 욕심이 크다. '트리거'는 그런 욕심을 채워주는 작품이었다"며 "두 사람 모두 배우고 연예인이지만 옆집 누나 같고 옆집 동생 같았다. 사람 냄새 나는 배우들 덕분에 가식 없이 즐겁게 지내며 늘 좋은 에너지로 촬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더 글로리'의 하도영 '전, 란'의 겐신, 그리고 '트리거'의 한도까지. 정성일의 캐릭터 스펙트럼 전략은 이번에도 성공했다. 그렇기에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다. 많은 차기작이 대기 중이지 않냐는 말에 그는 민망한 듯 "그렇게 또 많지는 않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앞으로의 관심을 당부했다.
"지금은 '메이드 인 코리아'를 촬영 중이에요. 아마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는 건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무대 같아요. 현재 촬영하면서 공연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도 뭐가 있겠죠.(웃음) '전지적 독자 시점'과 영화 '인터뷰'로도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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