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가수는 자신이 부른 노래 속 가사와 비슷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우리 가요계에서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불세출의 가수'로 불리는 배호다.
유명 히트곡 중 하나인 '안개속에 가버린 사람'은 배호의 인생과 삶을 단편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신장염을 앓던 그는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스물 아홉,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안타깝게도 건강이 회복될 틈도 없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몸을 혹사시킨 결과였다.
71년 라디오 출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졸도, 저체온증 감기몸살에 복막염까지 합병증으로 겹쳐 그해 11월7일 눈을 감았다.
배호는 이미 66년부터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고, 69년 MBC 10대 가수상 시상식 때는 몸이 아파 출연 여부를 타진하다가 간신히 출연해 노래를 불렀다. 당시 극도로 몸이 피폐해져 걸음도 제대로 못 걸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배호는 60년대 대한민국을 뒤흔든 최고 인기가수였다. 67년 '돌아가는 삼각지'(배상태 작곡)를 시작으로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가 울어'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10대 가수로 선정됐다.
그는 세대를 뛰어넘는 수많은 명곡을 많이 남겼지만, 인생곡으로는 역시 첫 히트곡 '돌아가는 삼각지'를 빼놓을 수 없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타리를 헤매도는 이 발길/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눈물 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배호 '돌아가는 삼각지' 가사)
배호의 독보적인 가창력이 울림을 주는 곡이다. 배호가 이인선과 공동으로 작사에 참여했을 만큼 감성이 가사에 스며 있다. 전쟁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했던 한 남성의 슬픔을 담고 있으며, 단순한 이별을 넘어 전후 세대의 상실감과 향수, 고독을 표현했다.
가사 중 특히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부분은 비내리는 날 헤어짐에 대한 후회와 사랑을 향한 그리움을 품고 그곳을 떠돌며 울부짖는 사나이의 가슴 절절한 슬픔이 손에 잡힐듯 다가온다.
배호의 본명은 배만금이다. 독립운동을 위해 대한민국에서 산둥성으로 이주한 광복군 제3지대 출신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운동 감각도 뛰어나 수영과 야구에도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50년대 후반부터 미군부대, 캬바레, MBC악단, 김광빈 악단, 김인배 악단 등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생활을 시작했다. 64년 '굿바이' '두메산골' 등의 곡을 정식 취입하지만 '돌아가는 삼각지' 전까지는 이렇다할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외삼촌인 김광빈의 집에 기거하며 드럼과 음악을 배우고, 악단활동도 함께 했다. 가수로 정식 데뷔하기 전까지 '배호와 그 악단'을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초기의 곡들은 재즈나 라틴음악 등이 섞인 스탠더드 팝 계열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10년 뒤인 81년 MBC에서 특집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에 선정됐고, 2005년엔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은 국민가수 10인'으로 꼽혔다.
대구 공연에서 만난 여성 팬과 약혼까지 했지만, 자신의 죽음 이후 미래를 걱정해 임종 직전에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장례식에는 최희준, 현인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 소복을 입은 여성팬들이 대거 참석했다. 경기도 양주시 신세계 공원묘지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