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순박한 청년 동시 연기
"한석규 선배가 '재주가 많다'고 칭찬해줘"
배우 김정진이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더팩트>사옥에서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와 JTBC 토일드라마 '정숙한 세일즈'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헌우 기자 |
[더팩트ㅣ문화영 기자] 배우 김정진에겐 선역과 악역이 공존한다. 하루에도 빌런과 순박한 청년의 얼굴을 몇 번이고 갈아낀 그는 더 솔직하면서도 속이 꽉찬 배우가 되기 위해 정진 중이다.
지난 15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극본 한아영, 연출 송연화, 이하 '이친자')는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 장태수(한석규 분)가 수사 중인 살인사건에 얽힌 딸 장하빈(채원빈 분)의 비밀과 마주하고 처절하게 무너져가며 심연 속의 진실을 쫓는 이야기가 담기는 스릴러극이다.
17일 종영한 JTBC 토일드라마 '정숙한 세일즈'(극본 최보림, 연출 조웅)는 성(性)이 금기시되던 시절인 1992년 한 시골마을에서 성인용품 방문 판매에 뛰어든 '방판 씨스터즈' 4인방의 자립, 성장,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돼 종영한 두 작품에서 김정진은 각각 가출팸 리더 최영민과 로열클럽 회장의 아들이자 약국 직원 엄대근을 연기했다. 최영민은 경찰 조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가출팸 아이들의 입단속을 위해 구타를 서슴지 않는 인물로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반면 엄대근은 자신에게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고 '모태솔로'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인 순박한 청년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만난 김정진은 "동시에 방영하는 것에 두려움이 컸다. 비슷한 시기에 나와 비슷한 시기에 끝난다는 게 나름의 상심도 있지만 그럼에도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며 "단점들만 보이기 마련인데 이 부분을 매력으로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거듭 감사함을 전했다.
김정진은 '이친자'에서 가출팸 리더 최영민을 연기했다. /MBC |
'이친자' 촬영 중 '정숙한 세일즈'에 캐스팅됐다는 그는 먼저 '이친자' 캐스팅 비하인드를 풀었다. 지난해 11월 방영된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시대' 이후 '이친자'에 캐스팅됐고 또 연달아 '정숙한 세일즈' 제작진에 연락을 받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소년시대' 속 양철홍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이다.
"작품의 제목과 내용을 모른 채 MBC 본사에서 4부까지 대본을 봤어요. 그 후 감독님 앞에서 영민이를 연기했죠. 이때 클리셰적인 혹은 도식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난 너랑 하고 싶은데 어때?라고 하셔서 '저도 좋아요'라고 했죠. 너무 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 작품을 통해 연기가 많이 늘 것 같았거든요. '섬세하고 절제된 연기를 과하지 않게 해냄으로써 다른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믿음이 생겼죠."
송연화 감독만큼이나 작품을 향한 애정이 많았다는 그는 영민이를 통해 많은 걸 배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영민이를 단순히 '나쁜 인물'로 그리는 걸 넘어 연민 혹은 결핍을 가진 인물로 표현함으로써 입체적으로 구축했다.
"본 방송을 보며 감독님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이 뭔지 확인하는 순간 벅찼어요. 거기에 미장센과 장르가 주는 재미 스릴 서스펜스 안에서 요구되는 제어 통제 절제들이 있었죠. 영민이를 애정하고 따라가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안쓰러움이 많았어요. 그래서 영민이가 안 좋은 선택을 하고 어리석고 우둔한 구석들이 연민처럼 느껴졌어요. 단지 악역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불쌍함으로 가면 좋을 것 같았어요. 일차원적인 인물이 될 뻔했는데 좀 더 섬세하게 그릴 수 있었죠."
김정진은 '한석규한테도 밀리지 않는다'는 호평에 "감사하고 부끄럽다"고 답했다. /박헌우 기자 |
아울러 한석규와 취조실에서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을 빼놓을 수없다. 장태수는 최영민에게 "이수현을 죽였냐"고 추궁하고 최영민은 이에 맞서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어두운 조명,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표정 덕분에 김정진은 '한석규한테도 밀리지 않는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에 그는 ""그렇게 봐주신 것에 감사하고 부끄럽다"고 답했다.
"한 선배랑 아무런 행동도 없이 대사만 주고받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에요. 촬영 중 갑자기 제가 튀어나와 눈물이 났어요. 추궁에 반격하는 게 영민이라면 어느 순간 저로 존재하더라고요. 송 감독님이 '영민이랑 다르지만 배우로서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배우한텐 감독이 원하는 연기보다 자유로운 감정이 나오는 것도 좋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한 선배는 저한테 '재주가 많다' '그 재주를 발전시키고 가공해 좋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고 해주셨어요. 또 '얼굴이 개성 있고 목소리도 좋아'라고도요. '재주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아직 답을 못 찾았어요."
그런가 하면 김정진은 '정숙한 세일즈'에서 약국 직원이자 순박한 청년 엄대근 역을 맡았다. /하이지음스튜디오 |
'정숙한 세일즈'에선 정반대 캐릭터로 김정진이라는 사람이 가진 매력을 십분 표출했다. 코미디 장르가 어렵게 느껴졌다는 그는 조웅 감독의 "지금 너 나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김정진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 이상 그 이하 안 해도 돼. 너로서 존재하면 돼"라는 말을 듣고 부담감을 내려놨단다.
"'이친자'가 절제였다면 '정숙한 세일즈'는 표출하고 확장한 것들이 많았거든요. 멜로 안에 위트도 줘야 하니 어려웠는데 다행인 건 대근이가 수동적이라는 거예요. 어리숙하고 쑥맥이다 보니 인물 표현에 도움이 됐어요. 실제로도 세희 선배가 주리의 리드 성향처럼 해줬고 저는 따라가는 편이었어요. 감독님도 대근이가 못하는 걸 강조하셨고요. 오히려 수동적으로 하다 보니 편했죠."
아울러 전혀 다른 두 작품에서 '장르적'인걸 찾았다는 김정진이다. 그는 "'이친자'에서 영민이가 가지는 결핍을 생각하며 '나로서' 출발했다. 영민이가 성희(최유화 분)에게 모성애를 간접적으로 느끼는 과정 혹은 소유 집착 등"이라며 "정숙한 세일즈' 대근이도 마찬가지로 어머니한테 인정받지 못한 걸 주리한테 채운다. 애정에 대한 갈망은 누구나 있기에 나 역시 배우 일을 하며 인정 받는 것에 갈증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진은 작품에 캐스팅되는 이유로 '솔직함과 진솔함'을 답했다. /박헌우 기자 |
두 작품 모두 '감독님 픽'이다 보니 '김정진의 매력이 뭘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는 겸손하게 '진솔함'이라 답했다. 그러면서 평소 촬영 현장에서 감독님한테 의지한다고 덧붙였다.
"신인이다 보니 연기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건 제 자신보다 감독님이에요. 그렇게 기댄 만큼 또 저를 많이 믿어주시거든요. 거짓말을 잘 못하는 진솔한 성격이 감독님들께 사랑받는 이유인 것 같아요. 저만의 생각이지만요.(웃음) 솔직히 타인이 요구하는 것에 맞춰 자신을 숨길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두 오디션 모두 저로서 솔직한 마음으로 임했어요. 잘 보이기 위해 모자란 부분을 숨기기보단 '진솔함이 통했다?'"
원래 실용음악과에서 드럼을 전공한 김정진은 훈련소에서 연기 전공인 친구를 만나 연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전역 후 사수 끝에 연기과에 입학했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그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셈이다. 아울러 음악을 전공해서일까. 그는 두 작품 캐릭터 모두 음악의 영향을 받았단다.
"배우는 얼마큼 성장해 나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어려운 직업 같아요.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데 또 판단하지 않으면 나태해지거든요.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내려는 마음과 오기로 계속 해나가고 있어요. 연기를 통해 '성실함'을 알았고 '집요함'을 배웠어요. '이친자' 채원빈 장면을 찍으면서 감독님이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음악을 듣는 걸 봤어요. 저도 몰입감 서스펜스를 음악을 통해 찾으려 했죠. '정숙한 세일즈'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 향수를 느낄 수 없잖아요. 대근이가 주리랑 키스하고 나오는 음악 이상우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을 많이 들었죠."
끝으로 김정진은 "영화 '주먹이 운다'를 좋아해 스포츠와 삶을 결부시킨 작품을 하고 싶다. 또 올해 촬영만 했는데 장르적 부담감도 있고 연기적 부족함이 느껴서 '채워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런데 채우는 것보다 비움이 더 중요하기에 12월까지 여행을 다니며 '채울 원동력'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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