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OTT 진출 이후 제작비 급상승
제작비 상승→편성·제작 축소로 이어져
"드라마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돼"
지난해 방송사와 OTT를 통해 공개된 작품은 총 123편으로 전년보다 18편 줄었다. 방송사들은 주중 드라마를 대부분 폐지한 영향이다. 사진은 주말극 '미녀와 순정남'과 '수사반장 1958' 포스터. /KBS, MBC |
글로벌 OTT라는 날개를 달고 K콘텐츠가 해외로 뻗어나가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그 미래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코로나19 이후 제작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며 배우는 물론 제작사, 방송사, 스태프까지 모두가 어려움에 부닥치게 됐다. K콘텐츠 위기론까지 대두된 가운데 <더팩트>가 업계의 현 상황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 | 공미나 기자] 과거 TV를 켜면 월화수목금토일 내내 드라마가 방송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더니 주말을 제외하곤 TV에서 드라마를 보기 쉽지 않아졌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따르면 2022년 방송사와 OTT를 통해 공개된 작품은 141편, 2023년은 123편으로 18편이 줄었다. 올해는 적으면 100편, 많으면 110편으로 예측되며 내년에는 100편이 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입을 모아 "편성 자체가 줄어든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올해는 작년과 재작년에 만들었다가 묵혀놓은 작품들이 주로 편성되는 분위기다. 대부분 제작사들이 올해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내년이 정말 큰 위기"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 때문에 한 해에 작품 4~5개를 제작하는 대형 제작사도 올해는 1~2편을 제작할까 말까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글로벌 OTT 국내 진출이 촉발한 K-드라마 위기
한국 드라마의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국내 진출을 문제의 시작점으로 꼽을 수 있다. 글로벌 OTT는 국내 제작비를 상승시켰다. 여기에 인건비 등 여러 생산 요소 비용이 올라간 것도 제작비 상승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제작비는 얼마나 증가했을까. 업계에 따르면 10년 전에 비해 드라마 제작비는 적게는 2~3배, 많게는 4~5배가량 증가했다. 요즘 텐트폴 드라마 제작비는 보통 500억 원 이상이며 많게는 600~700억 원에 달한다. 일반적인 드라마 역시 제작비 200만 원을 쓰는 것이 놀랍지 않은 상황이 됐다.
제작비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배우들의 출연료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제작사는 글로벌 OTT의 선택을 받기 위해 소위 '해외에서 팔리는' 톱급 배우들 섭외에 열을 올리고 자연스레 배우들의 몸값도 높아졌다. 또 글로벌 OTT가 한 번 올려놓은 몸값은 타 플랫폼에도 영향을 끼쳤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국내 방송사 드라마 출연 당시 1억 원을 받았다면 OTT에서는 5억 원을 받는다. 한 번 5억 원을 받은 배우는 몸값 기준이 그 가격이 된다. 또 비슷한 급의 배우들도 몸값을 덩달아 올린다"고 전했다.
여기에 주 52시간 근무제로 스태프 인건비도 올랐다. 과거 16부작 촬영을 100~120회 일수에 촬영을 마쳤다면 지금은 180일이 걸린다. 약 1.6~1.7배 늘어난 것이다. 이는 곧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아울러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고 사전제작을 하다 보니 후반작업에 힘을 많이 준다. 이 때문에 CG, VFC, 음악, 편집 등 후반작업에도 돈을 더 많이 쓰게 됐다는 전언이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국내 진출은 드라마 제작비 상승을 이끌었다. /넷플릭스 |
◆ 제작비 폭등이 불러온 나비효과
글로벌 OTT의 국내 진출과 이로 인한 제작비 상승은 모든 플랫폼에 불똥이 튀었다. 지난 2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발표한 '2023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거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사·제작사 모두 OTT의 등장으로 외주제작 환경이 불리해졌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방송사들은 경쟁 플랫폼이 많아져 영향력이 줄어들며 광고 매출이 줄었다. 반면 제작비는 급증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됐고 이는 드라마 편성 축소로 이어졌다. KISDI는 "OTT의 성장과 함께 기존 방송사의 경영상황이 어려워지고 있고 이에 따라 전반적인 제작 환경은 열악해지고 있다"며 "제작사 입장에서도 OTT와 일하는 제작사는 소수일 수밖에 없고 그렇지 못한 제작사는 결국 기존 방송사와 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송사의 경영 악화는 제작사의 경영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국내 OTT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티빙 웨이브 등 토종 OTT들은 수년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티빙의 영업 손실은 1420억 원, 웨이브는 791억 원으로 나타났다. 국내 OTT도 한동안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통한 출혈 경쟁을 벌였지만 해외 OTT와 달리 우리나라 구독자로 이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국내 OTT들은 내년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을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글로벌 OTT라고 화수분처럼 콘텐츠 투자를 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넷플릭스는 한국에 향후 4년간 약 3조2500억원(25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금액이 많다 한들 글로벌 OTT 역시 예산이 한정돼 있기에 제작비가 오르면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의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 "산업 경쟁력 줄어들까 우려돼"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드라마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배대식 사무총장은 "과거 드라마를 10편 제작하면 그중에 1~2편 수작이 나온다. 제작 편수가 줄어들면 수작이 나오는 경우도 확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 제작 인력의 업계 이탈도 우려되는 사안이다. 산업 축소로 제작사들도 구조조정이 피할 수 없게 됐고 실제 여러 업계 스태프가 최근 일을 쉬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배대식 사무총장은 "업력이 오래된 제작사들은 그나마 버틸 수 있을 거다. 다만 글로벌 OTT가 등장하고 새롭게 생겨난 신규 제작사들이 많다. 이런 규모가 작은 곳들은 향후 존폐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 했다.
뚜렷한 문제 해결 방안이 없다는 것은 콘텐츠 종사자들을 더욱 한숨 쉬게 한다. 업계에서 가장 원하는 방향은 배우들이 몸값을 낮추는 것인데 이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배우 출연료가 시장 논리에 따라 정해지는 건데 이를 규제화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요즘 배우들이 일거리가 없다며 몸값을 낮춰서라도 연기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수억 원을 받는 일부 톱배우들이 나서줘야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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