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곡⑰] 편승엽 '찬찬찬', "30년째 가슴 찡한 노래"
입력: 2021.05.13 00:00 / 수정: 2021.05.14 14:18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벅찬 노래입니다. 편승엽의 인생곡 찬찬찬(이호섭 작곡 김병걸 작사)은 1992년 발표한 이후 10년 이상 가요계 각종 인기차트를 휩쓸었다. /빅대디엔테테인먼트 제공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벅찬 노래입니다." 편승엽의 인생곡 '찬찬찬'(이호섭 작곡 김병걸 작사)은 1992년 발표한 이후 10년 이상 가요계 각종 인기차트를 휩쓸었다. /빅대디엔테테인먼트 제공

'발라드 창법' 기반한 감성 깊은 중저음 보이스가 매력

[더팩트|강일홍 기자] "30년이 지난 지금도 임팩트 강렬한 곡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저와 영원히 함께 갈 인생곡이죠. 어떤 분들은 부르기가 좀 까다롭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몇군데 반음처리가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그럴수도 있어요. 대체로 가볍고 편안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보시면 됩니다."

편승엽의 인생곡 '찬찬찬'(이호섭 작곡 김병걸 작사)은 1992년 발표한 이후 10년 이상 가요계 각종 인기차트를 휩쓸었다. 기존 정통 트로트와 전혀 다른 새로운 스타일 때문에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다는 평가도 없지 않았지만 오히려 빠르고 경쾌한 리듬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매력 포인트가 됐다.

'차디찬 그라스에 빨간 립스틱/ 음악에 묻혀 굳어버린 밤깊은 카페의 여인/ 가녀린 어깨위로 슬픔이 연기처럼 피어오를 때/ 사랑을 느끼면서 다가선 나를 향해/ 웃음을 던지면서 술잔을 부딪히며 찬찬찬/ 그러나 마음 줄 수 없다는 그 말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그 말/ 쓸쓸히 창밖을 보니 주루룩 주루룩 주루룩 주루룩 밤새워 내리는 빗물'(편승엽의 '찬찬찬' 1절)

원곡가수 편승엽은 본인은 물론 작사(김병걸) 작곡자(이호섭)와 편곡자(송태호)한테까지 상을 안겨줄만큼 준 폭넓은 대중적 사랑을 받았다. '찬찬찬'의 히트는 당시 주류를 이룬 정통트로트에서 소위 '세미트로트' '신세대트로트'로 불리는 변형된 창법으로 흐름이 바뀌게 된 계기가 됐다.

"인기와 트렌드, 그리고 대중적 관심을 받는다는 게 참 무섭더라고요. 주부 등 성인들은 물론이고 학생들과 심지어 꼬마들까지 떼창을 부르곤 했어요. 이 노래가 히트한 뒤로 가수로서 저의 삶도 크게 달라졌고요. 지금도 노래자랑 등의 프로그램에서 제 노래를 부르면 가슴이 찡합니다."

편승엽은 어린시절 부족한 게 없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청소년기에 아버지의 건축사업이 기울면서 한때 막노동판에 나가 등짐을 져야할만큼 고된 삶을 살기도 했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노래에 관심이 있어 가수가 되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준수한 외모 덕분에 탤런트 시험에 응시하기도 했다.

편승엽은 92년 찬찬찬을 발표한 뒤 방송사와 행사 무대 등 자신을 불러주는 곳은 어디는 달려가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3년만인 95년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마침내 가요계 정상에 올랐다. /빅대디엔터테인먼트 제공
편승엽은 92년 '찬찬찬'을 발표한 뒤 방송사와 행사 무대 등 자신을 불러주는 곳은 어디는 달려가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3년만인 95년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마침내 가요계 정상에 올랐다. /빅대디엔터테인먼트 제공

1991년 '서울 민들레'라는 곡으로 마침내 가수로 데뷔한다. 하지만 매니저 없는 독립군 가수에게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방송 한번 출연해보지 못한 채 좌절과 방황 속에 밤무대 활동을 전전했다.

우연히 작곡가 이호섭 선생을 만나면서 히트가수로 도약하는 돌파구가 생겼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상처나 아쉬움도 많다. 편승엽은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유튜브 같은 SNS 홍보 수단이 원활했다면 훨씬 수월했을 것"이라면서 "당시엔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견디는게 미덕으로 비칠 때라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사실 저는 무명이고 신인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자체 제작하고 홍보까지 직접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부득이 모 선배가수가 함께 하자는 제안이 와 손을 잡긴 했는데 사실 판권만 가져갔지 저는 크게 도움을 받은 건 없어요. 그 분이 섭섭해할 지 몰라도 거의 제가 뛰어나니며 홍보를 한 셈이니까요."

'찬찬찬'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별로 없었다. 가족의 도움을 받아 직접 음반을 제작하고도 결실은 엉뚱한 데로 흘러갔다. 편승엽은 "제작을 직접 했지만 판권을 넘겨줬기 때문에 음반 판매가 늘어나도 그 수혜를 전혀 얻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편승엽은 이 곡을 92년 발표한 뒤 방송사와 행사 무대 등 자신을 불러주는 곳은 어디는 달려가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3년만인 95년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마침내 가요계 정상에 올랐다. 이후 '용서' '사랑을 위해' '잊혀진 여인' '그대와 함께' 등을 불렀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발라드 창법의 감성 깊은 중저음 보이스다. 데뷔곡인 정통트로트 '서울 민들레'를 포기하고 '찬찬찬'으로 빠르게 방향을 튼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오랜만에 신곡 '사내라서'를 발표하고 본격 활동 시동을 걸었다. 매주 금요일 SBS '좋은아침' 건강코너 고정게스트로 출연하고 SBS '생방송투데이' 오지기행 나레이션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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