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다시보기] '본분 금메달' PD님, 제작진의 '본분'은 뭔가요?
  • 정진영 기자
  • 입력: 2016.02.11 05:00 / 수정: 2016.02.10 23:16

설 특집으로 전파를 탄 파일럿 프로그램 본분 금메달 공식 이미지. 여러 걸그룹 멤버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본분을 측정당했다. /KBS2 본분 금메달 공식 홈페이지 캡처
설 특집으로 전파를 탄 파일럿 프로그램 '본분 금메달' 공식 이미지. 여러 걸그룹 멤버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본분'을 측정당했다. /KBS2 '본분 금메달' 공식 홈페이지 캡처

몸무게 강제 공개, 한겨울 야외 댄스…제작진이 놓친 '본분'

[더팩트ㅣ정진영 기자] 걸그룹 출연자들은 '본분'을 챙겼지만 프로그램의 '본분'에는 의문점이 찍혔다.

10일 오후 KBS2는 설 특집으로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본분 금메달'을 방송했다.

'본분 금메달'은 언제나 팬들을 의식해야 하는 걸그룹 멤버들이 모여 베일에 싸인 미션을 수행하면서 진솔한 속내를 드러내겠다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박보람 베스티 엔씨아 여자친구 트와이스 피에스타 허영지 헬로비너스 AOA EXID 등 국내 정상급 걸그룹 멤버들은 제작진으로부터 여러 가지 미션을 부여받은 뒤 최선을 다해 이를 수행했다.

첫 번째로 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철봉에 매달려 오래 버티기였다. 출연진은 오래 버티는 사람이 승리하는 줄 알고 열심히 매달려 있었지만 실은 이는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얼마나 예쁜 얼굴을 유지하는가를 보려는 제작진의 의도에서 제시된 미션이었다.

오래 매달리기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걸그룹 멤버들. 본분 금메달 제작진이 진짜 측정하고 있던 건 시간이 아니라 체력적 한계에 다다른 이들의 표정이었다. /KBS2 방송 화면 캡처
오래 매달리기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걸그룹 멤버들. '본분 금메달' 제작진이 진짜 측정하고 있던 건 시간이 아니라 체력적 한계에 다다른 이들의 표정이었다. /KBS2 방송 화면 캡처

이후 이들은 비슷한 의도에서 마련된 상식 테스트에 나섰다. 제작진은 겉으로는 얼마나 상식이 뛰어난가를 체크하려 한다고 하면서 실은 중간에 바퀴벌레 모형을 던지고 출연진의 반응을 살펴봤다. 깜짝 놀랄 순간에도 자신의 이미지를 끝까지 고수할 수 있는지를 보겠다는 것.

이어진 미션은 더 가혹했다. 제작진은 영하 13도의 날씨에 야외 무대를 세워두고 걸그룹 멤버들을 그 무대 위에서 춤추게 했다. 출연진은 섹시한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실은 그들이 춤을 추는 동안 몸무게가 측정되고 있었다. 제작진은 출연진의 신체지수를 강제로 공개한 이유가 앞서 출연진이 직접 적은 몸무게와 실제 몸무게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가를 보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걸그룹의 본분 가운데 하나가 정직함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허영지는 약 5kg 정도 몸무게를 줄여 말해 최고의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혔다.

음료 캔을 10개씩 각각 두 줄로 쌓는 미션도 주어졌다. 집중력 테스트라고 속였지만 실제로는 분노 조절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걸그룹 멤버들을 화나게 만들기 위해 제작진은 출연진이 캔 쌓기 미션에 성공할 것 같으면 일부러 큰 소리를 내거나 바닥을 흔드는 등 방해공작을 펼쳤다. 이 외에 개인기 대결이라는 명목을 앞세워 출연진의 리액션을 체크하는 미션도 있었다.

출연진에겐 캔 쌓기, 제작진에겐 캔 무너뜨리기. 본분 금메달 제작진은 걸그룹 멤버들에게 캔 쌓는 걸 시켜놓고 이를 의도적으로 방해했다. /KBS2 방송 화면 캡처
출연진에겐 캔 쌓기, 제작진에겐 캔 무너뜨리기. '본분 금메달' 제작진은 걸그룹 멤버들에게 캔 쌓는 걸 시켜놓고 이를 의도적으로 방해했다. /KBS2 방송 화면 캡처

자신들에게 주어진 미션이 실제 무엇을 측정하기 위함인지 몰랐던 출연진은 매 미션마다 최선을 다했다. 상식 퀴즈가 나오면 맞추고자 애를 썼고 한겨울 섹시 댄스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기 보다는 몰래 카메라 식 촬영으로 난처한 상황을 연달아 만들었다.

본격적인 방송 시작에 앞서 MC들은 출연진에게 "어떤 영상이나 사진이 나와도 그 초상권은 모두 KBS에 있다고 서명 다 하신 거다"며 재차 확인했다. 깜짝 놀라게 하거나 분노를 유발시키는 미션이 연달아 등장하는 상황에서 출연진의 표정 관리가 제대로 안 됐음은 불보듯 뻔한 일. MC들의 이 말이 사실인지 장난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연히 표정이 일그러지고 분위기가 험악해질 상황을 마련해 놓고 그 장면을 고스란히 방송에 내보내겠다는 말은 다소 위압적이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여기에 영하의 날씨에 제작진은 두꺼운 겉옷으로 중무장한 채 걸그룹 멤버들에게 무대 의상을 입히고 섹시 댄스를 추게 한 건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안기기 충분했다. 벌벌 떨면서 섹시 댄스를 추는 출연진의 열의와 이후 이때 측정한 몸무게가 제작진에 의해 강제적으로 공개되는 과정은 시청자들을 재미있게 하기 보다는 불편하게 만들었다.

본분 금메달 제작진에 의해 자신들의 체중을 강제로 공개당한 걸그룹 멤버들. 이들은 자신의 몸무게가 측정되고 있는 것도 모른채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 속에서 섹시 댄스를 췄다. /KBS2 방송 화면 캡처
'본분 금메달' 제작진에 의해 자신들의 체중을 강제로 공개당한 걸그룹 멤버들. 이들은 자신의 몸무게가 측정되고 있는 것도 모른채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 속에서 섹시 댄스를 췄다. /KBS2 방송 화면 캡처

'본분 금메달'은 출연진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잘 지키는가를 확인하겠다는 기획 의도를 갖고 있다. 이날 제작진은 표정 이미지 정직 분노조절 등 자신들이 생각하는 걸그룹 멤버들의 본분을 여러 가지 정해놓고 몰래 카메라처럼 이를 측정했다.

제작진이 마련한 이런 미션들이 걸그룹의 본분을 얼마나 제대로 측정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고 안방극장을 유익하게 만들어야한다는 프로그램의 '본분'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듯하다. 만약 어떤 이가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이 얼마나 평정심을 유지하는가를 재겠다며 다 찍어 놓은 테이프를 계속해서 훼손하거나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에 외투도 없이 세워둔다면 당하는 기분은 어떻겠는가.

허영지는 방송 말미 "홀로서기를 하며 큰 마음을 먹고 나왔는데 나를 이렇게 두 번 죽인다"며 PD를 비롯한 제작진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했다. 허영지에겐 방송을 위한 농담이었겠지만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콘셉트에 충실하려다 제작진이 진짜 찾고 지켜야 할 '본분'을 놓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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