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레는) Re(플) : 잘생기진 않았는데 잘생겼어ㅜㅜ(gayo****)
[더팩트 | 김경민 기자] 잘생기지 않은 배우가 '잘생김'을 '연기'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잘생긴 배우들이 망가지는 연기에 도전하는 경우는 종종 봤지만, 반대로 이를 거스르는 경우는 좀 독특해 보인다. 성형수술이나 분장한 것도 아닌데 밤 12시 신데렐라보다 극적인 변신이 이뤄진다. 바로 '응답하라 1988' 안에서, '응답하라' 시리즈만의 마법이 통한 것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되는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세 번째 시즌도 성공할 수 있다는 새 공식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전 '응답하라 1994'나 '응답하라 1997' 시리즈보다 남녀주인공 삼각관계엔 힘을 빼고 가족애와 다양한 캐릭터에 훨씬 집중하면서 호평을 얻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여전히 남자 주인공 정환(류준열 분)의 존재감은 상당히 묵직하다.
정환은 극 중 이름보다 '개정팔'로 많이 불린다. 성덕선(혜리 분)의 내레이션대로라면 아직 사람이 덜 된 소년이다. 무뚝뚝하기 그지없고 다정다감한 말 한마디조차 기대하기 힘들다. 여기까진 여느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차도남' 캐릭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정환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매력 포인트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입체적인 캐릭터다.

정환은 이웃집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남고생이다. 쌍문동 '골목 친구 5인'으로 뭉쳐 있을 땐 더욱 그렇다. 힘센 선배들한테 돈과 운동화를 뺏기고, 친구를 위해 맞섰다가 멋진 한 방을 날리기는커녕 도리어 맞고 만다. 짝사랑하는 성덕선을 보며 가슴이 떨리지만 자신의 마음을 시비거는 투로 표현하는 건 영락없이 서툰 첫사랑에 빠진 소년이다. 그가 지극히 평범한 덕분에 극의 현실감에도 보탬이 된다.
그러다가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정환의 '잘생김'이 비현실적인 로망을 충족한다. 복권에 당첨된 집안, 소방차 댄스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운동신경, 어울리지 않게 반에서 1등까지 하는 명석한 두뇌는 기본적인 남자 주인공의 특권이라고 치자. 그런데 껄렁껄렁해 보이지만 어른을 향한 예의는 깍듯하다. 7수를 앞둔 형을 진심으로 아끼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미묘한 삐침을 재빠르게 감지해 동룡(이동휘 분)을 통해 해결한다. 눈치가 좋은 아들을 넘어 늘 주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본성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방식의 짝사랑 표현법은 설렘 유발 포인트다. 지난 4화와 5화에서 만원 버스에 치이는 성덕선을 위한 방패막이가 되거나 자정이 넘도록 귀가하지 않은 성덕선의 우산 배달부가 되는 장면은 많은 여성 시청자가 '정환'을 연호하게 했다.

정환을 연기하는 류준열은 조각같이 잘생기거나 꽃미남같이 고운 외모는 아니다. 하지만 공존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상반된 캐릭터를 하나의 인물로 응집한 정환을 통해 역대 '응답하라' 시리즈 남자 주인공 중 '잘생겼다'는 칭찬을 가장 많이 듣고 있다.
전작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 김재준(정우 분)도 그랬다. 쓰레기가 과자를 사달라는 성나정(고아라 분)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나갔다가 결국 과자더미 봉지를 무심하게 던져버리고 가는 장면은 팬들이 정우에게 '입덕'하게 만든 장면으로 꼽힌다. 상한 음식을 먹어도 배탈 한번 나지 않고, 딸기가 자연발효돼 잼이 될 때까지 청소하지 않는 캐릭터에겐 반전이었기 때문에 극적으로 전달됐다.
모두 배우의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가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류준열이나 정우의 부담스럽지 않은 외모가 노림수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음모론(?)이 고개를 든다. 눈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바꾸고 '잘생김'의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캐릭터의 힘, 신원호 PD-이우정 작가가 쓰는 '캐릭터발'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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