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은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서태지(42 본명 정현철)와 양현석(44)이 요즘 또다시 많은 이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지 무려 8년째라는 둘 사이에 뭔가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컴백'한 서태지와 '저격'한 양현석이라는 뼈 있는 보도가 쏟아지기도 했다.
모양새가 아름답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서태지가 5년 만에 컴백을 예고하며 정규 9집 발표 계획을 알렸을 때 10월 가요계는 오롯이 그의 것이 될 듯했다. 그런데 서태지가 9집 수록곡이자 아이유 버전에 이은 자신의 '소격동' 음원을 먼저 공개하겠다고 하자 난데없이 양현석이 '훅' 치고 들어왔다.
그가 내민 무기는 소속 아티스트인 '음원 깡패' 악동뮤지션. 심지어 서태지가 음원 발표를 예고한 같은 날 10일이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은 "양현석이 서태지를 제대로 저격했다"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태지와 악동뮤지션이 음원 차트에서 맞붙는다면 손해 보는 건 서태지이기 때문이다. 잘해야 본전인 '문화 대통령'과 밑질 게 없는 '신인'의 대결인 이유에서다.
그래서일까. 서태지는 뮤직비디오 완성도를 이유로 '소격동' 음원 공개를 12시간 뒤로 미뤘다. 서태지의 부재 아래 악동뮤지션은 10일 '시간과 낙엽'으로 음원 차트 1위를 휩쓸기 시작했다. 12시간 뒤 공개된 '소격동'이 1위 여러 개를 빼앗아 결과적으로 두 팀은 음원 차트를 양분했고, 악동뮤지션에게는 '역시'라는 찬사와 서태지에게는 '기대 이하'라는 성적표가 주어졌다.

절치부심한 서태지는 16일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으로 제 기량을 찾았다. '소격동'과 사뭇 다른 뜨거운 반응 속에 서태지는 "문화 대통령 아직 죽지 않았다"는 평가를 얻었고 18일 서울 잠실 주 경기장에 마련된 단독 콘서트까지 화려하게 이끌었다. '명불허전' '클래스가 다르다'는 공연 기사가 홍수를 이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 20일 서태지의 9집 '크리스말로윈' 앨범 완전체가 공개됐다. 먼저 발표한 '소격동' '크리스말로윈'을 비롯해 '숲 속의 파이터' '프리즌브레이크' '나인티스아이콘' '비록' '잃어버린' '성탄절의 기적'에 인트로까지 9곡이 모두 베일을 벗었다.
하지만 산이 또 있었다. 막강한 보이그룹 비스트가 가을 감성을 가득 채워 컴백해 '12시 30분'으로 음원 차트 1위를 휩쓴 것이다. 여기에 21일 양현석 군단의 에픽하이까지 힘을 보태 서태지를 위아래로 공격했다. 어느새 서태지는 차트 상위권에서 밀려났고 에픽하이 대 비스트의 1위 싸움이 됐다. 양현석이 또다시 서태지의 앨범 공개일에 에픽하이로 맞불을 놓은 셈이다.
'문화 대통령' 서태지, 양현석의 노림수에 이렇게 당하고 마는 걸까.

많은 이들의 동정(?)에도 서태지는 '쿨'했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컴백 기자회견을 연 그는 양현석에 관한 질문에 "우리 양군(양현석)이 성공한 부분에 대해서는 뿌듯하고 기쁘다. 함께 활동하던 동료들이 잘 됐으면 한다"며 활짝 웃었다.
악동뮤지션과 에픽하이의 컴백으로 '고춧가루를 뿌린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에는 "컴백 및 음원 발매는 공교롭게 맞물렸다. 정말 '공교롭게'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면서 "하루에도 많은 가수들이 쏟아져 나오기에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신비주의를 벗은 서태지의 여유가 돋보인 코멘트였다. 5년 만의 컴백에 후배들과 비교되는 음원 성적이 민감할 법도 하지만 서태지는 "서태지의 시대는 1990년대에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을 낮췄다. 그러나 "음악의 변화는 내 음악을 듣던 대중을 많이 버리게 된 셈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고 아티스트로서 단호하게 말했다.
결과적으로 양현석은 서태지를 제대로 노렸고 서태지는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음원 성적을 차치한다면 서태지는 아티스트로서 현재진행혐임을 굳건히 했고 양현석은 YG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이자 영민한 제작자임을 확실히 알렸다. 함께 시작한 둘은 그렇게 상반된 길을 걷고 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졌다는 잣대는 불필요하다.
ps. Y : 하지만 이것은 마치…,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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