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한나 기자] '시대가 변했나?'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려면 성인인증이 필요한 키워드 '베드신'이 한 지상파 방송사에 연달아 등장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기황후' 종영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MBC가 '선정' 키워드를 들고 나왔다. 시청률 회복을 위한 '극약처방'을 꺼내든 셈이다. 꽤 농도 짙은 베드신은 예상대로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자극적 장면으로 '시선 끌기'를 유도했다면 구실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에서 이같은 '베드신'은 괜찮은 것일까.
지난 6일 방송된 MBC 주말드라마 '호텔킹'에서는 아모네(이다해 분)와 차재완(이동욱 분)의 격정적인 베드신이 등장했다.두 사람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애틋한 장면이었다. 두 사람의 키스는 수 분 동안 수차례에 걸쳐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노출된 이동욱의 상반신은 영상 속에 꼼꼼하게 담겼다. 이어진 장면에서 두 사람은 한 침대에 포개 누워있으면서 야릇한 상상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3일 MBC 수목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도 베드신이 등장했다. 이건(장혁 분)과 김미영(장나라 분)의 돌발 하룻밤이 그려졌다. 이날 베드신은 달나라의 토끼 대신 장혁과 장나라가 떡방아를 찧는 장면으로 처리됐다. 총천연색의 한복을 입고 연지곤지까지 찍은 이들이 열심히 떡방아를 찧는 장면이 코믹하게 표현됐다. 남녀간의 사랑행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누군지도 모른 채 하룻밤을 보내는 설정이었지만 이후 한 이불 안에서 상의를 벗고 꼭 끌어안고 있어 이전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베드신을 유머러스하게 풀었지만 가족들과 시청하기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장면임에는 분명했다.

문제는 이들 드라마 모두 청소년 관람가 등급인 데다 2,3대가 함께 모여 볼 수 있는 안방에서 방영됐다는 점이다. 방영 시간대가 오후 10시라고 하지만, 요즘 생활 패턴을 고려하면 10시는 거의 프라임 타임에 해당된다. 물론 '호텔킹'과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 등장한 베드신은 극의 흐름에 중요한 장면이었던 것은 맞다. '호텔킹'은 두 사람의 애달픈 사랑을 녹여냈고 '운명처럼 널 사랑해' 속 베드신은 불과 방송 2회만이었지만 '선 임신 후 연애'가 콘셉트인 드라마의 특성상 필요한 전개 요소로 볼 수 있다.
두 드라마 모두 개연성이 떨어지는 구성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수위로 그려야 했는지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특히 이들은 극 중 베드신을 두고 긍정적인 자평을 내놓으며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어 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4일 열린 '호텔킹' 기자 간담회에서 이동욱은 극 중 차재완과 아모네의 베드신을 언급하며 "아마도 방송사에 길이 남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감을 높였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 측 역시 방송 후 문제의 떡방아신의 비하인드 컷을 공개하며 '배우와 제작진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는 등 해당 장면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같은 상황을 보고 있자니, 선정적인 장면에 둔감해진 요즘 방송가 세태에 새삼 놀라게 된다. 앞선 두 베드신은 충분히 '선정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야릇했지만 이러한 베드신과 노출장면을 두고 '대수롭지 않다' '재밌다'는 등의 반응도 적지 않게 나왔다. 불과 올해 초만 하더라도 바닥에 누워 몸을 훑거나 다리를 벌리는 등의 안무를 한 걸그룹들에 선정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철퇴가 가해진 것과는 상반된 반응이다.
몇 년전에는 남녀가 노출없이 침대에 누워 가벼운 키스만 하더라도 선정성 논란을 일으키며 재방송에서는 삭제되는 수모를 겪었다. 아무리 '야동'이란 말이 예능 토크프로그램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요즘이라고 하지만 드라마에서까지 베드신이 갈수록 느는 것은 격세지감이다. 시선 끌기 식으로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해온 드라마 제작진의 '도발'에 시나브로 시청자들이 익숙해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MBC는 공영방송이다. 건전한 사회문화를 이끌어가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성인채널도 아닌 지상파 공영방송에서, 그것도 청소년 관람가 드라마에서 낯뜨거운 장면으로 집안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안방극장에서 허용되는 선정성에 대한 기준은 조금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정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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