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기자] KBS1 '정도전' 제작진이 호언장담한 '역대급 엔딩'은 시청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깜짝 반전으로 일군 엔딩은 아니었다. '역대급 엔딩'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늘 보여줬던 배우들의 명품 연기와 정현민 작가의 명대사는 훌륭한 재료였다.
29일 오후 방송된 '정도전' 마지막 회는 이방원(안재모 분)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과 정도전(조재현 분)의 최후를 그렸다.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소재로 어떻게 '역대급 엔딩'을 만들어낼지 방송 전부터 많은 관심이 쏠렸다.
제작진의 선택은 정면 돌파였다. 다른 꼼수나 깜짝 카드는 없었다. 50회까지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결정적 이유였던 배우들의 연기와 대본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배우들은 '역대급 연기', 작가는 '역대급 대본'으로 믿음에 보답했다.
정도전은 결국 이방원의 칼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동료들과 연회를 벌이다가 이방원의 기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방원 무리에 잡혔지만 정도전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방원은 "사병 혁파 숭유억불 등 정도전이 주장한 모든 걸 받아들이겠다. 다만 재상정치만 포기해달라"며 "내 신하가 될 수 없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치욕으로 받아들이고 "재상 정치는 백성이 주인이 되는 국가를 위한 것"이라며 완강하게 거부하고 죽음을 택했다.
이방원은 결국 정도전을 직접 베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조재현의 표정은 압권이었다. 그는 실제 정도전에 몰입한 듯 50회를 이끌어 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연기는 빛났다.
조재현의 뒤를 이어 이성계 역의 유동근의 신들린 연기가 나왔다. 그는 정도전을 죽이고 온 이방원에게 "용상이 그렇게 탐이 났냐"며 "너는 재목이 아니었다. 용상에 오르면 사람들이 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봉(정도전) 만은 달랐다"고 호통했다. 이방원의 칼을 맨손으로 쥐느라 피가 났지만 피 묻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유동근의 연기에는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이방원이 마침내 용상에 앉아 "왕의 재목은 용상에 오를 힘이 있는 자"라며 자신의 행동을 옹호하고 떠나자 그는 "삼봉 미안하네"라며 끝까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도전'의 정점을 찍었다.
대선배들과 함께한 안재모도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로 작품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도왔다. 그가 유동근 조재현과 견줄만한 무게감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마지막 회 왕자의 난의 제맛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회인 만큼 극 중 사망한 이인임 역의 박영규, 정몽주를 연기한 임호 등도 등장했다. 이인임은 정도전이 죽은 뒤에 나왔다. 이성계는 "자네에게 권좌는 지옥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던 이인임의 말을 되새기며 칼로 용상을 찌르는 등 후회하는 기색을 보였다. 정몽주는 정도전이 죽으면서 떠올리는 장면에서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까지 명대사도 여전했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독대 장면과 이성계와 이방원이 왕의 재목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계속해서 주옥같은 대사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명품 배우들이 온 힘을 다해 대사를 소화하면서 대사 자체도 빛났다.
'정도전'은 역사 왜곡이나 시대에 대한 고증이 부족한 퓨전 사극이 사랑을 받는 흐름에서 정통 대하 사극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마지막 회에서 보여준 것처럼 조재현 유동근 박영규 안재모 등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환상적인 연기로 극의 매력을 더했다. 또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한 재해석과 현재 우리 사회에 적응해도 딱 맞아떨어지는 듯한 대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정도전'의 후속으로는 조선 시대 문신 류성룡을 주인공으로 하는 '징비록(가제)'이 확정됐다. 그러나 해마다 대하드라마 한 작품만을 방송하기로 한 KBS의 정책에 따라 내년 1월쯤 방송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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