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기자] 어떻게 20년을 참았을까. 임창정(41)은 그동안 풀지 못한 단독 공연의 한을 공연장에 모두 쏟아냈다. 공연장 어귀에는 20대 초반부터 50대 중장년까지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지상파 연말 음악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쓸던 임창정이기에 다양한 연령층의 3500여 팬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같은 시간 옆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개최한 엑소의 팬들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임창정이 여전히 오빠였고, 힘든 시절 소주 한 잔과 곁들이던 추억의 노래를 전해준 주인공이었다.
그런 임창정이 23일 오후 8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SK핸드볼경기장에서 생에 첫 단독 콘서트 '전국 투어 흔한 노래 흔한 멜로디'를 개최했다. 시작부터 남달랐다. 임창정은 어떠한 멘트 없이 14곡을 내리 열창했다. '임창정' 이름 석 자를 외치는 팬들에게 임창정은 공연장 천정을 찌르는 고음으로 그간의 묵은 이야기를 대신 털어냈다.
그는 무대를 좌우로 가르며 팬들에게 손 인사를 나누며 '썸머드림' '기쁜 우리' 'www.사랑.com' '여우비' '니 옆이고 싶어서' 등으로 분위기를 바짝 끌어올렸다. 초반 추억의 댄스 러시가 이어졌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깝' 댄스가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어 '기다리는 이유' '슬픈 혼잣말' '오랜만이야' '나의 인연' '슬픈 인연' '러브어페어' 등 특유의 애절한 발라드 넘버를 이어갔다.

◆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무대
임창정은 콘서트의 문을 열기 전 나라 전체를 덮친 재앙과 그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커튼콜이 올라가기 전 무대 앞쪽에는 26명의 어린이 합창단이 등장했다. 이 아이들은 '위로'를 열창했다. 맑고 순수한 음성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고 듣는 이들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연주곡 '8월에 이별'과 '가을의 전설' 연주곡도 무대에서 객석으로 잔잔히 흘렀다. 이어 '간단한 안녕조차 못한 이별.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귀가 전광판을 채웠다.
어떠한 말이나 몸짓보다도 깊은 울림이 전해졌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도 숙연해졌다. 공연 곳곳에서 팬들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거나 옆에 있는 이의 손을 '꼬옥' 잡았다.
◆ 관록, 닭살을 부르는 가창력 '명불허전'
곡 하나면 충분했다. 임창정에게 팬들을 들썩이게 하고 다시 숨죽이게 하는데 여러 곡이 필요치 않았다. 그가 고음을 뽑아내면 조용히 구를 열었고, 말을 하거나 몸을 쓸 때는 여기저기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연기하고 장난을 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바꾸고 자연스레 질러대는 시원한 고음은 단연 압권이었다.
멜로디를 타고 전해지는 '지질'하면서도 애절한 감성은 단연 공연의 백미였다. 관객들은 같은 노래를 들었지만 저마다의 추억에 잠겼다. 특히 임창정과 동시대를 살아온 40대 초반 관객과 임창정의 노래를 듣고 자란 30대 남녀 관객은 더욱 그러했다. 임창정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고 술을 마시고 친구에게 하소연하던, 가슴 속에 고이 숨겨둔 '그때'가 각자의 마음으로 피어났다. 추억이 주마등처럼 밀려왔고, 슬픔과 기쁨이 교차했다. 임창정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노래로 이끌어냈다. 관객석엔 정적이 흘렀고 때론 외마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떼창'은 10대와 20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도 이번 공연으로 확인됐다. 40곡에 가까운 셋 리스트에도 지치지 않고 떼창의 진풍경이 연출됐다.
◆ 수십 년을 기다린 팬들 '보상받다'
'오랜만이야' 무대 때 팬들은 '보고 싶었어'라는 글이 적힌 플래카드를 일제히 머리 위로 들고 임창정을 반겼다. 팬들은 임창정이 무대에서 라이브 하는 주옥같은 발라드 및 댄스 넘버를 직접 관람하길 바라왔다. 수많은 요청이 소속사와 각종 커뮤니티에 끊이지 않았다.
임창정은 팬들의 마음을 알았을까. 임창정은 1995년 4월 발매한 데뷔곡 '이미 나에게로'를 시작으로 가수 생활 20년 만에 처음으로 연 단독 콘서트를 3시간의 러닝타임으로 준비했다. 그 사이 임창정은 38곡을 열창했다. 일반 공연에서 가수들이 18곡에서 24곡을 부르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하지만 한참 노래를 듣다 보면 이 많은 곡을, 그것도 상당한 고음의 노래를 쉬지도 않고 모두 소화해 내는 게 놀라워지기 시작한다.
공연 도중 임창정이 "들려줄 곡이 매우 많다. 막차가 끊기지 전에 모두 들려줘야 한다. 마음이 바쁘다"고 말할 정도다. 또 그는 영상으로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고맙다. 늘 곁에 있어줘서. 또 하나의 인생이 되어준 당신들. 지금 이 순간 흔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기자. 우리'라고 대신 마음을 전했다.
◆ 만능 엔터테이너의 진면목 '유쾌 상쾌 통쾌'
임창정은 곡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영상으로 깨알 재미를 더했다. 일상 속에서 립싱크로 노래를 이어가는 영상과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한 부분을 빌려와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하루 자신의 일상을 담은 듯하지만 생뚱맞은 상황에서도 계속 천연덕스럽게 노래하는 모습이 관객들을 폭소케 했다.
공연은 음악과 영화, 만담이 어우러진 장이 됐다. 임창정은 태권도복 등 자신이 출연했던 '색즉시공' '불량남녀' '시실리2km' 등의 영화 속 의상을 진지한 발라드를 불러 묘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또 콩트를 준비하거나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시종일관 관객들의 눈을 자신에게 고정시켰다.
공연이 처음인 그는 코디와 사인이 맞지 않아 옷을 갈아입다가 벌거벗은 채로 무대에 오를 뻔한 일, 그 사이 코디가 인이어 마이크를 끈 걸 모르고 노래를 시작해 당황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자신의 히트곡에 담긴 사연도 공개했다. 1989년 이상형을 만났지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만든 '이미 나에게로', '혼자만의 이별'을 듣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아련한 향기를 느끼게 하는 곡을 만들고자 마음먹고 만든 '가슴에 고인 이름', 작곡가의 곡을 여러 번 거절한 뒤 마음에 들어, 편곡해 공동 작곡에 이름을 올리려다 퇴짜를 맞고 급한 마음에 녹음실에서 곡을 써 녹음을 마쳤다는 '날 닮은 너' 등 팬들이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대방출했다.
이날 공연은 특별 손님도 즐거움을 주는데 한몫했다. JTBC '히든싱어' 출연 시 함께 경연을 벌였던 참가자 5명이 무대로 올라 '깜짝 히든싱어'를 재연했고, 임창정의 절친 DJ DOC가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신 나는 시간을 가졌다.
앙코르곡은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소주 한 잔'이다. 어느새 이 곡은 임창정을 기억하는 가장 첫 번째 노래가 됐다. 임창정은 본 공연이 끝나고 홀로 무대에 올라와 '소주 한 잔'을 부르고 팬들과 인사했다. 그는 "나름 선곡을 했지만, 듣고 싶은 곡을 부르지 못 했을 수도 있다. 이해해주길 바란다. 못한 곡은 다음 공연에서 부르겠다"며 "사실 내게 다시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 못 했다. 정말 기쁘다. 감사했다"고 작별을 고했다.
임창정은 다음날인 24일 이곳에서 한 번 더 공연을 이어가며 이후 전주 인천 광주 대구 등지에서 전국 투어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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