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종영한 SBS 주말드라마 '결혼의 여신'과 KBS2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로 시청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배우 이태란을 지난 8일, <더팩트> 취재진이 서울 영등포 여의도에 있는 KBS 별관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스타페이지 엔터테인먼트 제공 |
[성지연 기자] "죄송해요.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해서…."
보통 배우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는 장소는 비슷하다. 사람이 적은 고즈넉한 카페나 고급스러운 식당, 혹은 회사 방문이다. 그래서 배우 이태란(38)과 인터뷰 약속을 했을 때도 당연히 아기자기한 카페나 고급스러운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머릿속에 그렸다. 하지만 그를 만난 곳은 햇볕 한줄기 들지 않는 허름한 KBS 별관 대기실이었다.
8일 오후, 서울 영등포 여의도에 있는 KBS 별관 사옥을 찾았다. '왕가네 식구들' 리허설이 한창이라 스태프들의 분주한 발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생경한 풍경을 뒤로한 채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가자 두평 남짓한 대기실에 배우 이태란이 앉아 있었다. 처음 만난 이태란은 어색한 표정으로 너덜너덜한 대본을 움켜쥐고 엉거주춤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자연스러운 갈색 웨이브 머리에 깔끔한 바지를 입고 있는 그가 수줍게 웃자 '결혼의 여신'에서 봤던 홍혜정이 떠올랐다. 살갑게 인사를 건네며 "이런데서 만나다니 신기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이태란도 하얀 이를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그러자 '왕가네 식구들'의 왕호박스러운 다정한 느낌도 물씬 풍겼다.
"안녕하세요~오늘도 바빠서 '미~추어' 버리겠네요. 하하하!"
◆이태란이 2014년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이유, 홍혜정과 왕호박
이태란은 SBS '결혼의 여신'에서 재벌가 며느리 홍혜정으로 열연했고 현재 KBS2 '왕가네 식구들'에서 생활력 강한 착한 둘째 딸 왕호박으로 열연하고 있다./SBS 제공, 드림이앤앰 제공 |
이태란은 지난 6월 SBS 주말드라마 '결혼의 여신'에서 야망을 품은 재벌가 며느리 홍혜정 역으로 열연했다. 또 8월 방송을 시작한 KBS2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에서는 억척스러운 살림꾼 왕호박으로 분해 열연 중이다. "지금은 한숨 돌렸다"라고 말하는 그였지만, 이태란은 지난달까지 '결혼의 여신'과 '왕가네 식구들'을 오가며 하루도 쉬지 못하는 강행군을 이어왔다.
"저도 (스케줄이)그렇게 될 줄 몰랐어요. 그래도 제가 힘든 것 보다는 초반에 리모컨을 돌리면서 당황하셨을 시청자분들한테 죄송하죠(웃음). 그래서 '힘들었다', '피곤했다'라는 말은 안 하고 싶어요. 즐거웠어요. '강행군'은 맞아요. 일주일 내내 쉬는 날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선택이었으니까 양쪽 드라마에 피해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던 것 같아요. 촬영하면서 아프지 않기 위해 많이 먹고 건강에 신경 썼죠(웃음). 여전히 '밥 힘'으로 튼튼히 일하고 있고요."
씩씩하고 겸손하게 말을 이어가는 이태란이었지만, 막상 만난 그의 얼굴은 지난 6월 '결혼의 여신' 제작보고회에서 만났던 것보다 훨씬 핼쑥해져 있었다. "엄살 좀 부려보라"며 쿡 찔러봤지만, 이태란은 그럴수록 더욱 활짝 웃었다.
"저는 바쁠수록 즐거워요. 많은 분이 제가 두 작품을 함께 하는 것에 있어서 '서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감정을 잡는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하셨데요. 그도 그럴것이 아침에는 '왕가네 식구들'을 촬영하고 저녁에는 '결혼의 여신'을 촬영한 날도 있었거든요. 이해해요. 그런데 혜정이랑 호박이는 전혀 다른 성격의 캐릭터에요. 그래서 어렵지 않았어요.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죠. 혜정이의 고급스러운 옷을 입으면 저도 모르게 '청담동 며느리'가 되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걷게 됐죠. 그리고 금새 호박이의 후줄근한 사각팬티로 갈아 입으면 저도 모르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더라고요(웃음)."
이태란은 도회적인 이미지와 단아한 외모로 그간 드라마를 통해 똑부러지는 캐릭터를 도맡아 했왔다./ KBS2 '소문난 칠공주', '장밋빛 인생' 제공, 더팩트DB |
인터뷰를 하며 시종일관 시원스러운 웃음을 내뱉는 이태란의 얼굴에서 씩씩함이 묻어났다. 앞서 이태란은 '결혼의 여신'이나 '왕가네 식구들'에서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2006년)', '장밋빛 인생(2005)' 등을 통해 꿋꿋하고 생활력 강한 캐릭터를 도맡아 왔다. 이 때문이었을까. 남성 팬보다는 아줌마 팬, 여자 팬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시나리오나 캐릭터를 특별히 가린 건 아닌데 그렇게 돼버렸어요. 아무래도 드라마 감독님이나 작가님들이 배우를 캐스팅할 때 '전작 이미지'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털털하고 도회적인 역을 많이 해온 것이 사실이에요. 그런 게 이태란 다운 이미지로 굳어진 거 같아요. 하지만 다른 것도 잘할 수 있어요(웃음). 욕심나는 캐릭도 많아요. 듣고 욕하지 마세요. 사실 캐릭터가 욕심나는 게 아니라 남자 배우가 부러운 것 같아요. '상속자들'의 박신혜 씨요! 하하하!"
'결혼의 여신'에서 이태란의 남편으로 분한 김정태는 폭력을 휘두르고, '왕가네 식구들'에서 이태란의 남편으로 분한 오만석 또한 죄책감 없이 불륜을 저지르는 못난 남편이다./더팩트DB |
'꽃미남' 배우 김우빈과 이민호 사이에서 행복하게 연기하는 박신혜가 부럽다고 말한 뒤, 이태란은 "주책없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이태란이 박신혜를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결혼의 여신' 속 남편 김정태와 '왕가네 식구들'에서 만난 남편 오만석은 못나도 '너무 못났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의 여신'에서 제가 김정태 씨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면서 결말을 맺잖아요. 많은 분이 실망하신 듯해요. 그런데 처음부터 기획의도가 그랬었데요(웃음). 저도 혜정이가 주먹질도 하고 그래서 뭔가 반전이 있겠거니 내심 기대하긴 했어요. 그리고 '왕가네 식구들'에서도 간혹 허세달(오만석 분)을 대하는 호박이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작가 선생님이랑 충분히 대화해요. 공감이 돼야 연기도 하죠. 그러면서 저 스스로 느낀 게 이태란으로 호박이나 혜정이를 이해하려 하면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이 정말 호박이가 되고 혜정이가 되면 공감이 되더라고요. 음, 어렵나요?"
◆이태란은 왜 연애하지 않을까? "결혼하려고요."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이태란은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삼화 네트웍스 제공 |
한 해동안 브라운관에서 유부녀 캐릭터로 열연한 이태란은 결혼 적령기를 넘어섰다. '적령기'라는 말이 웃기다고는 하지만 씁쓸하게도 "한국에선 그렇다"라며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제 친구들은 이미 아기 엄마가 됐어요. 가정을 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죠. 저도 그러고 싶어요. 단란한 가정을 꿈꾸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나요. 저를 품어줄 수 있는 성숙한 남자를 만나서 여자로서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요."
'미래형'으로 말하는 이태란에게 넌지시 "좋은 인연을 만났느냐"라고 묻자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좋은 인연을 만나면 공개 연애를 할 거냐"라고 묻자 입을 다물고 잠시 숨을 고른다.
"공개 연애라는 말은 이제 웃긴 거 같아요. 아까 말했죠? 이제 저는 결혼 적령기도 넘겼는걸요. 그래서 앞으로 사람을 만나면 더 진지하게 만나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요. 만약 공개하게 된다면 그때는 열애보도 말고 결혼 발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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