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호 기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배우들이 무대 위에 등장한다. 남자와 여자. 이성을 처음 발견하게 된 이들은 서로의 냄새를 맡고, 맛을 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며 곧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항상 함께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이들의 조정자들은 이 둘을 떨어뜨리고, 각자 다른 이성을 만나게 한다.
갑자기 너무 많은 세상이 생겨버린 아이들은 곧 혼란에 빠지고 격렬한 논쟁이 시작된다. 이 잔혹한 실험은 '사랑의 변심의 시작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갓 태어난 4명의 남녀아이를 세상과 격리시킨 채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만나게 하여 이성의 발견, 사랑, 변심의 과정을 관찰한다.
18세기에 쓰여진 '논쟁(La Dispute)'은 프랑스 대표작가 마리보(P.Marivaux)의 작품으로 1744년 꼬메디프랑세즈극단에서 공연을 올렸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단 1회만에 작품을 내렸다. 마리보의 생전에 다시 공연되지 않은 '논쟁'은 1973년 프랑스연출가 파트리스 쉐로에 의해 새롭게 공연되면서 인기를 얻어 최근에야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국내에 '논쟁'을 처음으로 소개한 임형택은 원작의 클래식한 무대적 장치와 시적인 대사들을 단순하고 1차원적인 욕구만이 남아있는 원시적 버전인 '논쟁B.C'로 새롭게 각색하고, 순백에 하얀 실험공간으로 현대화시켰다.
초연 당시 네 명의 남녀배우들이 알몸으로 등장하는 파격적 무대예술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유료 관객 1만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연극 논쟁은 단순한 '알몸연극'이라는 이슈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남자와 여자에 대한 미묘한 심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작품성과 예술성 모두 인정받으며 흥행 돌풍을 이어나가고 있다.
한편 '논쟁B.C'는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다음달 7일까지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