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희기자] 삼성의 첫 여성 CEO가 탄생하는 13일, 하늘은 몹시 쾌청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녀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의 취임식이 진행되는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은 새로운 사장을 맞이할 준비로 조용하지만 분주한 모습이었다.
비공개로 개최되는 이날 취임식은 한 겨울의 날카로운 바람만큼이나 삼엄한 경비가 눈에 띄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신라호텔 영빈관을 중심으로 보안요원들이 배치됐고, 호텔과 영빈관이 연결된 통로에는 네 명의 보안요원과 직원들이 만에 하나 발생할 사고에 대비해 경비태세를 취했다.
이건희 회장의 맏딸이자 삼성의 첫 여성 사장의 취임식에 취재진이 빠질 수 없었다. 이른 시각부터 이부진 신임 사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담기 위해 몰려든 취재진은 신라호텔의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전하려 했으나, 오히려 취임식 개최를 알리는 현수막이나 화환이 일절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전무.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
호텔 직원들은 떠들썩한 잔치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으면서도 모두 기쁜 표정으로 분주히 호텔 내부를 오갔다. 바쁜 걸음으로 호텔을 오가는 한 룸메이드는 “새로운 사장님이 취임하신다는 소식에 모든 직원들이 기뻐한다”면서 “경사스러운 날인만큼 임직원을 비롯해 룸메이드들까지 각자 즐거운 마음으로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일찍 호텔에 출근해 자신의 집무실에서 잠시 머물렀던 이부진 사장은 10시55분 행사장인 영빈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호텔 로비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날 사장은 올블랙룩으로 세련된 스타일을 연출했다. 블랙 드레이프와 깃털 장식이 돋보이는 긴팔 원피스를 입었다. 여기에 블랙 가죽 롱부츠를 매치하여 여느 여성 CEO와는 다룬 세련된 패션 감각을 뽐냈다. 이에 이 사장을 알아본 취재진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플래시를 터뜨렸다. 이 사장과 취재기자, 보안요원들은 한데 뒤엉켜 잠시 어수선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당황한 듯 딱딱한 표정으로 한걸음씩 이동했다. 하지만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네는 취재기자들의 인사에 이내 표정이 풀리며 “고생이 많으시죠?”라고 화답했다. 감회를 묻는 질문에는 “수고하세요”라고 짧게 대답한 뒤, 다시 보안요원들에 둘러싸여 영빈관으로 입장했다. 행사를 진행하는 신라호텔 직원은 “이부진 사장님이 로비를 통해 입장하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소란에 빚어진 데 대해 당황해 했다.
영빈관에 입장한 이 사장은 제 17대 대표이사 취임사를 통해 직원들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하며 협조를 주문했다. 이 사장은 “호텔신라 전현직 임직원들의 헌신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호텔신라가 글로벌 명문 서비스 기업으로 도약하도록 성장과 혁신을 경영기조로 삼아 임직원의 한마음 한뜻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지난달 신라호텔 전무에서 사장으로 두 단계 승진했다. 지난해 전무로 승진했던 이 사장은 전무 근무연한인 3년을 채우지도 않은 채 두 단계나 승진해, ‘리틀 이건희’라는 평가를 다시 한번 세간에 알렸다.
삼성의 첫 여성 사장으로 등극한 이부진 사장의 승진 배경에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특히 부친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확실히 역량을 인정받아 최근 들어 더욱 총애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재계에 파다할 정도. 이부진 사장의 취임에 따라 삼성은 창립 72년만에 최초로 ‘여성 CEO’를 배출하는 동시에 본격적인 ‘3세 경영시대’의 순항을 알리게 됐다.
한편, 지난 8일에 있었던 ‘2011 사장단 임원승진’에서 이부진 사장의 남편인 임우재 삼성전기 전무만 유독 오너 일가에서 승진이 제외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