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황진희기자] 새해준비를 가장 먼저 하는 곳은 어디일까? 가장 근접한 정답은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인쇄골목'이 아닐까.
사방에서 풍겨오는 잉크와 기름냄새에 휘감겨 비좁고 허름한 골목사이로 들어서면 인쇄공장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덜컹거리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들은 벌써 2010년을 바쁘게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 24일 화요일 오후 충무로 인쇄골목은 쌓아둔 종이더미와 물건을 옮겨 싣는 용달차들로 빼곡할 뿐 기대와는 다르게 한산한 모습이다.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인쇄공장을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그렇게 2010년 달력을 미리 만나봤다.
서울시 중구 충무로 대한극장 건너편에서 을지로로 이어지는 200m 남짓한 길을 따라 사이사이 늘어선 충무로 인쇄골목. 그 중에서도 명보극장 옆으로 나 있는 골목은 ‘달력 업체’들이 주로 들어서있다. 이곳에서 달력 총판을 담당하는 업체 안으로 들어서자 네 벽면에 빈틈없이 전시된 달력들이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 금수강산, 유명 화가의 작품, 특정회사 로고가 박힌 달력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국내외 누드모델들의 사진이 담긴 섹시달력들이다. 동네 맥주집이나 당구장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달력들이다. 섹시달력에 관심을 보이자 인쇄골목 위치한 한 달력업체의 김수환 대표는 “주로 주류를 판매하는 소매상에서 낱개로 사간다”고 말한다. 또 “옛날에는 성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의 사진에 불과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사진들이 대담해지고 있다"며 섹시달력의 변화상도 덧붙였다.
이색적인 테이블 달력도 눈길을 끈다. 그 중 마이클 잭슨 추모달력은 그의 유년시절부터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무대 모습까지 일대기가 담겨있다. 한 해가 지나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마이클잭슨의 일생이 담긴 사진앨범으로도 소장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시계’+‘달력’, ‘거울’+‘달력’, ‘명함꽂이’+‘달력’ 등 복합적인 기능성 달력도 유용해 보인다. 직장인들이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기에 딱이다.


2010년 달력의 새로운 트렌드는 ‘웰빙’이다. 계절마다 걸리기 쉬운 질병들을 소개하고 예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놓은 달력, 몸에 좋은 제철과일들을 알려주는 정보성 달력들이 많이 걸려있었다. 달력을 고르러 온 손님들도 대부분 웰빙달력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 해 경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알려면 충무로에 가보라’는 말이 있듯 달력판매 관계자에게 "요즘 경기가 어떠냐?"고 물었다.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예약이 들어오지 않아 죽을맛"이라며 손사레를 친다.

하지만 달력을 만드는 제작공장에 가보니 총판업체의 말과는 달리 “2008년에 비해 경기가 좀 나아진 것 같다. 주문도 꽤 늘어서 공장을 24시간 돌리고 있다”고 희망적으로 답했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2010년의 경제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그러나 내년 달력을 만들고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새해는 여전히 희망적이다. 2010년의 희망도 늘 그랬듯 작은 인쇄골목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