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연말 1290~1380원 전망…하단 1320원 예상도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미국 중간선거 이후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우려가 확산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1350원대로 급등했다. 글로벌 달러화 약세에도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가 이어지며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진 가운데 은행권에서는 반도체 투자심리 악화가 단기에 그치면서 연말까지 환율이 다시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6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40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1355.5원을 기록 중이다. 환율은 장 초반 1358.3원까지 치솟으며 지난달 2일 이후 약 한 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전날에도 환율은 글로벌 달러 약세 흐름과 달리 상승했다. 지난 5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6원 오른 1342.1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달러화 약세 기대가 커졌지만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 영향이 더 크게 작용했다.
환율 상승의 배경에는 미국의 AI 산업 규제 강화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으로 AI 데이터센터 건설과 관련한 규제 논의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글로벌 기술주와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미국 현지시간으로 5일 뉴욕증시에서는 기술주를 중심으로 매도세가 확대됐다. 나스닥지수는 5.52% 하락했고,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도 각각 3.44%, 4.36% 떨어졌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위축이 반도체 수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 전반으로 번진 것이다.
국내 증시도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이날 코스피는 장 초반 8% 넘게 급락하며 5000선 아래로 밀렸고,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피 시장에서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되며 투자심리 위축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 매도세는 환율 상승 압력을 키우는 요인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주식을 매도한 자금을 달러로 환전해 해외로 송금하면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전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3조4000억원을 순매도했으며 이날 오전에도 매도세를 이어갔다.
특히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글로벌 AI 투자심리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조다.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가 외국인 자금 이탈로 이어지면 달러화 자체가 약세를 보이더라도 원화 가치는 하락할 수 있다.
실제 이날 오전 9시 10분 기준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1.48로 전 거래일보다 0.07% 하락했다. 달러화가 전반적으로 약세를 나타내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은 상승하면서 국내 증시와 외환시장의 위험회피 심리가 두드러진 모습이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이번 환율 상승세가 장기간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이 지속되는 만큼 AI 산업과 반도체 투자에 대한 수요가 단기간에 크게 위축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중간선거 이후 위험회피 분위기 확산으로 인해 원화 약세 압력이 강해지는 중"이라며 "상하원 민주당 탈환으로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 건설 차질 우려 등이 불거지면서 반도체에 대한 투자심리가 악화된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한국은 AI·반도체 공급망에 깊숙이 연계돼 있기 때문에 이번 중간선거 여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반도체 투자심리 악화가 단기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양국의 관련 투자 수요가 유지된다면 국내 반도체 수출도 호조세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 등을 고려하면 AI 및 반도체 투자심리 악화는 단기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경우 한국의 반도체 수출 역시 호조세를 지속하면서 환율도 재차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의 예상 범위는 1290~1380원으로 제시했다. 현재 환율보다 낮은 1200원대 후반까지 내려갈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시장 불안이 지속될 경우 1300원대 후반까지 상승할 수 있는 변동성도 고려한 전망이다.
환율 하락을 뒷받침할 요인으로는 반도체 수출 호조에 따른 달러 공급 확대가 꼽힌다. 수출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달러 매도 물량이 유입되면 원·달러 환율에 하락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 외국인 주식 매도세가 장기화하거나 미국의 AI 규제 논의가 실제 투자 축소로 이어질 경우 원화 약세 압력이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수입업체의 달러 결제 수요와 해외투자 관련 달러 매수 역시 환율 하락을 제한하는 변수다.
연말까지 환율이 완만한 하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견조한 경상수지 흑자와 주요국 대비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장세가 원화 가치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환율 하단은 1320원 수준으로 제시해 추가 하락 폭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유정 하나은행 연구원은 "우리나라 경제의 견조한 경상수지 흑자기조와 주요국 대비 우위의 성장세 등 긍정적인 펀더멘탈의 지지를 받아 연말까지 완만한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에 따라 환율 하단은 1320원 수준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트럼프 정책의 불확실성, 연준의 추가 긴축 가능성, AI 투자심리 악화 등 상방 리스크가 상존해 있어 당분간 변동성 장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환율이 1300원대 초반까지 내려서기 위해서는 연준의 금리인상 사이클 마무리 시점과 외국인 자금 유입 시점 등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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