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과세 시행 두 달 앞…총선 표심 의식에 '유예론' 무게

  • 박지웅 기자
  • 입력: 2026.10.23 13:22 / 수정: 2026.10.23 13:22
세 차례 연기 끝에 내년 1월 시행 예정…네 번째 유예 가능성 부상
여야 신중론 확산에 정부도 기류 변화…연내 결론 전망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과세를 두고 여야 정치권에서 유예론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도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2028년 총선 표심을 의식한 네 번째 유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더팩트DB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과세를 두고 여야 정치권에서 유예론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도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서면서 2028년 총선 표심을 의식한 네 번째 유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더팩트DB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가상자산 과세가 또다시 유예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여야 정치권에서 과세 시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정부도 기존의 원칙적인 시행 입장에서 신중론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특히 2028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이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표심을 고려해 네 번째 유예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3일 정치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정부와 여야는 내년 1월 1일 예정된 가상자산 과세 시행 여부를 놓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당초 예정대로 과세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이었던 정부도 최근 과세 인프라와 시장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상자산 과세는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양도·대여로 발생한 연간 소득에서 250만원을 공제한 뒤 초과분에 22%(지방소득세 포함)의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당초 2022년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투자자 보호와 과세체계 미비 등을 이유로 세 차례 연기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과세 재검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지난 22일 당 유튜브 방송에서 가상자산 과세 문제를 올해 안에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는 시장 상황과 청년층의 의견, 과세 제도 준비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도 과세 시행 여부를 최종 점검하고 결론을 내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이미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당론으로 정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디지털자산 기본법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세부터 시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여러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디지털자산기본법에 대해서는 관계기관 간 협의를 조속히 마무리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이형일 부총리는 지난달 국회에서 현행법상 내년부터 과세가 예정돼 있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최근에는 전문가와 업계, 국회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판단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세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는 점도 유예론에 힘을 싣고 있다. 국내 거래소와 달리 해외 거래소나 탈중앙화거래소(DEX)를 통한 거래는 과세당국이 관련 정보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암호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가 내년부터 국내에 적용되지만 미국은 2029년 참여할 예정이어서 국가별 정보 확보 수준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스테이킹과 렌딩 등 다양한 거래 유형에 대한 과세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권대영 재정경제부 1차관은 지난 20일 가상자산 업계 및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열고 과세 시기와 제도적 준비 상황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업계에서는 과세자료 제출 시스템 구축과 검증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시행 시기 재검토를 요청했다.

정치권에서는 2028년 총선이 과세 유예 논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반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여야 모두 청년층의 조세 부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당 지도부까지 과세 재검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유예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2028년 총선을 고려하면 정치권이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표심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여야 모두 과세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만큼 사실상 추가 유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반복적인 과세 유예가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2일 국정감사에서 이미 법률로 확정된 과세 일정을 거듭 변경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과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가상자산 업계는 과세 시행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적 기반 마련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KDA)는 지난 22일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과 과세 인프라 구축 등을 이유로 시행 시기를 2029년으로 2년 추가 연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상자산 과세 시행 여부는 연말 세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여야의 신중론과 정부의 입장 변화가 맞물리면서 네 번째 유예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성후 KDA 회장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에 따라 가상자산 과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주식 수준의 투자자 보호가 가능한 디지털자산법과 과세 기준을 먼저 마련한 뒤 과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hris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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