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 개발실로 들어온 소비자들
"SNS서 검증된 레시피, 제품 실패 확률 낮춰"

[더팩트ㅣ유연석 기자] 소비자가 직접 만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던 조리법이 정식 제품으로 출시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존 제품을 자신의 취향대로 변형해 즐기는 '모디슈머(Modify+Consumer)'의 레시피를 식품·유통업체가 그대로 상품화하는 방식이다. SNS에서 이미 입소문을 타며 대중의 반응을 확인한 검증된 레시피인 만큼, 신제품 출시 시 초기 실패 확률을 낮추고 단숨에 흥행 궤도에 올릴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오는 27일 '감바스짜파게티'를 출시한다. 지난해 4월 진행한 소비자 참여 행사 '짜파게티 요리사 대회' 레시피 부문 1위작을 제품화했다. 올리브유에 마늘, 페페론치노, 새우를 넣는 감바스 조리법을 봉지면에 옮겨 새우맛볼과 올리브 맛 플레이크, 별첨 튀김 마늘을 넣었다.
SNS에선 이미 수많은 소비자가 직접 따라 하며 입소문을 탔다. 특히 가수 성시경이 지난달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해당 1등 레시피를 직접 조리해 맛본 뒤 "1등 할 만하다", "그냥 고급 파스타"라며 극찬한 영상이 화제를 모으면서 인스타그램과 숏폼 플랫폼을 중심으로 따라 하기 열풍이 거세게 번졌다. 농심은 이마트에서 먼저 판매를 시작한 뒤 유통 채널을 넓힐 계획이다.
농심은 앞서 12일 스낵 '너구링'도 내놨다. 양파링에 라면 너구리 시즈닝을 입힌 제품이다. SNS에서 양파링에 너구리 스프를, 포스틱에 신라면 스프를 넣고 흔들어 먹는 영상이 확산된 데서 착안했다. 올 1월에는 라볶이와 너구리를 결합한 '라뽁구리 큰사발면'을 선보였다.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 카구리(카레+너구리) 등 너구리를 활용한 조합이 꾸준히 인기를 끈 데 따른 것이다. 농심은 '신라면 툼바', '신라면 로제' 등도 소비자 조리법을 바탕으로 상품화한 바 있다.

공모전이나 오디션을 통해 소비자 아이디어를 아예 제품 기획 단계부터 직접 수혈받는 곳도 늘고 있다. 배스킨라빈스는 10월 '이달의 맛'으로 상품 개발 공모전 '그래이맛 콘테스트' 1·2위 수상작을 기반으로 한 '몬스터 크런치 쿠키'와 '말차에 바나나'를 내놨다. 올해 접수된 아이디어는 4만3000여건, 1·2차 소비자 투표에는 64만7752표가 몰렸다. 최종 순위는 소비자 100명과 내부 심사위원 15명이 함께 가렸다.
외식 프랜차이즈에서도 소비자를 메뉴 개발에 적극 참여시키고 있다. 굽네는 최근 신제품 '서울엄마 파기름떡볶이 치킨'을 활용한 '찰떡조합 오디션'을 시작했다. 소비자가 치즈나 떡 같은 토핑을 더하거나 별도 사이드 메뉴를 조합해 자신만의 먹는 방법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오는 18일까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틱톡, 네이버 블로그 등에 조합을 올리고 이벤트 페이지에 게시물 주소를 제출하면 된다.
굽네는 출품작 중 후보를 추린 뒤 공식 인스타그램 투표를 거쳐 1등을 선정하며,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조합은 실제 한정 메뉴로 출시된다. 이번 오디션의 바탕이 된 서울엄마 파기름떡볶이 치킨은 지난 9월 10일 출시된 메뉴로, 한식 요리 전문가 우정욱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수퍼판의 '한우 기름떡볶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매콤달콤한 양념과 대파 풍미를 오븐구이 치킨에 접목했다.

편의점과 외식업계에서도 모디슈머 제품의 완판 행진이 잇따르고 있다. GS25는 해외 SNS에서 화제를 모은 명동 길거리 음식 레시피를 결합한 '불닭치즈오믈렛김밥'이 출시 한 달 만에 누적 판매량 50만개를 돌파하며 3주간 김밥 카테고리 1위에 올랐다. 연예인이 유튜브에서 소개해 인기를 끈 맛집과 협업한 '날치알묵은지김밥' 역시 사전예약 1시간 만에 완판된 뒤 정식 출시 일주일 만에 10만개 판매를 넘어섰다.
팔도가 올 2월 출시한 '왕뚜껑 국물라볶이'는 기획 단계부터 토핑을 더해 먹는 방식을 겨냥했다. SNS에서 떡, 반숙란, 치즈 등을 더한 레시피가 퍼지면서 출시 4개월여 만에 누적 판매량 600만개를 넘겼다. 편의점 얼음컵에 박카스와 사이다를 섞어 마시던 '얼박사'는 동아제약이 GS25와 손잡고 캔 음료로 정식 출시해 1년 만에 3500만캔이 팔렸다. 외식업계에서는 써브웨이가 샐러드에 토르티야를 곁들여 먹는 고객 레시피를 반영해 '타코 샐러드'를 상시 메뉴로 돌렸다.
업계가 모디슈머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압도적인 온라인 화제성이 자리 잡고 있다. 농심이 인용한 뉴엔AI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짜파게티의 온라인 언급량은 약 13만4000건으로 국내 라면 브랜드 중 가장 많았다. 농심은 짜파게티 자체에 대한 관심과 소비자 레시피가 브랜드 화제성을 이어가는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모디슈머 레시피의 시초로 꼽히는 짜파구리가 유행하던 2013년 2월에는 짜파게티와 너구리 매출이 각각 전주 대비 30%가량 늘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꿀조합'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20만5000개를 넘는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경기 불황과 소비 위축으로 신제품 출시에 따른 마케팅 부담과 리스크가 커진 상황에서,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맛과 흥행성이 검증된 레시피는 초기 실패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춰주는 가장 확실한 카드"라며 "소비자가 메뉴 개발과 평가 과정에 직접 개입하면서 브랜드에 대한 몰입도와 팬덤이 더욱 끈끈해지는 락인(Lock-in)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ccbb@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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