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24시간 거래·T+1 '속도전'…증권가 "안전은 뒷전" 비판
  • 박지웅 기자
  • 입력: 2026.09.30 11:49 / 수정: 2026.09.30 11:49
애프터마켓 이어 거래시간 확대…결제주기도 하루 단축 추진
증권노조 반발·해외 기관도 "충분한 테스트·단계적 도입 필요"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28일 오전 서울 중구 더그랜드롯데 서울에서 열린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 2026 개막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28일 오전 서울 중구 더그랜드롯데 서울에서 열린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 2026' 개막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박지웅 기자]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24시간 주식 거래와 결제주기 단축(T+1)을 앞세워 자본시장 인프라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의 국내 증시 접근성을 높이고 거래 환경을 선진화하겠다는 취지지만 증권업계 안팎에서는 속도보다 시스템 안정성과 시장 참여자의 준비가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 이사장은 지난 28일 열린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 2026'에서 "이달 아시아 거래소 처음으로 정규장 이후 애프터마켓을 개설했다"며 "향후 이를 24시간 거래 체계로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한편, 주식 결제주기 단축(T+2→T+1)도 아시아 역내 거래소들과 함께 추진해 선진 거래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거래소는 이달 정규장 종료 이후 주식을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는 애프터마켓을 개설했다. 향후 거래시간을 단계적으로 늘려 24시간 거래 체계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결제주기 역시 현재 매매일로부터 이틀 뒤 결제하는 T+2에서 하루 뒤 결제하는 T+1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증권업계 노동계에서는 거래시간 확대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올해 초 한국거래소 서울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고 거래시간 연장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노조는 거래소가 내세우는 '글로벌 표준'과 '투자자 편의'라는 명분부터 문제 삼았다. 지난해 출범한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가 오전 8시부터 거래를 시작하고 애프터마켓까지 운영하면서 거래소가 빼앗긴 거래 수요를 되찾기 위해 거래시간 확대에 나선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미국과 달리 단일 시간대를 사용하는 국내 시장에서 이른 아침까지 거래시간을 확대할 필요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내놨다. 거래시간만 늘릴 경우 한정된 유동성이 여러 시간대로 분산돼 거래가 적은 시간대의 호가 공백이 커지고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다.

증권사와 유관기관의 부담도 쟁점이다. 주식 거래가 사실상 하루 종일 이어지면 증권사뿐 아니라 거래소와 예탁결제원 등의 전산·시장감시·장애대응 체계도 장시간 가동해야 한다. 투자자 편의를 위해 거래시간을 늘리는 과정에서 비용과 인력 부담은 금융투자업계 전반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노조는 "거래소의 거래시간 연장 계획은 한정된 유동성을 무리하게 새벽 시간으로 분산시켜 호가 공백을 초래하고 시세 조정의 위험을 키울 수 있다"며 "준비되지 않은 거래시간 연장안을 폐기하고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위한 고민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무금융노조가 지난 1월 22일 한국거래소 앞에서 거래소의 거래시간 연장을 정은보 이사장의 임기 말 치적용 졸속 정책으로 규정하며 정책 철회와 퇴진 투쟁을 선언하고 있다./박지웅 기자
사무금융노조가 지난 1월 22일 한국거래소 앞에서 거래소의 거래시간 연장을 정은보 이사장의 임기 말 치적용 졸속 정책으로 규정하며 정책 철회와 퇴진 투쟁을 선언하고 있다./박지웅 기자

T+1 전환을 놓고도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 충분한 준비와 단계적 도입을 주문했다. 결제주기를 하루 단축하면 결제 위험을 낮추고 결제 과정에 묶이는 자금을 줄일 수 있지만 거래 확인과 자금 조달, 증권 인도 등 사후 업무를 지금보다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 투자자는 국내 투자자보다 대응 시간이 촉박할 수 있다. 시차가 있는 데다 원화 조달과 외환(FX) 결제, 수탁기관과 브로커 등 여러 중개 단계를 거쳐야 해 결제시간이 하루 줄어들 경우 운영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티모시 커디히 미국 증권예탁결제원(DTCC)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는 지난 29일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에서 한국의 T+1 전환과 관련해 "올바른 목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속도(safe speed)'"라고 강조했다.

그는 평상시뿐 아니라 거래량이 급증하거나 시장에 충격이 발생한 경우, 원화 조달이나 외환결제가 지연됐을 때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사전에 시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도 시행 이후에도 결제 실패와 유동성 압력, 운영상 병목 등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GIC도 T+1 전환 방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단계적인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웬 추아 GIC 아시아 주식 트레이딩 총괄은 거래소와 규제당국, 수탁기관, 브로커, 투자자 등 시장 참여자들이 결제 절차 전반을 충분히 시험해야 한다며 "모두가 변화에 적응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단계적으로 도입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콩거래소 역시 결제시스템만 바꿔서는 부족하다고 봤다. 증권 결제와 실제 대금이 오가는 외환·지급결제 시스템이 별도로 움직이는 만큼 두 체계가 함께 개선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ETF와 증권대차 등 일반 주식보다 거래·결제 구조가 복잡한 분야 역시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24시간 거래와 T+1 모두 제도 도입의 속도보다 이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시장 인프라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거래시간이 길어질수록 시장감시와 장애 대응 부담은 커지고, 결제주기가 짧아질수록 증권사와 수탁기관, 외환시장 등 시장 참여자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드는 만큼 충분한 사전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거래시간 연장이 단순히 거래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주는 것뿐 아니라 시장이 신뢰와 안정성을 바탕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때에야 비로소 거래시간 연장의 의미가 긍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hris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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