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지급 기한 단축에…유통업계, 자금 부담·발주 축소 우려
  • 이윤경 기자
  • 입력: 2026.09.16 14:28 / 수정: 2026.09.16 14:28
본회의 의결 앞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직매입 60일→35일
납품업체 자금 유동성 개선 취지…유통업계 자금 부담 우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소비자가 야채를 살펴보고 있다. /더팩트 DB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소비자가 야채를 살펴보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이윤경 기자] 납품대금 지급기한을 단축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둔 가운데 업계 부담이 커지고 있다. 납품업체의 자금 유동성 개선이 취지지만, 일률적인 기한 단축이 유통업체의 자금 부담과 발주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은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직매입 거래의 납품대금 지급기한을 상품 수령일로부터 현행 60일에서 35일로 단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약매입·위수탁·매장임대 거래의 경우 월 판매마감일로부터 40일에서 20일로 줄인다. 직매입 거래에서 월 1회 정산하는 경우에는 월 구매마감일로부터 20일 이내에 대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번 개정 논의의 배경에는 2024년 발생한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가 있다. 공정위는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의 재발을 막고 납품업체의 자금 유동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실제 대규모유통업체의 평균 지급기간은 현행 법정 한도보다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가 지난해 11개 업태 132개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대금 지급 관련 서면 실태조사' 결과 평균 지급기간은 직매입 27.8일, 특약매입 23.2일, 위·수탁 21.3일, 매장임대 20.4일로 집계됐다.

다만 직매입은 정산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월 1회 정산 업체의 평균 지급기간은 33.7일, 수시·다회 정산 업체는 20.9일이었다. 수시·다회 정산 업체 중 62곳은 30일 이내 대금을 지급했지만, 9곳은 평균 53.2일이 지나 대금을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일부 업체가 법정 한도에 가까운 시점까지 대금을 지급하는 점 등을 고려해 지급기한 자체를 단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유통업계에서는 직매입 거래의 특성과 업체별 정산 방식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소비자가 장을 보고 있다. /뉴시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소비자가 장을 보고 있다. /뉴시스

업계에서는 지급기한 단축으로 유통업체의 운전자금 부담이 커질 경우 발주 규모나 상품 운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판매량이 검증되지 않은 신규·중소 브랜드보다 회전율이 높은 상품을 중심으로 매입이 이뤄질 경우 납품업체의 대금 회수 기간은 짧아지더라도 거래 기회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납품업체의 원활한 자금 운용을 지원한다는 제도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업체별 거래 방식과 정산 조건 등이 다양한 만큼,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모두의 안정적인 거래가 유지될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와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대금 회수 시점이 빨라지는 대신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는 "정산 주기를 20일로 단축했을 때 평균 74% 업체만 생존할 것으로 나타났고 대형·중소업체간 양극화 지수는 2.4배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현장의 중소 납품업체들에게는 당장의 지급기한 며칠 단축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발주물량 확보가 생존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반면 빠른 대금 지급 자체가 자금 운용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도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대규모유통업체와 거래하는 소상공인에게 판매대금은 다음 상품을 매입하고, 임대료와 인건비를 지급하며 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사실상의 운전자금"이라며 "자금 여력이 부족한 소상공인일수록 정산이 하루 늦어지는 것은 곧 경영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일률적인 지급기한 설정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상품과 거래 구조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형구 한양대학교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신선식품 등 상품마다 특성이 다르고 밸류체인의 길이도 제각각인 만큼,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정산 기간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금을 받은 사람이 빨리 받으면 좋겠지만 이후 환불 등 여러 절차가 발생할 수 있고 중간 단계에서 현금이 이동하고 정산되는 과정에도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며 "정부가 규제로 일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상품 특성과 거래 구조, 경쟁 환경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다양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방향이 유통 생태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bsom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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