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톡스, 대웅제약에 손배 청구 5000억으로 확대…'보톡스 전쟁' 격화
  • 조성은 기자
  • 입력: 2026.09.07 17:20 / 수정: 2026.09.07 17:21
균주·제조공정 영업비밀 소송…항소심서 청구액 10배 늘려
나보타 누적 매출 1조 돌파…손해액 산정 놓고 공방 예상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지난 2017년부터 보톨리눔 톡신 균주 출처를 둘러싼 공방을 벌여왔다. 현재 메디톡스는 메디톡신(사진 왼쪽)을, 대웅제약은 나보타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각사 제공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지난 2017년부터 보톨리눔 톡신 균주 출처를 둘러싼 공방을 벌여왔다. 현재 메디톡스는 '메디톡신'(사진 왼쪽)을, 대웅제약은 '나보타'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각사 제공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모툴리눔 톡신 균주 및 제조공정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격화하고 있다. 9년째 이어지고 있는 국내 민사소송 항소심에서 메디톡스가 손해배상 청구액을 5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10배 늘리면서다. 양측이 균주 출처와 제조공정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놓고 맞서온 데 이어 손해액 규모까지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메디톡스는 최근 서울고등법원 민사5-3부에 영업비밀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과 관련해 청구취지 및 청구원인 변경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대웅제약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기존 5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확대됐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 지주사인 대웅에 대해서도 대웅제약과 공동으로 10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메디톡스가 제시한 5000억원의 소송가액은 대웅제약의 지난해 연결 기준 자기자본의 약 44.08%에 육박하는 거액이다.

양사의 분쟁은 2017년 본격화됐다. 메디톡스는 자사 전 직원이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 영업비밀을 대웅제약에 유출해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를 개발했다며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대웅제약은 나보타에 사용한 균주를 국내 토양에서 자체적으로 분리했으며 메디톡스의 균주나 제조기술을 도용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23년 2월 1심 재판부는 메디톡스의 손을 들어주며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웅제약에는 400억원의 배상 및 균주 인도, 관련 제품 폐기와 제조·판매 금지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당시 대웅제약이 개발공정 수립 과정에서 메디톡스의 생산 개별 공정 관련 영업비밀 정보를 취득·사용해 개발기간을 단축했다고 판단했다. 이후 양측 모두 불복해 서울고법에서 2심 재판이 진행돼 왔다. 대웅제약이 신청한 1심 판결의 강제집행정지도 받아들여지면서 1심 판결에 따른 가집행은 항소심 선고 때까지 정지된 상태다.

2017년 소송 제기 당시 11억원이던 청구액은 2022년 500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이번에 5000억원으로 재차 대폭 상향됐다. 메디톡스 측은 청구액 확대 배경에 대해 "항소심 과정에서 추가로 확인된 2025년 7월31일까지의 대웅제약 나보타 판매수량과 매출액, 소송 장기화로 늘어난 손해 산정 기간, 부정경쟁방지법상 증액배상(징벌적 손해배상) 규정 등을 종합 반영해 손해액을 현실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부정경쟁방지법은 2019년 7월부터 고의적인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할 수 있도록 했으며, 2024년 8월부터는 그 한도가 5배로 확대됐다. 다만 해당 규정이 이번 사건의 손해액에 어느 범위까지 적용될지는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

특히 메디톡스는 이번 5000억원이 '명시적 일부청구'라고 강조했다. 2025년 8월1일 이후 발생한 손해 등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으로, 법원 심리 경과에 따라 최종 청구액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청구액 확대와 관련해 메디톡스 관계자는 "영업비밀 건과 관련된 사안으로 상세히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웅제약은 즉각 반발하며 이번 청구액 확대가 확정된 배상액이 아니라 메디톡스가 법원에 제기한 일방적인 청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회사의 재무건전성과는 무관하며 현재 사업에 미치는 영향도 없다는 입장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이번 금액 변경은 상대방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며, 확정된 배상액이 아니다"라며 "주요 글로벌 파트너사와의 사업은 이미 별도 합의를 통해 법적 리스크가 해소됐고, 형사 소송에서도 무혐의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구액을 부풀려 법정 밖 여론에 호소하는 방식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며, 주주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양사의 분쟁은 국내 소송에 그치지 않았다. 메디톡스와 당시 파트너사였던 앨러간은 2019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대웅제약과 미국 판매사 에볼루스를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를 주장하며 제소했다. ITC는 2020년 제조공정 관련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고 나보타에 대한 21개월의 제한적 수입배제명령을 내렸다. 이후 메디톡스와 앨러간은 2021년 에볼루스와 합의했고 같은 해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의 미국 치료용 보툴리눔 톡신 사업과 관련해 미국 파트너사와도 합의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의 나보타 사업은 계속됐다.

반면 국내 민사소송은 1심 판결 이후에도 항소심이 이어지면서 양측의 법정 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검찰이 2022년 대웅제약 측의 관련 혐의를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지만 메디톡스의 항고로 재수사 명령이 내려진 만큼 형사 절차 역시 별도의 변수가 남아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배상액 청구 증액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대웅제약 '나보타'의 가파른 매출 성장을 꼽는다. 나보타의 누적 매출은 1조원을 돌파했으며, 미국 미용 톡신 시장 점유율 2위(약 13%)에 올랐다. 올해 상반기 나보타 매출만 1553억원을 기록해 대웅제약 전체 매출의 21.1%를 차지하는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메디톡스는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소송 관련 비용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소송 관련 법무비용은 약 308억원으로 추정된다.

청구액이 늘었다고 해서 메디톡스의 승소 가능성이나 최종 배상액이 그만큼 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서 1심에서도 메디톡스가 청구한 금액 전부가 인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원고가 항소심에서 인지대와 변호사 선임비용 부담을 무릅쓰고 소가를 10배 늘린 것은 재판 과정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입증 자신감을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청구액 증액에 따른 법원의 적정성 심리가 추가되면서, 소송 기간이 예상보다 더 연장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청구액은 원고가 법원에 요구하는 금액인 만큼 실제 배상 책임과 손해액은 재판부가 침해 사실과 손해 발생 여부, 인과관계 및 손해 산정 근거 등을 심리해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오는 17일 오후 영업비밀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의 변론기일을 개최한다. 메디톡스가 5000억원으로 청구액을 확대한 이후 처음 열리는 변론이다. 이 때문에 손해액 산정 근거와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둘러싼 양측의 법정 공방이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톡신이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입지를 넓히는 상황"이라며 "소송의 장기화로 산업 자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p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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