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균 발행은 18.8조→18.6조 '제자리'

[더팩트|윤정원 기자] 정부가 내년 국고채 순증 규모를 올해보다 13조원 넘게 줄인다. 채권시장에는 반가운 소식처럼 보이지만 증권가의 평가는 기대만큼 밝지 않다. 순증은 줄어도 시장이 매달 소화해야 할 전체 국채 물량은 사실상 올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 821조 쓰는데 국채 순증은 13조↓…세수 호황 덕봤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전날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에서 내년 국고채 총발행 규모는 222조8000억원으로 계획됐다. 올해 225조7000억원보다 2조9000억원(1.3%) 줄어든다. 국고채 잔액을 새로 늘리는 순증 규모는 올해 109조4000억원에서 내년 96조3000억원으로 13조1000억원(12.0%) 감소한다.
내년 총지출은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93조원(12.8%) 늘어난다. 역대 최대 증가율로 지출을 확대하면서도 신규 국채 공급은 줄이는 예산을 짠 셈이다. 정부가 예상한 내년 총수입은 880조8000억원, 국세수입은 584조4000억원이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소득세 증가 등이 세입 여력을 키웠다.
정부는 최근 10년 내국세 추세선을 웃도는 추가 세수 162조3000억원을 활용해 미래대응기금도 신설한다. 이 가운데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 쓰인다. 지출을 90조원 넘게 늘리면서도 순증 물량을 낮출 수 있었던 배경이다.
국채 순증 감소 자체는 채권시장 수급에 긍정적이다. 만기가 돌아온 국채를 다시 발행하는 차환분과 달리 순증은 국가채무를 새로 늘리며 시장에 추가되는 물량이다. 순증이 줄면 투자자가 새롭게 흡수해야 하는 국채 부담도 낮아진다.
문제는 전체 발행량이다. 내년 만기상환과 시장조성을 위한 발행 규모는 126조6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0조원 넘게 늘어난다. 특히 만기상환용 발행은 올해 90조5000억원에서 내년 110조7000억원으로 20조2000억원 급증한다. 과거 발행한 국채의 만기가 대거 돌아오면서 순증 감소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총발행액은 올해보다 2조9000억원 감소하는 데 그친다. 국채 잔액을 늘리는 속도는 낮아지지만 실제 채권시장에서 입찰을 통해 소화해야 할 물량에는 큰 변화가 없는 셈이다.
◆ 순증 줄어도 월 18.6조 발행…WGBI·초장기물 수요가 변수
이날 iM증권이 내놓은 '27년 예산안: 96조원의 안도, 223조원의 현실' 보고서에서도 이런 괴리가 지적됐다. iM증권에 따르면 월평균 국고채 총발행 규모는 올해 약 18조8000억원에서 내년 약 18조6000억원으로 2000억원 줄어드는 데 그친다. 연간 순증은 12% 감소하지만 시장이 매달 받아내야 하는 전체 물량은 사실상 제자리인 셈이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순증 96조3000억원은 절대적으로 작은 규모가 아니다"라고 짚었다. 전년보다 공급 부담이 낮아진 것은 맞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여전히 많은 물량이라는 평가다.
만기상환 물량이 많다고 해서 전부 공급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채를 상환받은 투자자가 다시 국채를 사들이면 상당 부분 재투자될 수 있다. 다만 외국인이나 보험사, 은행이 돌려받은 자금을 같은 만기의 국채에 다시 넣는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투자자가 어느 만기의 국채를 다시 사느냐에 따라 특정 구간의 수급 부담이 달라질 수 있다.
국채를 받아줄 외국인 자금도 예상보다 더디게 들어오고 있다.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전에는 한국의 편입 비중과 글로벌 추종자금을 고려해 4~11월 70조~90조원가량이 국내 국고채로 유입될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지난 3월 말부터 8월 말까지 외국인의 국고채 순매수는 41조원, 만기상환을 제외한 실제 보유 증가액은 33조4000억원에 그쳤다. 8월 말까지 기대됐던 46조9000억원의 71% 수준이다.
LS증권도 외국인 수요를 낙관하기 어렵다고 봤다. 우혜영 LS증권 연구원은 "지수 추종 패시브 자금이 11월까지 들어오겠지만" 액티브 자금은 금리와 환율,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때문에 제한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4분기 중반부터는 장기물 금리가 다시 튈 리스크가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수급 부담이 집중되는 곳은 장기·초장기물이다. 보험사의 초장기 국채 수요가 과거보다 약해진 상황에서 20·30·50년물 공급이 충분히 줄지 않으면 순증 감소 효과가 장기채 시장까지 고르게 퍼지기 어렵다.
정부 역시 이 부분은 조정 가능성을 열어놨다. 현재 20·30·50년물 등 초장기물은 전체 국고채 발행의 35±5% 수준을 차지한다. 재정경제부는 최근 보험사 수급 여건과 장기금리 상승 등을 감안해 내년 만기별 발행 비중을 조정할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LS증권 역시 전날 예산안 분석에서 세수가 크게 늘었는데도 전체 국고채 발행액이 2조9000억원 감소하는 데 그친 점을 추가 금리 상승 압력으로 평가했다.
구체적인 만기별 물량은 오는 12월 발표되는 연간 국고채 발행계획에서 결정된다. 김 연구원은 "20·30·50년물 비중을 낮추면 초장기물 공급은 10조~20조원 이상 줄어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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