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개편 과정 무력감 느껴"…11번가 숨진 직원의 복잡한 심경
  • 손원태 기자
  • 입력: 2026.07.29 10:44 / 수정: 2026.07.29 10:44
직원 A씨 "TF 인사 발령 납득하기 어렵다"
11번가 "당시 고인 휴가 중…전화로 설명"
노사 합동 진상조사 꾸려…산재 절차 지원
SK스퀘어의 커머스 자회사 11번가에서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인은 생전 회사에 남긴 마지막 이메일에서 깊은 애사심을 표하는 동시에, 이번 조직 개편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복잡한 심경을 호소했다. /더팩트 DB
SK스퀘어의 커머스 자회사 11번가에서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인은 생전 회사에 남긴 마지막 이메일에서 깊은 애사심을 표하는 동시에, 이번 조직 개편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복잡한 심경을 호소했다. /더팩트 DB

[더팩트 | 손원태 기자] 역성장으로 경영 위기에 처한 SK스퀘어의 커머스 자회사 11번가에서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인은 생전 회사에 남긴 이메일에서 깊은 애사심을 표하는 동시에, 갑작스러운 조직 개편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심경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는 이메일이 회사 전체가 아닌 동료 몇 명에게만 발송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마지막 유언이 된 메일'이라는 글이 올랐다. 해당 메일을 남긴 직원 A씨는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현재 11번가는 노조와 함께 합동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경위 파악에 나섰다.

A씨는 블라인드 게시글을 통해 "(11번가의)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태스크포스(TF) 조직으로 발령받은 구성원 중 한 사람"이라며 "메일은 제 개인의 발령을 되돌려 달라는 요청도 특정 개인의 책임을 묻기 위한 글도 아니다"라고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이어 "회사는 어려운 경영환경 속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며 "생존을 위해 때로는 구성원 모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직 개편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나, 이번 조직 개편은 일반적인 부서 이동과는 무게가 다르다"고 운을 뗐다.

A씨는 "많은 구성원들이 이번 TF 발령을 단순 조직 이동이 아니라, 앞으로 고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결정으로 받아들인다"라며 "그렇게 인식되는 사실 자체가 이번 조직 개편이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큰 불안으로 다가왔는지 보여준다"고 토로했다.

A씨는 11번가에서 MD(상품기획자)로 근무하며, 최근 3년간 인사 평가도 'S'·'S'·'A' 최고 수준의 등급을 받아 전사 우수 MD 후보에도 7차례 이름을 올렸다고 남겼다.

그러면서 A씨는 "그간 많은 역할에서 성과를 내 최선을 다했으며, 회사에 충분히 기여했다고 믿었다"며 "성과가 부족해서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이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다만 11번가는 이달 10일 진행한 타운홀미팅에서 조직 개편 방향을 구성원에 공유했다는 입장이다. 이어 발령 대상 구성원을 상대로 면담과 같은 사전 커뮤니케이션도 거쳤다고 설명했다.

11번가는 최근 의사결정 단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7월 전사 조직 개편을 단행했고, 그 결과 여러 TF를 운영하는 상황이다. 조직 개편 과정에서 일부 업무들이 TF로 이관됐고, A씨 역시 기존 팀에서 수행하던 업무를 통합지원 TF로 옮겨졌다고 부연했다.

11번가 측은 "고인은 7월 6일부터 휴가중으로 대면 면담 진행이 어려워 메일과 전화통화로 내용을 안내했다"며 "부서장과 메일이 여러 번 오갔고, 차상위 임원과도 메일과 전화통화했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조직 개편과 인사 발령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고인이 된 직원 A씨가 11번가 블라인드에 회사가 개선했으면 하는 세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발령에 앞서 최소한의 설명과 구성원 의견 수렴 절차, 충분한 면담 등을 요구했다. /블라인드 캡처
조직 개편과 인사 발령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고인이 된 직원 A씨가 11번가 블라인드에 회사가 개선했으면 하는 세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발령에 앞서 최소한의 설명과 구성원 의견 수렴 절차, 충분한 면담 등을 요구했다. /블라인드 캡처

하지만 A씨는 회사의 조직 개편과 인사 발령 기준에 대해 의문점을 놓지 못했다. 그간 성과를 위해 노력한 시간이 어떻게 평가받은 것인지, 앞으로 어떤 기준으로 근무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과연 공정했는지에 대해 상실감을 털어놨다.

회사 측에는 △발령 기준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 △구성원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절차 △충분한 면담과 소명 과정 등 세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첫 번째는 "세부 기준을 공개하기 어렵더라도 어떤 요소가 반영되었는지 구성원들에 설명돼야 혼란이 줄었을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조직 개편이 최종 결정되기 전이나 직후라도 구성원 자신이 경력과 전문성, 희망 직무 등을 이야기하고 검토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썼다.

마지막으로 "이메일 한 통으로 (인사 발령) 통보되는 방식은 구성원에게 너무 큰 상실감과 무력감을 준다"며 "결과가 달라지지 않더라도 충분한 설명과 대화는 회사를 신뢰하는 데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A씨는 "앞으로도 회사는 여러 번의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며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메일이 아니라 회사를 아끼는 마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11번가는 지난 2023년 실적 최대치인 연 매출 8656억원을 달성한 후 3년 연속으로 역성장을 걷고 있다. 지난해 연 매출도 4376억원에 그치며, 2년 새 절반 가까이 축소됐다. 올해 1분기 매출도 전년 동 기간 대비 18.3% 감소한 931억원에 머물렀다.

이에 11번가는 이달 초 희망퇴직을 단행하며,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올해 1분기 기준 11번가의 영업손실은 78억원을 기록했다. 희망퇴직은 근속연수 2년 이상 구성원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근속연수에 따라 최대 10개월분의 급여를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11번가는 A씨 사망 사고 관련해 구체적인 경위와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노사 합동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 상태다. 유족 측 요구에 따라 산업재해 절차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11번가 측은 "해당 발령은 이메일로만 통보한 것이 아니라 설명회, 면담 등 충분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거쳤으며 관련 내용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제출해 확인 중에 있다"며 "현재 굉장히 당혹스럽고 안타깝다. 회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과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tellm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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