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송다영 기자] 국내 방산기업들이 중남미 시장 공략을 위해 페루를 주목하고 있다. 현지 생산과 기술이전(TOT), 유지·보수(MRO)를 결합한 장기 협력 모델 구축 등을 통해 단순 무기 수출을 넘어 현지 방산 생태계와 협력하는 방식으로 중남미 시장 진출 기반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페루는 최근 노후화된 군 전력을 교체하고 국방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육·해·공군 전반에 걸친 현대화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남미 지역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안보 환경을 유지하고 있지만 주변국과의 전력 균형 유지, 국경 통제, 마약 밀매 등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공군은 현대화 사업의 핵심 분야로 현재 운용 중인 미라주 2000, MiG-29 등 노후 전투기의 교체를 위해 20~24대 규모의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수송기와 헬기 전력 보강, 항공정비(MRO) 역량 확대도 병행하고 있다. 해군은 잠수함과 수상함 전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 함정의 성능 개량과 함께 신규 호위함, 상륙함, 해상초계 능력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육군도 노후 장갑차와 기동장비 교체, 포병 전력 보강, 지휘통제체계(C4I) 현대화 등을 추진하며 기동성과 작전 수행 능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페루는 해외 기업에 단순 장비 구매를 넘어선 기술이전, 공동생산, 현지 생산을 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국 국영 조선소(SIMA), 육군 장비 생산기업(FAME), 항공 정비기업(SEMAN) 등 자체 방산 생산기반을 갖추고 있어 자국 기업들을 육성하고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한다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방산기업들은 완제품 판매보다 현지 생산과 기술이전, 유지·보수를 결합한 장기 협력 모델을 제안하며 페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앞서 성과를 낸 곳은 HD현대중공업이다. HD현대중공업은 2024년 페루 국영 시마 조선소와 협력해 페루 해군 현대화 사업에서 3400t급 호위함 1척과 2200t급 원해경비함 1척, 1500t급 상륙함 2척 등 함정 4척을 약 6400억원에 수주했다. 이는 완성 함정을 수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에서 함정을 함께 건조하는 사업으로, 설계와 핵심 기술을 제공하는 형태다.
LIG D&A는 최근 페루 리마에 중남미 대표사무소를 개소하고 현지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기존 콜롬비아 사무소와 함께 급성장하는 중남미 지역 방산 수요에 신속대응하기 위함이다. LIG D&A는 지난 2024년 11월 페루 해군 3400t급 호위함과 2200t급 원해경비함에 탑재할 전투체계, 전자전, 데이터링크 등의 함정용 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대로템도 페루를 중남미 지상무기 시장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있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말 페루 국영 방산기업 파메(FAME)와 협력해 K2 전차 54대와 차륜형 장갑차(K-808) 141대를 공급하는 기본계약을 맺고 본계약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중 K2 전차 세 대와 K808 차륜형 장갑차 6대는 오는 28일부터 이틀간 수도 리마에서 열리는 독립기념일 군사 퍼레이드에 전시될 예정으로, 페루 수출용으로 도색·개조된 K2 전차가 페루 정부 공식 행사에 등장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로템은 향후 현지 조립과 생산시설 구축을 통해 중남미 국가를 대상으로 한 수출 확대도 기대하고 있다.
KAI는 항공 분야에서 페루 국영 항공정비기업 세만(SEMAN)과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KAI는 지난 2024년 7월 세만과 다목적 전투기 FA-50의 부품 공동생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이를 기반으로 페루 공군이 추진 중인 20~24대 규모의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 수주를 노리는 한편, 향후 FA-50 추가 수출과 KF-21 등 차세대 항공기 협력으로까지 사업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국내 방산업계는 페루를 중남미 교두보로 주목하고 있다. 페루의 수주 성공 사례에 이어 방산 수요가 꾸준한 칠레와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 주변 국가로 협력 모델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페루는 단순한 수출 대상국이 아니라 중남미 방산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라며 "페루 시장 진출을 계기로 국내 방산업계가 중남미 시장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진출하겠다는 의지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