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국내 시가총액 2위 SK하이닉스가 미국 나스닥에 주식예탁증서(ADR)로 상장한 가운데, 삼성전자도 같은 방식으로 미국에 상장할 것이라는 풍문이 외신을 통해 제기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관련 내용을 즉각 부인했으나, 국내 증시의 중심축인 두 대형주의 이탈 가능성이 거론된 것만으로도 시장 참여자들의 긴장감은 높아지는 분위기다.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미국 시장 내 ADR 발행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글로벌 투자은행들과 예비 논의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주관사 선정이나 구체적인 계획 수립 전 단계의 초기 검토 수준이지만, 앞서 SK하이닉스가 미국 나스닥에 ADR을 성공적으로 상장시키며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선례가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삼성전자 선을 그은 상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ADR 상장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공식으로 부인하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회사 측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국내 주식시장 투자자들은 이번 상장설을 단순한 풍문으로만 치부하지 않는 분위기다. SK하이닉스의 미국행 성공 사례를 직접 목격한 상황에서, 향후 삼성전자마저 거래 축을 넓힐 경우 국내 자본시장에 미칠 파급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긴장하는 지점은 외인의 자금 이탈과 분산이다. 코스피 '대장주'인 삼성전자마저 미국 증시로 거래 축을 다변화할 경우,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이 코스피 대신 미국 ADR 시장으로 직접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최근 외인의 연이은 순매도세로 6000~7000선에서 주춤하고 있는 코스피의 상대적 부진으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대형주의 외인 수급이 미국으로 분산되면 국내 증시 전체의 하방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글로벌 밸류에이션(가치 평가) 재평가를 기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국 증시에 묶여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국내 대형주가 엔비디아, TSMC 등 글로벌 빅테크들과 미국 시장에서 직접 경쟁해 평가받는다면 오히려 주가 상단이 열릴 수 있어서다. SK하이닉스 ADR이 나스닥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13% 상승 마감하는 등 미국 시장에서 본주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전례도 투자자들 사이에서 기대를 키우는 요인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두 기업의 자금 상황과 사업 환경이 근본적으로 다른 만큼, 당장 삼성전자가 미국행에 나설 실익은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투자 확대를 위해 대규모 자금 조달이 시급했으나, 삼성전자는 풍부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해 자체 투자 여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인공지능(AI) 반도체뿐만 아니라 가전, 스마트폰 등 포트폴리오가 방대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까다로운 공시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미국 상장설은) 회사 측 부인으로 당장은 해프닝에 그칠 가능성이 크지만,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진짜 이유는 미국 시장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이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현상을 목격했기 때문"이라며 "실제 상장 여부와 무관하게 미국 ADR과 국내 본주 간 가격 괴리와 수급 이동을 주시하며 투자처를 저울질하는 투자자들의 눈치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