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체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거 단순 사회공헌 활동 소개에 그쳤던 보고서 내용은 이제 기후변화 대응은 물론 '생물다양성 보전'과 업계 특성을 살린 '필수의약품 공급망 확보' 등으로까지 의제가 대폭 확장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국제 공시 기준에 맞춘 ESG 역량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셀트리온제약, 알테오젠, 광동제약 등 주요 기업들이 올해 처음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며 ESG 정보 공개 대열에 합류했다. 기존에 보고서를 발간해 오던 기업들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공시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눈에 띄는 흐름은 국제 공시 체계의 적극적인 도입이다. 셀트리온과 녹십자홀딩스(GC) 등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및 유럽지속가능성보고기준(ESRS) 등의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반영했다.
특히 알테오젠과 GC 등은 재무적 가치와 환경·사회적 영향을 동시에 고려하는 '이중 중요성(Double Materiality) 평가'를 도입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한발 더 나아가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TNFD)' 프레임워크를 적용, 기후변화뿐 아니라 자연자본과 생물다양성 관리 체계까지 경영 전략에 반영했다.
친환경 성과도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친환경 포장재 전환율 81%, 폐기물 재활용률 71% 달성 성과를 수치화해 공개했으며, 한독은 에너지 전환 투자를 통해 사업장 내 태양광 설비를 전면 가동 중이다. 동아쏘시오홀딩스 등 주요 지주사들은 개별 회사를 넘어 그룹 전반의 ESG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까지 구축해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올해 보고서들의 가장 큰 특징은 환경 의제가 단순 탄소 배출 감축을 넘어 '생물다양성 보전'으로 넓어졌다는 점이다.
유한양행은 청주 오창공장을 중심으로 미호강의 토종 생물 서식지 복원에 나섰고, 계룡산 국립공원의 생태다양성 보전을 위한 자연환경 복원기금도 후원 중이다. 보령은 충남 예산군과 함께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황새의 둥지탑을 세우고, 서식지 인근 폐기물을 수거하는 등 황새 복원 사업에 팔을 걷어붙였다.
셀트리온은 인천 영종도 일대에서 사업장 유리창 등에 새가 부딪히는 것을 막기 위해 전년보다 2.6배 넓은 면적에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부착하는 등 야생 조류 보호에 나섰다.
특히 한미약품은 제약업 특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환경 리스크 관리를 내세웠다. 항생제를 제조하는 공장의 폐수 생태 위해성을 평가하고, 하천 생태계에 유해 위험이 없는 예측무영향농도(PNEC) 기준치 이하로 수질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성과로 제시했다.
제약바이오 산업 고유의 특성을 살린 '의약품 접근성 확대'가 핵심 사회 부문 의제로 자리매김한 것도 특징이다.
유한양행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노숙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 환자들이 에이즈(HIV)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20년 넘게 치료제를 지원하고 있다. 보령은 국가 필수약인 경구용 페니실린 항생제의 생산 시설을 증축해 공급량을 2배 늘렸고, 전 세계적인 품귀 현상을 빚는 세포독성항암제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추진 중이다.
백신 전문 기업인 SK바이오사이언스는 국제기구와 협력해 올해 미얀마, 라오스 등 9개 저개발 국가에 64만 도즈의 백신을 공급할 예정이다. HK이노엔 역시 수액제 등 35종의 퇴장방지의약품 및 국가필수약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한편, 전국 19개 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원격진료 지원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빅파마와 파트너십을 맺거나 신시장을 개척하려면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투명한 지배구조와 인권, 친환경 공정 등을 수치로 입증하는 ESG 공시가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요건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