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손원태 기자] 1년 넘게 기업회생절차(법정 관리)를 밟은 홈플러스가 대주주와 채권단의 책임 공방 속에서 결국 청산 문턱에 섰다. 법원이 홈플러스가 제출한 회생계획안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며, 구체적인 자금 조달 방안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이다. 홈플러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본점마저 납품 물량을 받지 못해 매대 곳곳이 전혀 다른 물건들로 채워지는 기현상마저 발생하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8시 찾은 홈플러스 본점(강서점)은 정상 영업이라기보다는 점포 정리를 앞둔 매장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현재의 홈플러스 사태를 보여주듯, 매장 내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로 스무 명 남짓에 불과했다. 총 12곳에 달하는 계산대 중 직원이 자리를 지킨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장면은 매대 곳곳이 마치 폭풍우가 휩쓸고 간 것처럼 텅 비어있거나, 전혀 다른 엉뚱한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과일 매대는 집게나 가위와 같은 부엌 집기류로 진열됐고, 계육 코너는 텀블러로 가득 찼다. 시식대는 모두 멈췄으며, 초밥이나 회를 팔던 코너에는 빈 접시들만 요란하게 널렸다. 유제품 냉장 매대는 폴란드산 멸균 우유만 각을 맞추듯 빼곡하게 들어서 을씨년스러웠다.
이는 홈플러스가 지난해 3월부터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지만, 납품 물량을 1년 넘도록 들이지 못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본진인 강서점조차 매대에 물건을 채우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배경이다.

◆ 뼈를 깎는다는 홈플러스, 구조혁신 나서도 재무개선 까마득
홈플러스는 지난해 연 매출(회계연도 2025년 3월~2026년 2월)이 전년 대비 17.1% 급감한 5조7963억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 영업손실은 3142억원에서 5464억원으로 73.9% 급증했다. 유동부채는 4조2897억원에 달했고, 부채비율은 2955%로 치솟았다.
홈플러스는 지난 5월 기업형 슈퍼마켓 부문(SSM)인 익스프레스를 하림그룹 유통 계열사 NS쇼핑에 매각하는 영업양수도 본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잔존사업부인 대형마트 본체를 매각하기 위해 2차 구조혁신안을 단행했다. 104곳이었던 대형마트 점포 중 37곳을 추가로 정리했고, 회생절차 돌입 전 2만명에 이르렀던 직원 수도 1만5000여명으로 크게 감축했다.
그러는 사이 임직원과 입점 업체, 납품 중소상공인의 피해는 확산하는 실정이다. 홈플러스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한 직원은 "중고등학생 자녀 두 명을 둔 부모인데 급여가 밀린 상태로 사직서를 썼다"고 토로했다. 수도권 점포에 입점한 한 상인도 "매장에 사람이 오질 않는데 장사할수록 적자라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도 홈플러스 납품 중소상공인 150개 업체의 평균 미정산 대금이 7억74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업체들의 연쇄 부도 위기도 심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측은 "회생절차 개시 후 사업구조 재편과 비용 절감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회생 기반을 마련했다"면서 "긴급운영자금(DIP)이 확보돼 영업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채권단과 협력사, 입점주, 임직원 등 모든 관계자들에 바람직한 결과인 매각과 회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 대주주·채권단 '네 탓' 공방…법원은 청산 최후통첩으로
그러나 홈플러스의 기대와 달리, 회생절차는 최대 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단인 메리츠금융그룹 간의 지루한 책임 공방으로 골든타임을 흘려보내고 있다. 법원도 회생계획안 인가 시한(7월 3일)을 열흘 앞두고 주주와 채권단에 회생절차 폐지를 위한 의견 조회에 나섰다.
법원은 홈플러스 측에 추가 자금 조달 계획이나 향후 회생절차 진행 여부를 입증할 소명을 요구하며, 이달 30일까지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만약 지정된 기한 내에 조달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회생계획안은 폐기되며, 홈플러스는 기업 청산 수순을 밟게 된다.
홈플러스는 익스프레스 매각과 함께 2차 구조혁신안에 돌입하면서 메리츠를 향해 2000억원의 추가 대출을 촉구한 상태다. 앞서 홈플러스는 지난 3월 MBK로부터 1000억원의 DIP 대출을 받았으며, 지난달에는 익스프레스 매각 대금으로 1206억원을 확보했다. 다만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최소 2000억원의 추가 자금 조달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홈플러스는 메리츠로부터 2000억원 규모의 추가 DIP 대출이 이뤄진다면 상품 공급이 정상화되면서 매출 역시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반면 메리츠는 MBK의 책임 있는 자금 투입이 선행돼야 한다며, 김병주 회장의 연대보증이 있어야만 별도로 1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맞선다.
그러자 MBK는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가 홈플러스 부동산을 담보로 원금 1조3000억원을 안정적으로 회수하는 것은 물론, 연 20%에 달하는 고리로 5000억원 이상의 이자수익을 남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메리츠는 MBK가 제시한 금액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개념상의 수치라며, 홈플러스의 회생은 최대 주주인 14조원 자산가 김병주 회장의 결단에 달렸다고 반박했다.
법원의 최후통첩으로 홈플러스에 허락된 시간은 채 일주일도 남지 않게 됐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사태의 본질은 기업회생이 아닌 책임 공방으로 변질된 모양새다.
MBK는 "홈플러스가 회생보다 청산할 때 메리츠에 더 큰 경제적 이익"이라며 "임직원, 협력업체, 소상공인, 일반 채권자들은 손실 위험에 처한다"고 메리츠를 압박했다.
메리츠는 "홈플러스의 위기는 MBK가 투자금 회수에만 몰두했던 결과"라며 "대주주이자 경영책임자로서 이제는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MBK로 공을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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